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또 버스를 타며 몇 번의 구토를 했다. 혼미하고 울렁거리는 통에 도저히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옆에는 고모부가 잠을 자고 있었다. 마치 지금 잠을 자두지 않으면 영원히 잠 못 이룰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뱃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메스꺼움을 참으며 창밖을 보았다.
다섯 살 때 사고로 부모를 잃은 나는 아빠의 누나인 고모에게 맡겨졌다. 큰 고모가 한 분 더 계셨지만 멀리 미국에서 살고 계셔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부모의 죽음은 모든 죽음이 그렇듯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남아있는 사람들은 슬픔보다는 뒷일의 수습에 더 많은 감정을 소모하며 지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모가 재혼하면서 고모부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피가 섞인 고모가 떠나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고모부와 남은 기이한 동거였다.
전날 고모부는 나를 맡아줄 이모네로 간다고 했다. 나는 주섬주섬 짐을 쌌다. 동네 친구들과 인사도 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아쉽고 서운했다. “이모네서 살게 되면 이모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해. 심부름도 잘해야 하고... 아마도 이모가 혼자 살아서 너를 딸처럼 소중하게 여길 거야.”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고모부가 말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물끄러미 고모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그가 부랴부랴 내릴 채비를 했다. 고모부는 내린다며 소리를 질렀고 그렇게 정신없이 나는 고모부를 따라 버스에서 내렸다. 고모부는 바지춤을 올리며 커다란 소리로 코를 한번 크게 풀더니, 그 손으로 나의 손을 움켜잡으며 가자고 했다. 끈적하고 불쾌했지만 나는 손을 빼고 싶어도 거역할 수 없었다.
어쩌면 집 같기도 했고 어떤 사무소 같은 느낌을 주는 어중간한 건물의 모습이 생경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회색빛의 기와지붕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의 모습이었다. 이모는 어떤 분일까? 긴 생머리에 눈이 유난히 컸던 엄마의 모습과 비슷하겠지? 고모부는 이모가 엄마의 친동생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엄마의 동생이 이모라고 했다.
“엄마의 동생이니까 너의 엄마나 다름없는 거야.” “그럼 엄마라고 불러요?” “그렇다고 엄마라고 부르는 건 아니야. 아빠의 누나는 고모잖아. 고모도 엄마나 다름없는 분이지만 엄마라고는 하지 않았잖아. 고모부도 아빠는 아닌 것처럼 이모도 엄마는 아니야.” “너무 어려워요.” “그래 그럴 거야.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설명을 잘 못하겠네.” 고모부는 얼버무리며 껄껄 웃었다.
고모부는 현관 앞에서 문을 쾅쾅 두드리다가 벽에 붙어 있는 앙꼬빵 모양의 벨을 발견하곤 그것을 꾹 눌렀다. 문이 열렸다. 키가 작고 마른 체구에 단정하게 묶은 머리카락,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의 여자가 나타났다. 엄마를 닮은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모는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들어오기를 종용했다. 태연한 표정 뒤에 숨겨진 날카로운 눈빛이 순간 나를 훑었다.
고모부는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하는 진료실 대기실에 앉아 어색한 헛기침을 했다. 이모는 나와 고모부를 대기실 의자에 잠시 앉아 있으라고 했다. 고모부는 나를 툭툭 건드렸다.
“얘가 이래요. 간혹 넋을 잃곤 해요. 무슨 공상을 그토록 골똘히 하는지. 제가 마음만 같으면 끝까지 키워 볼 생각이었지만 얘 피붙이인 고모랑도 헤어진 마당에 남의 새끼 거두며 사는 게 또...” 고모부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쉬었다. “상관없이 뱃놈이라 집안에 제대로 붙어있질 못해요. 호야가 조금 극성맞은 구석도 있긴 하지만 영특하고 순한 아이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모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모가 말했다.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알레르기나 특별히 주의할 점이 있나요?” “특별한 건 없어요. 감기도 잘 안 걸리고... 간식으로 달걀은 안 좋아해요. 그리고 가끔 밤에 악몽을 꾸곤 해요.”
고모부는 일순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가야 된다며 갈 길을 서둘렀다. 고모부는 짧게 잘 지내라는 한마디를 나에게 건네고 코를 큼큼거리며 사라졌다. 검은 외투를 입고 머리를 긁적이며 걷는 고모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