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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우노단주의 시작

생각을 팝니다.

by 에밀


아주 조용한 밤이었다.

휴대폰 화면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도, 뭘 성취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그냥, 다음 날을 준비하기 위한 습관적인 휴식 같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밤에는 마음 한쪽이 계속해서 나를 건드렸다.


“뭔가를 만들고 싶다.”


아주 작은 울림이었지만, 그 울림이 내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처음에는 별 의미 없다고 넘겼다.

직장인의 하루는 늘 비슷하고, 실무는 늘 촘촘하다.

낯선 욕구 하나쯤은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울림은 계속 나를 두드렸다.

이유도 모르겠는 마음의 진동이 몇 날 밤을 따라다녔다.


딱히 거창한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책 한 권을 더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아니었다.

그냥 손에 잡히는 ‘형태’ 하나 만들고 싶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충동 같은 것.

그런데 그 감정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단주가 떠올랐다.

왜 하필 단주였는지 정확한 이유를 말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그렇듯, 마음의 균형이 기울어질 때마다 잡고 싶은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그 시기의 나는 ‘손에 남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흔들릴 때 붙잡을 작은 무게,

집중할 때 만지작거리게 되는 작은 질감,

출근길 손목에 가볍게 남는 은의 차가움 같은 것.


어쩌면 단주는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서랍에 있던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아주 짧게 적었다.


단주를 만들면 어떨까.”


한 줄뿐인데, 그 한 줄이 생각보다 큰 힘을 갖고 있었다.

그 한 줄을 적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는 흐릿하지만,

종이에 내려오는 순간 마음의 형태가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다시 한 번 그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여러 날을 반복해 단주를 떠올렸다.

어떤 색이면 좋을까.

은을 쓸까, 스테인리스를 쓸까.

흑요석이나 오닉스를 사용하면 어떨까.

그리고 단주라는 ‘형태’에 어떤 의미를 담을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은 사실 생각의 확장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나는 하루 종일, 퇴근길에, 샤워할 때도 단주를 떠올렸다.

그 과정은 이상하게도 나를 조금씩 기분 좋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무언가가 나를 움직이고 있었다.


브랜드 이름을 고민하는 과정은 더 재미있었다.

어느 날은 어울리지 않는 이름 목록만 몇 페이지를 적었다.

어느 날은 ‘정체성’을 추출하듯 단주의 감각을 단어로 정리했다.

그러다 “우노(UnO)”라는 어감이 자꾸만 입에 남았다.

단순하면서도 부드럽고, 기억에 남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단주’를 붙일지, ‘브레이슬릿’을 붙일지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가장 솔직한 형태를 택했다.


UNODANJU.


느낌이 좋았다.

나는 내가 뭔가에 마음을 쓰면 바로 알곤 한다.

사람이든 일든 생각이든, 그 감정은 오래 숨기지 않는다.

UNODANJU라는 이름은 처음 적은 순간부터 나를 붙잡았다.

그날 밤 나는 이름을 여러 번 적어보고, 발음해보고, 스케치를 그렸다.

브랜드가 아니라, 그냥 내 안의 작은 세계 하나를 만들어보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기록’이 시작되었다.

노트에는 재료가 적히기 시작했고, 이미지 검색이 늘어났고,

1688의 상점과 대화를 하는 밤도 많아졌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중국 판매자에게 “이건 가능한가?”를 물어보며

조금씩 ‘현실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 책에 담길 내용들은 바로 그 과정이다.

이 책은 기획서를 쓰는 기술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생각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현실의 형태가 될 때까지의 모든 흔적을 기록한 책이다.


누군가는 “브랜드 만들기”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보다 훨씬 더 개인적인 과정이었다.

그건 나를 다시 일으키는 과정이었고,

내 감각을 깨우는 과정이었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탐색이었다.


우노단주라는 브랜드는

대단한 철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저 아주 작은 감정 하나에서 태어났다.

그 감정을 붙잡았고

그 감정을 잃지 않기 위해 기록했고

그 기록이 나를 한 걸음씩 앞으로 밀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을 한다.

하지만 생각을 현실로 끌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반짝이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기로 했다.

생각이 사라지는 대신

현실로 내려오게 만드는 과정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남기기 위해서.


이 책은 그렇게 태어났다.

작은 단주의 무게처럼,

가볍지만 오래 손에 남는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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