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장이 매력적이면 대체로 끝까지 읽고 싶어진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지만, 부분적으로 취사 선택하여 매료된 부분이 적지 않다. 한 남자의 숭고한 사랑과 희생이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뜨개질하며 살인을 만끽하는 여성들의 모습에 더 집중했고 경악했다.
최고의 시대이면서 최악의 시대였다.
현명한 시기이면서 어리석은 시기였다.
믿음이 뿌리내린 시간이면서 불신이 만연한 시간이었다. 광명의 시절이면서 암흑의 시절이었다. 희망을 품은 봄이면서 절망에 눌린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펼쳐져 있으면서 아무것도 없었고, 우리는 천국으로 직행하고 있으면서도 곧장 지옥으로도 향하고 있었다. 결국 그 시대는 지금과 무척 비슷해서, 당시를 잘 안다고 목청을 높이는 전문가들은, 선과 악처럼 극단적인 대조를 통해서만 시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1.
영국은 턱이 큰 왕과 못생긴 왕비가 다스렸고, 프랑스 역시 턱이 큰 왕과 아름다운 왕비가 다스렸다.
때는 서기 1775년이었다. 풍요로운 시절에도 영국인들은 지금만큼이나 영적 계시를 믿었다. 12.
운명이라는 산지기와 죽음이라는 농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일을 꾸미는 동안, 두 나라를 다스리는 턱이 큰 두 왕과 못생긴 왕비, 아름다운 왕비는 그 고결한 손으로 신이 부여한 권리를 계속 휘둘렀다. 15.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간직한 불가시 의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놀라울 뿐이다. 한밤중에 큰 도시로 들어서면 이러한 생각에 깊이 빠져들기 마련이다. 27.
바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였고 그 모양새는 영락없는 파괴 행위였다. 42.
모두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가난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61.
그 머리카락을 내게 주시오. 내 몸이 탈출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지만, 내 영혼이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오. 89.
인생의 폭풍도 결국은 잦아들고 인간다운 삶의 상징인 안식과 고요가 찾아오는 법이다. 93.
결국 텔슨 은행은 불편의 극치라는 오명을 얻었다. 104.
이 시기는 주정뱅이의 시대였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술을 지독하게 마셔댔다. 167.
결국 호사가들은 카턴을 두고 결코 사자는 되지 못하겠지만 굉장히 뛰어난 자칼이어서 스트라이버의 부족한 능력을 메워준다고들 말했다. 169.
슬프고 슬프게도 해가 떠올랐다. 능력이 뛰어나고 마음도 선하지만 제대로 쓸 줄 모르고, 자신의 이익이나 행복을 추구하며 살지 못하는 이 남자. 해충이 몸에 붙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체념한 채 자신을 갉아먹도록 놔두는 이 남자 위로 햇빛이 비쳤다. 이보다 슬픈 광경은 없었다. 178.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적막하군요! 사람들이 발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 다네이가 말했다. 198.
게다가 숭고하기 짝이 없게도 일반적인 일이든 특정한 일이든 세상은 자신의 쾌락을 채우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했다. 후작 나리 같은 귀족은 자신들이 믿는 성서의 구절을 대명사만을 바꿔서 원칙으로 내세웠다. 205.
소명 의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그들은 소름 끼칠 만큼 위선을 떨었지만, 후작과 관계가 멀든 가깝든 상류층이었으므로 임무와 아무 상관없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후작이나 국가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긴 했지만 세상의 진실이나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무관심한 사람들 역시 넘쳐났다. 있지도 않은 질병을 생각해 내서 그럴듯한 치료법으로 돈을 긁어모은 의사들이 후작 저택의 접견실에서 귀족 환자들을 보며 연신 미소 지었다. 나라를 좀먹는 사회악을 제거할 방안을 마련했다는 이론가들은 유일한 악을 뿌리 뽑는 데 충성하기보다는 후작 나리의 접견실에 모여 아무나 붙잡고 되는 대로 허튼소리를 남발했다. 말로 세상을 다시 구성하고 카드로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바벨탑을 세웠다는 믿지 못할 철학자들과 비금속을 금속으로 바꿀 수 있는 눈을 지녔다는 미덥지 않은 연금술사들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놀라운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 사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생각해야 할 주제에 한결같이 무관심하기로 유명한 좋은 집안 출신의 완벽한 귀족들도 진이 다 빠진 모습으로 후작 나리의 저택에 모여 있었다. 207.
성가신 생명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단순한 행위를 했다고 해서 어머니로 불릴 수도 없지만, 상류층 여자들은 육아는 안중에 없었다. 자신의 생활양식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들은 소작농의 아내에게 아기를 키우게 했고, 육십 대이지만 매력적인 노파들은 스무 살 아가씨처럼 옷을 입었고 음료수를 마실 때도 내숭 떨며 홀짝였다. 208.
비현실성이란 전염병이 후작의 접견실에 모인 온갖 작자들을 죄다 병들게 했다. 208.
옷차림은 모두가 제자리를 지키게끔 해주는 가장 확실한 부적이자 마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열리는 가장무도회에 옷을 갖춰 입고 참석했다. 209.
그러나 귀를 막은 도시와 입을 다문 시대에도 이따금씩 불평은 터져 나왔다. 212.
생기를 잃은 작물들은 이를 재배하는 농부와 아낙처럼 마지못해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 축 늘어진 모습으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219.
가난은 오랫동안 서서히 심해지고 있었지만 아직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고, 이 엄청난 빈곤을 상징하는 슬픈 십자가 앞에 한 여인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226.
시드니 카턴이 어디서든 빛이 난다 해도 마네트 박사의 집에서는 예외였다. 1년 내내 그 집에 드나들면서도 그는 늘 뚱하고 시무룩한 태도로 겉돌았다. 말을 시작하면 곧잘 했지만 무엇에도 관심 없는 무기력의 구름이 너무 짙게 드리운 나머지 내면에서 타오르는 빛이 그 먹구름을 뚫고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290.
그건 내가 처신을 잘못한 탓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목소리를 더 높였어야 했는데 말이죠. 375.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나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이 그 친구의 성격이겠죠. 부분적으로는 타고난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병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건전한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커집니다. 그 친구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393.
전에는 일이 없던 말라빠진 맨 팔뚝도 이제는 항상 일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이는 바로 때려 부수는 일이었다. 뜨개질하는 여자들의 손가락도 찢고 뜯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자 대단히 잔인해졌다. 이제 생앙투안은 달라졌다. 수백 년 동안 망치질을 당해왔지만, 최근에 받은 최후의 일격이 그 모습에 분명하게 새겨졌다.
나리들은 국가가 주는 축복이었다. 매사에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은, 화려하고 빛나는 삶의 표본으로 그러한 목적을 위해 많은 일을 저질러온 자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리 계급들은 어찌 된 일인지 세상을 이 꼴로 만들어놓았다. 자신들을 위해 창조한 세상이 분명한데도 이렇게 금세 바닥이 드러나도록 쥐어짜 내다니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영원할 것 같은 세상에 시야가 좁은 뭔가가 끼어든 게 분명했다. 정말 그랬다. 441.
확실히 그들은 모두 유령이었다. 틀림없었다! 길고도 비현실적인 이 여행 끝에 결국 그는 악화되는 질병처럼 암울한 무덤가에 다다르고 말았다. 494.
기요틴, 즉 단두대는 농담의 소재로 자주 오르내렸다. 그것은 두통을 확실하게 씻어주는 치료약이었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새는 것을 막아주는 염색약이었으며, 얼굴을 연약하게 보이게 해주는 독특한 화장품이었다. 또 깔끔하게 면도해 주는 국민의 면도날이었다…. 단두대는 십자가를 대신해 인류 재탄생을 상징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십자가 목걸이를 풀어버리고 단두대 모형을 목에 걸었고, 십자가를 거부하고 단두대에 머리를 조아리고 이를 숭배했다. 529.
죄수들은 극도로 흥분하거나 광란에 빠져서 쓸데없이 단두대에 맞서 싸우다가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단순히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민심을 흔드는 지독한 전염병이었다. 전염병이 창궐하면 어떤 사람들은 전염병에 은근히 매혹되어 그 병으로 죽고 싶다는 끔찍한 바람을 품기도 한다. 인간들은 모두 비슷하게 각자의 마음에 기묘한 욕망을 숨기고 있고, 이를 드러낼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546.
주변 공기는 무겁고 어두웠다. 사람들의 마음은 복수심으로 이글거렸고 너무도 변덕스러워서 언제 바뀔지 알 수 없었다. 사악한 범죄 의도를 품었다는 모호한 혐의를 쓴 무고한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끊임없이 사라졌다. 557.
공포와 불신이 세상을 뒤덮은 시절이었으므로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방식도 모조리 바뀌었다. 559.
그는 도끼 그림자에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다. 공포정치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변절과 배신을 일삼았지만 자그마한 소문에도 완전히 몰락할 수 있었다. 일단 고발당해서 지금 카턴이 말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고 나면, 드파르주 부인이 살생부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목을 치려고 달려들 것이 뻔했다. 583.
인생의 끝자락에 다가갈수록 마치 원을 그리는 것처럼 처음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가야 할 길을 차분하게 준비한다고나 할까요. 603.
돈으로 목숨을 구하지 못한 일흔 살의 농부도 있고, 가난하고 미천하여 자신을 지키지 못한 스무 살의 재봉사도 있었다. 인간의 사악함과 무관심이 초래한 육체의 질병이 모두를 엄습했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억압, 비정한 무관심이 만들어낸 끔찍한 무질서가 모두를 고통스럽게 했다. 674.
그 당시에는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끔찍한 괴물로 변해버린 여자들이 많았다. 702.
무고한 사람이 조상이 지은 죄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해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무고한 사람이 아니라 그 조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부인이 과부가 되고 딸이 고아가 되어도 아무렇지 않았고, 심지어 그것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703.
요즘 세태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유독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지루한 부분도 있어서 대충대충 넘긴 장도 있지만 순간순간의 집중도는 다른 어떤 때보다 높았다. 다 읽고 나서 여운이 한참 동안 남았다. 심신이 어수선해서 정리하기는 좀 그렇지만 마음도 기분도 무겁고 그냥 마음에 무겁게 남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