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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보의 일생-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말과 글

by 무체

이 책의 첫 구절


인생은 낙장이 많은 책과 비슷하다. 제대로 된 한 권이 만들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쨌든 책 한 권이 되기는 했다. 11.


단지 처세를 잘하고 싶을 뿐이라면, 정열의 부족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오히려 냉담함의 부족이다. 12.


가장 현명한 처세술은 사회적 인습을 경멸하면서도 사회적 인습과 모순되지 않게 생활하는 것이다. 14.


달리기를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달리라고 명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턱없는 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런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18.


인생은 미치광이가 주최하는 올림픽 대회 같은 것이다....

~이런 무법칙의 세계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


하지만 별도 우리처럼 끊임없이 윤회를 거친다고 하니, 어쨌든 따분할 수밖에 없겠다. 21.


자만, 애욕, 의혹, 3천 년 이래의 모든 죄는 이 세 가지로 부터 생겨났다. 또한 동시에 아마 모든 덕도. 22.


유전, 환경, 우연-우리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은 결국 이 세 가지다. 스스로 즐거운 자는 즐거워해도 좋다. 그러나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27.


인생의 비극 제1막은 부모와 자식으로 맺어진 것에서 시작한다. 42.


예술의 영역에 미완성품이란 없다. 있다면 그것은 질 낮은 완성품일 뿐이다. 69.


... 그 단순함을 얻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창작의 고통을 겪어야 할까.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육십 겁의 윤회를 거친다 해도 여전히 아이처럼 조잘대면서 데모스테네스보다 더 나은 웅변이라고 거들먹거릴 것이다. 그런 가벼운 단순함보다 차라리 복잡한 단순함이 얼마나 더 진정한 단순함에 가까운지 모른다. 74.


일단,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 등을 읽으십시오. 93.


나는 풍경이 눈에 보이듯이 다가오는 문장을 좋아한다. 그런 것이 없는 문장은 싫다. 103.


물론 나는 '말하듯이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글을 쓰듯이 말하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내가 아는 한, 나쓰메 선생은 실제로 '글을 쓰듯이 말하는' 작가였다. 119.


글을 쓰고 있을 때의 기분을 말하면, 뭔가를 만들고 있다기보다는 키우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인간이든 사건이든, 그것이 본래 움직이는 방식은 단 하나다. 그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글을 써나간다는 기분이 든다. 그 하나를 찾지 못하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더 나아가면 반드시 무리가 생긴다...123.


창작은 언제나 모험이다. 결국은 인력을 다한 뒤에 천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젊어서는 배움이 쉽지 않음을 괴로워하며

그저 공부가 부족한 탓이라 여겼건만

늙어서야 비로소 알았네. 인력으로는 되지 않음을.

인간의 노력이 삼, 하늘의 뜻이 칠이로구나. 127.


이런 글을 쓰고 그는 35살에 자살했다. 30대도 젊디 젊은 나이이건만...


스위프트는 미쳐버리기 얼마 전, 우듬지가 말라버린 나무를 보며 "내가 꼭 저 나무를 닮았군. 머리부터 먼저 죽어버리는 거지." 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141.


하지만 나는 서 있는 자는 걸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이 가시밭길이든 눈물의 계곡이든 한결같이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걷고 걷다가 죽을 것이다. 나는 외롭다. 147.


우리 인간은 하나의 사건 때문에 쉽게 자살 같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난 생활의 총결산을 위해 자살 하는 것이다. 155.


나도 한때는 다른 모든 청년들처럼 많은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결국 미치광이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나 자신에게는 물론, 모든 것에 혐오를 느낀다. 155.


꽃을 가득 담은 벚나무는 그의 눈에 한 줄로 늘어놓은 누더기처럼 우울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그 벚꽃에서-, 에도 시대부터 피어온 무코지마의 벚꽃에서 어느덧 자신을 발견했다. 167.


서른다섯의 그는 봄 햇살이 비친 소나무 숲속을 걷고 있었다. 이삼 년 전에 자신이 썼던 "신들은 불행히도 우리 처럼 자살할 수 없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191.


"죽고 싶어 하신다고요?"

"예, 아니 죽고 싶다기보다는 사는 게 질렸습니다." 195.


그는 자신의 일생을 생각하자, 눈물과 냉소가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따.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오직 발광 아니면 자살뿐이었다. 그는 해질녘의 거리를 홀로 걸으며, 서서히 그를 멸하러 다가오는 운명을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197.


(나는 서양인들처럼 자살을 죄악으로 생각하지는 않네. 붓다는 실제로 아함경에서 제자의 자살을 긍정하고 있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곡학아세하는 무리들은 '어쩔 수 없는' 경우란, 뻔히 알고도 더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아주 예외적일 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네. 누구나 자살은 그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는 것이네. 그 이전에 결연히 자살하려는 자는 오히려 용기가 넘쳐야만 하네.) 207.


하지만 공허한 느낌은 아무리 해도 없애지 못할 거야. '종족을 위한 생존', 슬픈 울림이 전해지는 것 같지 않아? 215.


이렇게 짧은 글귀를 남기다, 편지도 담았다가 그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어느 바보의 일생은 우울하거나 불안이 극에 달하는 사람은 절대 읽으면 안 되는 책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읽는다 해도 기분이 무거워진다. 따라 죽을 생각까진 들지 않아도 백해무익하다. 몇 몇 체크한 구절들 빼고는 특별히 공감할 문장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우울하고 불안한 청년의 지겨운 삶일 뿐이다. 뭐랄까 작가도 지겨워서 삶을 마무리한 것처럼 그의 마지막 남긴 글들도 지겨움을 담은 것 같다. 모르겠다. 뒷부분은 그냥 듬성듬성 읽어서... 그래도 기록은 해두고 싶어서 남겨두기로 한다.


참고로 류노스케의 단편을 매우 좋아한다. 다이쇼 시대를 대표한, 다이쇼 시대의 막을 내린 작가라고.

일본 역사 별칭으로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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