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가와바타 야스나리

by 무체

첫 번째 읽었을 때 좋은 느낌이 좋은 소설일까, 아니면 몇 번을 읽고서 좋은 느낌이 좋은 소설일까. 시간의 격차를 두고 읽은 게 아닌 읽고 난 후 곧바로 재차 읽었을 때 말이다. 독자의 눈으로 읽을 때는 처음에 읽었을 때 좋은 느낌이 좋은 소설인 것 같고, 작가의 눈으로 읽을 때는 몇 번이고 읽어도 질리지 않고 새록새록 감동을 주는 소설이 좋은 소설인 걸까?

어쨌든, 설국은 처음보다는 두 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이 더 좋게 느껴지는 글이다. 스토리와 상관없이 분위기에 취해 드문드문 읽고 싶다면 몇 번이고 아무 페이지나 들춰 읽어도 괜찮을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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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은 처음 몇 페이지 읽기가 매우 매우 어려웠다. 어떤 소설은 그렇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설국의 경우 찜찜해서 도저히 듬성듬성 읽을 수가 없었다. 순간 새롭게 난독증이 생겼나 싶었다. 그러다 못내 찜찜함이 남아 있어서 다시 설국을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중도에 포기 없이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힌다고 한다. 평소 문예출판사 책을 좋아하지만 설국은 아쉬웠다. 현 접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 고장이었다. 감동을 받지 못한 이유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이 문장으로 처음을 접했더라면 단숨에 읽혔을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덧없음이고,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이어서 이 두 가지가 융합되면서 이 세상과는 동떨어진 상징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설국은 14페이지 두 번째 단락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읽혔다.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는 여인과 눈에 등불을 켜고 있던 여자와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시마무라는 어쩐지 그것이 마음속 어딘가에 보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는 자연과 자신에 대한 성실성마저 잃어버릴 것 같아서 바람을 피웠나. 추구하는 것은 깨끗함. 청결함. 어린 여자였다.


“응, 당신 순진한 분이군요. 뭔가 슬프지요?”


작품 해석을 보니 사건이 없으므로 이야기 줄거리가 없고, 이야기 줄거리가 없으니 자연히 소설로서의 일정한 진행 형식이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을 두고 ‘플롯의 부재’라고도 한다.(p.236)


평소 소설 취향이 스토리 위주보다 사유나 정념의 콜라보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는 내 취향이긴 하다.


이 소설은 소유는 없으나 집착은 강하게 느껴졌던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 또한 읽으면서 매우 집착을 하면서 읽었다. 도대체 뭘까? 뭐지? 뭐가 아름답다는 거지? 아무튼, 설국은 첫 시동이 좀처럼 쉽게 걸리지 않았지만 점차 까닭을 알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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