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덱의 보고서-필립 클로델

by 무체

브로덱의 보고서

먼저, 프랑스의 작가 필립 클로델이 쓴 <브로덱의 보고서>는 전작 회색 영혼의 연장선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이름도 모른 채 '안더러'란 이방인이 황량한 마을에 거주하며 생긴 일이다. 안더러는 학자이기도 하지만 링겐이란 요정의 영역에 사는 신묘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안더러는 자연에 관심이 많고 따뜻하고 진보적 성향의 소유자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는 고립되어 살고 있는 무지몽매한 마을 주민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고 진실을 알려주기 위한 선구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집단 광기 혹은 무지로 인해 안더러를 통한 그들의 과거 혹은 세상 보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브데렉에게 했던 것처럼 이방인에게 폐쇄적이었으며 심지어 그를 없애기까지 했다. 그리곤 그들의 치부이자 숨기고 싶던 브레딕이란 존재를 통해 소설이 아닌 보고서를 써달라고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영화적 상상력을 배가하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스릴 넘치는 미스터리물 같지만 실제론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 역사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나치 치하의 2차 대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다루면서 집단 광기로 인해 억울하게 당한 이방인의 존재를 조명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작가는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다. 프랑스인이 독일의 치부를 건드린 소설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물론 이건 완전 빗나간 해석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작가의 모호한 익명성이 그러한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주변인 혹은 이방인 입장에서 처한 상처를 다룬 글이라고 생각했다.


똥개처럼 비굴하게 버티다 나와는 상관없는 것처럼 관조적 자세를 취하다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달라고 주체성을 찾아가는 것 같다. 물론 거기에는 사랑이 주효하게 작용한다. 사랑 때문에 두려움을 몰랐다고 받아들여도 될는지 모르겠다.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로 시작하는 첫 장이 너무 강렬했고 역설처럼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다.


.. 하지만 나에게는 늘 '안더러', 즉 '타인'이었다. 아마도 어디서 온 사람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우리와 달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어떨 때는, 고백하건대, 그 사람이 나 같다고 느껴졌다...


.. 진실이란 손모가지를 분지를 수도 있고 도저히 끌어안고 살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한데 우리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살아 나가는 것이다. 가능한 한 고통스럽지 않게. 그것이 인간이다. 전쟁을 겪어봤다면 틀림없이 당신도 우리와 같을 것이다.


..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잠자코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라고 요구했다.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이 집단 괴물로 변신하여 유대인은 물론 주변인까지 학살을 자행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타인이든, 타국이든 주변인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데는 못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리라 본다. "소설을 쓰라는 게 아니야. 그냥 있었던 일을 적으면 돼. 네가 쓰는 보고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이것도 하나의 역설이라고 느껴진다.


"내가 '나'라고 하는 건 우리 마을 전체, 주변의 부락 전체, 우리 모두를 뜻하는 거라고. 동의하지?"


'읽는 사람이 이해하도록'이라, 아마도 그래야겠지. 하지만 '용서하도록', 그건 좀 다른 문제지. 나는 그 말을 감히 입밖에 내지 못했다.


.. 나는 내가 여러 해 전부터 알던 그 모든 사람들이 방금 저지른 일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들은 괴물이 아니라 농부이고 장인이며 소작농, 산림 감독, 하급 공무원들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었다...


함께 있던 죄수들 모두 이미 오래전부터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너는 우리를 가둔 인간들보다도 못한 놈이야. 너는 짐승이야......

.... 그들은 죽었다. 모두 죽었다. 나는 살아 있다. 그들에게는 살아남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을까?


이 책이 던진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었을 거다. 브로덱은 사랑 때문에 살아남았다. 사랑하는 에멜리아를 되찾기 위해서. 두려움 없는 사랑 때문에...


.. 삶의 단계라네.... 처음에 본 것은 순수의 시대, 그다음은 어리석은 분노, 여기는 관조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지.



.. 이제는 두려움이 나의 옷이 돼 버린 것 같다.... 가장 이상한 점은 수용소에서 똥개 브로덱이 됐을 때, 그때는 두려움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곳에는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았다.



.. 어젯밤 마을 사람들이 안더러를 죽였어요.... 난 나중에야 거기 갔어요. 살인에 가담하진 않았어요. '보고서'를 쓰는 임무만 받았지요..... 그게 다예요.... 말이 입술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입 안에 머물러 있었다....


..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죄가 없다는 것은 무고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죄인과 결국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은 떠나온 곳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다오. 두고 온 것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돌아갔을 때 무엇을 보게 될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더군다나 인간이 한참 동안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당신은 아직 젊어요.... 명심해 두시오...... 청이 있는데... 그 아이를 용서하시오.. 그들을 용서해 주시오....."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지." 늙은 은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넌 다른 아이들과는 달랐어. 항상 사물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있었거든...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려고 했지."




.. 이 같은 비겁함이, 비록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닐지라도, 이것이 역겨웠다. 따지고 보면 나는 다른 사람,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 스스로를 변호하려고 나를 시켜 '보고서'를 쓰게 한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


.. 인간은 이렇게 생겨 먹었다. 그래도 스스로 순수한 영혼을 가졌다고, 관념과 꿈과 이상한 멋진 것을 만들어 내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인간은 자신이 물질적 존재이며 머릿속에서 꿈틀거리고 싹트는 것 못지않게 두 궁둥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도 중요한 그의 일부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 그러나 기억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는 법이다. 잠시 잠재울 수 있을 뿐....


.."이 모든 것의 대가를 과연 누가 치르게 될까?"

샤이데거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경리가 할 만한 변변치 못한 변명, 초라하고 품위 없는 말.....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엇을 바라고 있었을까? 용서? 나의 용서? 그는 그렇게 애원하듯, 걱정하듯 나를 잠시 바라봤다.. 그래서 나는 짖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길게, 서글프고 비통한 소리를 질러 댔고 이어서 감시견 두 마리가 나를 따라 짖기 시작했다.



.."인간은 항상 다시 시작하는 동물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끊임없이 다시 시작한단 말인가? 잘못을?



.. 인간의 삶은 정말 이상하다. 그 안에 뛰어들고 나면 그다음에는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은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보다 영리한 사람들은 문만 살짝 열어 보는 것으로 만족하나 보다...


.. 이제 와서 얘기지만, 이방인이 와서 좋아한 사람은 우리 동네에서 나 하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새로운 시작,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 실은 군중 그 자체가 괴물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하나의 새로운 몸뚱이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행복한 군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평화로운 군중이란 없다....


..".. 최후에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무지라는 걸 잘 기억해 둬. 브로덱, 결코 지식이 아니야."


.. 이제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은 그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진실이 아니라 의심을 택했다. 비록 그 의심이 지극히 작고 빈약한 것일지라도. 그렇다. 나는 그 편이 더 좋았다. 진실이 어쩌면 나를 죽일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이라고! 도대체 우리는 뭐냐? 정말 궁금하구나..."


"켈마르, 우리가 열차 안에서 한 짓을 생각하면 나도 계속 뛰지 말고 너처럼 멈춰 섰어야 했어. 중간에서 섰어야 했어."

"너는 네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야."

"아냐, 네가 옳았어. 그게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어. 내가 비겁했어."


"내가 옳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인간의 죽음은 말이야, 어느 누구의 희생으로도 보상할 수 없어. 그게 가능하다면 모든 게 너무 간단해지겠지. 그리고 너를 심판할 사람은 네가 아냐. 그렇다고 나도 아니고. 인간은 서로를 심판할 수 없어. 사람은 그런 일을 할 수 없게끔 생겨 먹었어."



인시류 안에 '렉스 플라메'란 이름의 변종을 소개한 부분은 소설의 주제를 함축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 그러나 도대체 윤리가 뭡니까, 무슨 소용입니까? 모든 것을 초월하는 유일한 윤리는 바로 목숨입니다. 죽은 자들만 억울한 법이지요.



..디오뎀은 아무리 글을 써도 치유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영원히 똥개 브로덱으로 남을 것이다. 물어뜯기보다 땅에 뒹굴기를 더 좋아하는 똥개. 그렇게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늘에서는 검은 어둠 속에 별들이 은빛 못 자국을 비벼 대고 있었다. 이 땅에는 모든 것이 참을 수 없이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너무나 광대하고 포근하다 보니, 오히려 추악한 존재의 조건만 더 도드라지게 눈에 띄게 만드는 그런 시간이 있다.


'저희는 아직 선생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이름이란 아무것도 아니죠. 저는 아무도 아닐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안더러가 말했어.



내 이름은 브로덱. 나는 그 일과 무관하다.

브로덱, 이게 내 이름이다.

브로덱.

부디, 기억해 주시기를.

브로덱.



이름이란 참으로 이상하다.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말인데도 끊임없이 입에 올리게 된다. 잘 생각해 보면 사람과 비슷하다. 몇 년을 만나도 본색을 알 수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도저히 상상도 하지 않았던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있지 않은가.


마지막을 읽으면서 위 구절이 떠올랐다. 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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