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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토픽션

호감, 그러나 만나지 않아도 되는

by 무체

카페에 그녀와 나는 유일한 단골손님이었다. 우린 서로 경쟁하듯 구석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자리는 먼저 오는 사람의 차지였다. 그녀가 아무리 작고 왜소하더라도 그러한 신체적 결함 때문에 내게 주어진 좋은 자리를 양보하기는 싫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는 불편한 표정으로 내 곁으로 걸어왔고 대각선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가 차선으로 좋은 자리였다. 우린 한 번도 눈을 마주친 적은 없지만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커피 향과 창밖으로 비치는 오후의 햇살이 우리의 침묵 사이로 스며들었다. 카페의 낡은 목재 바닥은 그녀가 걸을 때마다 미세하게 삐걱거렸고, 그 소리만으로도 나는 그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크기를 미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여긴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준으로 본다면, 그녀는 결코 미인의 범주에 들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작아도 너무 작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놀랍도록 길고 섬세했고, 바느질할 때 움직임은 마치 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같았다.


카페에서 나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그녀는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손으로 꿰매고 손으로 두드리는 일상을 한 공간에서 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녀가 바느질을 하면서 어떤 공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누구를 생각하며, 혹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회상 같은 것에 심취해서 한 땀 한 땀 뜨고 있는 거겠지. 현실에 직면한 소소한 고민이나 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지나가겠지. 그녀는 그것들을 꿰고 있는 걸 거야.

바느질 하는 여성의 손길.jpg


그녀의 손길은 지나치게 맹목적이고 열성적으로 보였다. 나의 손끝 역시 무모한 질주의 연속이었다. 누구를 향해, 아니 어디를 향해 글을 쓰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전진 중이었다. 설령 그녀와 내가 친밀한 사이였다 해도,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해도 우리에게 대화는 필요 없었을 거다. 우리 사이에 말이란 쓸모없는 소음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어느 카페나 그렇듯 우리가 머문 카페에도 음악이 흘렀다. 나는 그것을 무분별한 멜로디, 귀에 박히지도 않는 음악을 가장한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가끔은 솔깃하게 정서적인 음악이 나올 때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는 시끄럽고 번거로운 소음 일색이었다. 그녀와 나는 그것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도 알았다. 서로의 생각 안에 사로잡혀 음악이 자리 잡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어쩐지 나는 그녀를 아주 잘 알고 있던 것 같다.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그녀의 바느질감이 잠시 젖었을 때 나는 그녀가 살짝 인상을 쓰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몰랐을 그 순간, 우리의 시선이 처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불과 0.5초의 일이었지만, 내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내가 연인 혹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어도 그녀는 열심히 바느질을 할 테고 나는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릴 테지. 어쩌다가 입이 트여 말을 하게 된다면, 우리는 할 일을 망각한 자책에 시달리며 서로를 귀찮아하고 원망하겠지. 아무래도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얘기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따금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각자의 일에 집중하며 드문드문 대화를 주고받게 될 것이다. 그러다 다시 제 할 일에만 몰두하겠지. 그러니 우리는 친구가 될 필요도 마주 앉아 있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먼발치에서 서로가 어떤 목적으로 바느질을 하고 워드를 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걸로 끝나는 거다. 어쩌면 그 편이 더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누구를 위하여 바느질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구를 위하여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걸까. 단지 외롭기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 몰두할 것이 필요했던 것일까? 때로는 이런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몰두의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이런 순간들의 반복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우린 말없이 인사를 주고받았다. 서로 마주 보는 일은 없었지만 그녀의 고요한 바느질 소리가, 나의 현란한 키보드 소리가 근황을 주고받으며, 심지어는 농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녀는 바느질에 몰두하느라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 일색이었지만 나는 가끔 키보드질을 하면서 템포에 감정을 실어 담았다. 그녀는 음악보다 나의 키보드 소리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으리라. 어쩌다 키보드질을 멈추는 순간에는 그녀도 바느질을 멈추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내 쪽으로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카페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그녀의 작은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 때면, 그녀가 만들어내는 것의 일부가 보였다. 작은 꽃무늬가 수놓아진 손수건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선물이었을까.

나는 몇 번이나 그녀 앞에 마주 앉아 키보드질을 하고 싶었다. 그녀를 보면서 구체적인 영감을 얻고 타건에 힘을 싣고 싶었던 거다. 지금 있는 자리로도 충분하긴 했지만 무언가 궁금하고 조급하게 만드는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그녀가 뜨고 있는 물체도 보고 싶었고 가끔 미세하게 톡톡 소리가 나는 천의 질감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끝내 나는 그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녀와 미묘한 자리 경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어쩌면 우리는 말을 건네는 순간 이 특별한 관계가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이 침묵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완벽한 동반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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