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평범하게 살아도 되는지 걱정이 될 정도로 지극히 일상적이기만 했던 어느 날.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달리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연하게 어떤 영화의 리뷰를 읽었다. 영화 제목은 ‘밀크바’. 영화의 스토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오직 그 단어에만 집중했다.
나는 워낙 우유를 좋아하니까. 술을 마시지 못하니까. 나와 같은 사람을 위한 우유방을 차리면 되겠구나.
우유방을 차리는 일로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분명 반대할 사람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곧장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가게를 계약했다. 보증금 천에 월세 오십이면 기분 좋게 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달만 운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별도의 인테리어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든 물상이든 브랜드 정체성이 드러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이름에 사람을 가둬 두듯, 무릇 꾸미기란 그런 것이었다. 사물에서 새것 냄새가 나는 것도 싫었다. 갓난아이가 젖 냄새를 풍기는 것 같이 서툴러 보여서였다. 그리고 그 누가 되었든 이전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가게는 텅 비어 있었고 전 사업자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희뿌연 먼지들만 가득했다. 깨끗하게 청소하는 데만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쓸고 닦고를 반복했다. 페인트도 직접 칠했다. 흰색과 녹색 그리고 노란색 페인트를 사서 옅은 그린 색을 조색했다. 올리브그린 색을 만들려면 빨강도 필요하고 검은색도 필요했지만 그러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귀찮은 것도 있고 해서 대충 했는데 색이 그렇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밀크바에 그린 색을 입힌 이유는 하얀 우유를 팔면서 사방이 흰 색인 것이 어딘가 병적으로 느껴진 것뿐이다.
페인트칠을 한 후 3일을 쉬고 다시 가게로 향했다. 그사이 또 먼지가 쌓여 있었다. 어디서 먼지를 몰고 오는 특별한 바람이라도 부는 걸까. 서쪽에 위치한 동네는 대체로 그러하다고 들었다. 공기가 맑거나 탁하거나 먼지가 유독 많은 곳이라고.
나는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을지로 3가로 갔다. 그곳에서 세면대와 거울을 구입했다. 이태원의 가구 거리로 갔다. 장식용으로 쓰일 앤틱 한 콘솔, 네 개의 테이블 그리고 그에 맞는 의자를 샀다. 거치식 진열대는 이케아에서 사면 될 것 같았다. 테이블은 밝은 나무색으로 통일하였고 의자는 전부 다 다른 디자인으로 샀다.
밀크바는 창고 포함 20평 남짓의 작은 평수였다. 입구는 좁았고 길게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문을 열었을 때 정사각형의 반듯한 공간은 평수가 넓든 작든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나는 어딘가 치우친 형태가 보기에 편했다.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냉장고 등 부자재를 들여놓으니 가게가 꽉 차 보였다. 이제 더는 말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물건들이 소리를 잡아먹고 있는 기분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울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마지막으로 바(Bar)를 만들 차례였다. 이름을 밀크바로 정한 이상 바의 형태는 근사했으면 싶었다. 근처의 목공소에 갔다. 40년을 넘게 그 일을 해왔다는 목수 사장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자 그를 가게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길이를 재게 하고 높이를 재라고 하여 일주일 안에 끝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제 우유 거래처를 알아볼 차례였다. 될 수 있으면 많은 종류의 우유가 필요할 것 같았다. 우유마다 제각각 맛이 다를 테니까. 나는 이참에 외국에 있는 우유도 들여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계 각지의 신선한 우유를 매일 같이 공급받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원도 어디 목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젖소를 한 마리 데리고 왔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고 중간에 그만둘까 싶은 생각도 여러 번 들었지만 결국 성공하였고, 그간의 고충은 깨끗이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사이 한 달이나 소요되었고 가게 안은 다시 먼지로 자욱했다. 어째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인생은 반복하는 삶이라고 했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부지런히 쓸고 닦았다.
창고로 쓸 공간을 조금 더 트고 테이블을 하나 빼고 나서야 소가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우사는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우유 한 잔이나 팔아야지 생각한 것이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팔아야 할 우유의 콘셉트 잡는 일도 중요했다. 나는 어떤 우유를 팔면 좋을까 고민하다 우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살균 우유는 해로운 유산균과 지방분해 효소를 완전히 사멸시킨 우유이다... 이는 고온 살균과 저온 살균으로 나뉘는데...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다.) 멸균 우유는 세균의 포자까지 완전히 사멸시킨 것으로... (이것도 읽다 포기했다.) 무균질 우유는 우유 속 지방을 인위적으로 분해하지 않고... (이것도 읽다 말았다.) 탈지 우유는 우유에서 지방을 떼어내... (이것도 패스.) 저지방우유는 탈지우유와 비슷한 공정을 거치지만... (이것도 패스.)
결국 다른 차원의 종류로 접근을 시도했다. 흰 우유, 초코우유, 바나나 우유, 딸기 우유. 차라리 이렇게 종류를 나누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우유 빙수, 우유 슬러시, 더운 우유 등 변형된 종류도 생각을 해보았다.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난감했다.
우유 종류는 잠시 보류하고 간판 작업을 시작했다. 거창한 간판을 달고 싶지 않아 딴에는 유럽식 스타일로 만들었다. 그런 비슷한 조형물에 ‘밀크바’라고 이름을 고쳐 써넣었을 뿐이다. 드디어 개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는 나는 부를 사람도 없었다. 게임하다 사귄 지인들이 있긴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그들을 바깥세상으로 끌어내는 일이 전 세계에 있는 우유를 공수받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개업식날 젖소를 문 앞에 매달아 놨다.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내 바를 보고 있었다. 성미 급한 사람들은 들어와 묻기도 했다. “뭐 하는 데유?” “우유 카페입니다.” “우유 카페?” “우유만 파는 곳이에요.”
6개월 동안 파리 날리는 일은 감수하고 있었다. 흔한 카페도 잘 들어가지 않는데 우유방이라니. 간판의 밀크바란 이름을 달고서도 우유 카페란 부연 설명을 계속 얘기해야 하는 동네였다. 가뜩이나 우유 판매량이 급감했다는 소식도 들리던데. 그래도 특이성 때문인지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어르신들 중에는 옛 생각이 난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약수터 가면 우유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고. 어른들은 우유에 소금을 타서 마시고 아이들은 설탕을 타서 먹였다고. 그런 시절도 있었나. 분유를 허겁지겁 퍼먹거나, 탈지분유를 커피처럼 마셨던 일은 나도 기억이 났다. 어쨌거나 조금씩 찾아오는 사람이 늘었다. 우유 한 컵을 그 자리에서 원 샷으로 마시고 가는 것은 500원을 받았다. 자리에 앉아서 마시고 가는 사람에게는 3,000원을 받았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는 500원을 더 받았고. 아무래도 데워준 성의가 있으니. 사실 데운 우유는 가격을 더 올려 받아야 했다. 끓는점도 잘 맞춰야 했고 컵을 닦기도 몹시 까다로웠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모습을 보고 단순한 카페라고 여긴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커피는 없어요?” “우유만 팝니다.” “난 우유를 못 먹는데...” “...” “그럼 안 되겠군요. 그냥 나가야겠어요.” “네, 안녕히 가세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 별일도 다 있다는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 밀크바를 유독 반가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 우유 되게 좋아하는 데. 정말 이런 곳이 생겨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왜 우유만 파나요? 다른 것도 같이 팔면 좋을 텐데.”
남의 장사에 참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니들 일이나 잘해라,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화란 하면 할수록 피곤한 일이란 걸 40 평생 살면서 처음 깨달은 일 중 하나다.
도시 대로변에 위치한 탓인지 저녁때가 되면 술을 안 파느냐는 문의가 늘었다. 없다고 말하는 것조차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유 칵테일을 준비해 두었다. 핑크 레이디라든가,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몇 가지 메뉴도 개발해 두었다. 그랬더니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의 주도로 카페를 찾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 “나는 우유를 마실 테니 당신은 우유 칵테일을 마셔. 아마 우유 소주도 있을 거야.”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밀크바 안에서 점차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기 설사 똥 냄새처럼 상한 우유의 냄새는 익숙하게 기분이 나쁜 냄새였다. 창고에 있는 젖소의 냄새도 크게 한몫했다. 다행히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우유의 느낌이 가득했기에 사람들은 고소한 우유 냄새로 착각을 하고 있던 거였다. 나 역시 점차 냄새에 관해서 무감각해지고 있었다. 그러는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밀크바를 6개월 정도 운영하고 있을 때쯤, 나는 더 이상 우유를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매일같이 우유 냄새에 시달리다 보니 어느새 냄새만 맡아도 설사를 시작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을 닫았다. 젖소는 다시 목장으로 보내졌다. 처음에는 풀숲에 그냥 버려두었다가 지구대가 찾아주러 왔다. 젖소를 잃어버리지 않았느냐며 친절하게 갖다 준 것이다.
이후로 3개월 정도를 집에서 숨만 쉬고 살았다. 악취 같은 우유 냄새가 겨우 가시는 것 같았다. 두 번 다시 밀크바 따위는 운영하지 못할 것 같았다. 단골손님들은 아우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 년째 마시던 우유도 끊고 온 곳인데 이게 뭥미하며 인터넷 용어를 서슴지 않고 남발했다. 흐미, 등 저마다 난처하고 황당한 표현을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