벤야멘타 하인학원은 배우는 것도 없고 가르치는 교사들도 없다. 이곳에는 배움 따위는 쓸모없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이곳 학생들은 훗날 누군가에게 예속될 미미한 존재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이곳에서 인내와 복종을 잘 배운다고 해도 무의미한 일이다. 야콥이 정말 귀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확실히 부자가 되길 원하는 것 같았다.
하인학교의 모범수 아니 모범생 크라우스에게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가 타고 있는 것은 만족이라는 말이다. 질주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타고 싶어 하지 않을 형편없는 말인데,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야콥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하인학원의 생도들은 모두 빈털터리에 몸이 묶여 있다는 하찮은 공통점이 있다. 야콥처럼 담배를 피우는 놈은 낭비를 일삼는다는 이유로 걱정거리가 된다. 이곳에서 입는 제복은 어딘가에 속박되어 있는 사람들처럼 보여 치욕스럽기도 하고 근사해 보이기도 한다. 야콥은 제복을 입는 게 편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천박한 인간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반대로 귀족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훗날 자신이 零(영)이 될 거라는 확신이라는 점이다. 아주 근사하고 동그란 영이 된다고 하는데 제로를 의미하는 것인지 빗방울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호하다.
하인학원은 벤야멘타 남매가 운영하고 있다. 그녀는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보다는 같은 것을 반복한다.
소설 속 야콥은 귀족 청년으로 묘사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콥의 입으로 알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실제 소설 속 야콥이 전혀 부유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그가 툭툭 내던진 부유했던 삶에 대한 일상보다는 부유함에 대한 간절함이 더 솔깃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부유함을 버리고 하인의 삶을 택한 것은 그냥 거짓이나 허세 혹은 진실이 숨겨진 역설 같은 의미로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시종일관 실제로 야콥이 전혀 부유하지 않으며 하인의 신분으로 살 수밖에 없는 숙명을 거부하고 싶어 한 캐릭터로 이해했다.
소설은 특별한 줄거리를 만들지도 않았고 사적인 일기 형식으로 뭔가 심오하게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느낌을 다분히 받았다. 이렇게 소설을 써도 되겠구나 싶었고. 해설의 힘을 빌어서 비로소 그렇구나,를 깨달았는데 그는 어쩌면 쓰기 위해 이야기를 필요로 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였다.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스토리를 위한 글이 아닌 그냥 무작정 사념을 늘어놓고 싶었고 그래서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고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 말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운명에 귀속된 불행한 일생을 읽었는데, 야콥의 시선으로 전개된 글을 파악하지 않고 보다 다른 차원으로 느끼다 보면 작가 자신의 불행한, 몸부림치며 벗어나고 싶어 했던 숙명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야콥의 이야기라기보다는 로베르트 발저 자신의 운명을 기록한 것처럼 읽혔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감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