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
운수 좋은 날? (냐짱, 달랏)
밤새 중국인 아저씨들의 떠드는 소리와 엄청난 코골이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새벽 5시 반에 도착하니 피곤함이 급격히 몰려왔다.
게다가 숙소도 정하지 않은 채 온 상태였고, 설상가상 배는 고프고 핸드폰 밧데리는 얼마 남지 않았다,
발품을 팔아 몇 군데 돌아다녔지만 아고다나 부킹닷컴에서 확인한 가격과 실제로 주인이 요구하는 가격에는 꽤 큰 차이가 발생했다. 더구나 남아있는 방도 별로 없었으며, 있다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1시간여를 헤맸지만 등에 맨 배낭의 무게만 점점 무겁게 느껴질 뿐 성과가 없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결국 길거리에 주저앉아 밧데리가 다되기 전 가까스로 숙소를 예약했다.
드럽게 피곤했지만 짐만 놓고 대충 씻은 뒤 밖으로 나왔다. 우선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냐짱센터까지 도착했다. 뭘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지방 중소도시에 있는 적당한 크기의 쇼핑몰이었다.
딱히 뭘 살 것도 아니면서 쇼핑센터는 왜 꼭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냥 시원해서일까? 아니면 그렇다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일까?
냐짱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나쨩 대성당을 찾았다. 귀여운 느낌의 다낭 대성당에 비해 화려하고 그 규모도 꽤 큰데다 높은 곳에 자리 잡아 그런지 전망도 좋고 시원했다.
성당 주변을 샅샅이 훑어보고 그늘에서 한참을 쉬며 사진도 여러 각도로 찍어댔다. (마침 이곳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 덕분에 성당은 삽시간에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고, 우리는 그 광경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큰 동네는 아니었지만 이름 있는 휴양지답게 이곳저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고, 높은 빌딩들이 즐비했다.
내가 기대했던 작은 시골마을의 한적한 바닷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마치 괴물처럼 변해버린 해운대를 보는 느낌과 비슷해 살짝 울적한 마음까지 들었다.
실망스러운 냐짱의 첫인상이었지만 그래도 놀 건 놀아줘야 하지 않겠나?
잘하는 건 아니지만 한낮에는 거의 바다에서 수영을 즐겼다. 바다가 깨끗하지 않지만 그것도 적응되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한 번은 작은 새우(?)로 추정되는 애들이 수백만 마리(?)가 튀어올라와 소스라치게 놀라서 둘 다 밖으로 전속력으로 뛰어나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해프닝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태연하게 수영을 즐기던데 그게 더 신기했다.
남는 시간에는 뽀나가사원 구경도 하고 담마켓을 둘러보다 간단한 기념품도 구입했다.
길거리에 자리 잡은 로컬 꼬치구이집에서 저녁과 함께 맥주 한 병을 마시고 20만동이라는 저렴한 바가지를 당해주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마사지받고 오겠다던 후배는 가게에서 50만동을 털리는 경이로움을 맛보고 돌아왔다.
따로 금고가 없어 배낭 깊숙이 잘 모셔두었던 현금중 50만동권 3장이 사라지고 대신 2만동권 3장으로 둔갑하는 마술도 경험했다. (주인과 한참 싸워서 100만동을 복구받았다-50만동과 2만동짜리가 색깔이 비슷해 눈치채기 어려움)
★냐짱 밤바다에서 열심히 물놀이 하는 러시아(?) 꼬마
https://youtu.be/G7c46a8vPI8?list=PLNp48vdGYpZnT_LEjFVhLHpr7JKmwyMCD
3박을 마치고선 이른 아침 달랏으로 출발했다. 정오쯤 도착한 달랏은 이제껏 만나왔던 베트남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고지대여서 그런건지 도시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은 쑤언흐엉 호수 때문인지 뭔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간직한 동네였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크레이지 하우스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미로처럼 꾸며진 집을 곡예하듯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너며 한참을 구경했다. 높은 곳을 이어주는 길은 너무 좁아서 두 명이 지나가기도 힘들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이러다 떨어지는 건 아닌가 겁도 났지만, 탁 트인 전경과 살살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 상쾌했다.
달랏 성당에 들려 약간의 경건함을 획득한 뒤 호수 근처 빅씨마트로 가서 각자의 전리품을 챙기고 숙소에 돌아오니 벌써 저녁이었다.
우리는 사실 전혀 한식을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보름넘게 쌀국수와 베트남 음식만 먹어오기도 했고, 마침 숙소 사장님이 한국분이 운영하신다는 '한우리식당'을 알려주셔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곳을 찾아갔다.
베트남 음식에 비해서는 당연히 비쌌고 우리에게는 사치였지만, 그날 먹은 삼겹살과 소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맛이 있었다. (아마도 너무 한식을 굶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다음날 찾아간 다딴라폭포는 생각보다 꽤나 볼만한 규모였고, 내려가는 길에 탈 수 있는 롤러코스터는 우리에게 극강의 재미를 선사했다. 솔직히 캐녀닝은 보는것만으로도 무서워서 도전하지 못했다.
한참을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케이블카도 타러갔다. 물론 남자 둘이는 이런거 타는거 아니다. (오사카의 아픈기억)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손인사하는 걸로 이 어색함을 무마시키려 꽤나 노력했다.
저녁무렵 달랏에서 가장 핫하다는 반쎄오 가게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지만, 튀김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와 후배는 콜라의 도움을 받고서도 반도 채 먹지 못했다. 솔직히 가장 실망스러운 베트남 음식이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 문제이므로 대부분은 맛있다고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너무 느끼했고 특징적인 맛을 알아내기도 어려웠다.
★다딴라폭포에서 롤러코스터 타기 제1코스
https://youtu.be/xx27hOceKE0?list=PLNp48vdGYpZnT_LEjFVhLHpr7JKmwyMCD
★다딴라폭포에서 롤러코스터 타기 제2코스
https://youtu.be/OyCPAspX3tc?list=PLNp48vdGYpZnT_LEjFVhLHpr7JKmwyMCD
늘 참담한 무댓글이거나 이곳에는 없지만 '부러워요~ 저도 여행가고싶어요~'라는 댓글이 끝이었지만,
여행 초기인 하이퐁 때부터 시작된 "저녁때 맥주한잔 하실분?" 으로 여행 카페에 글을 올리는 건 달랏에서도 계속됐다.
후배의 핀잔이 계속되던 그때 드디어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세요?"
"여기는 달랏 센트럴 호스텔입니다. 어디세요? 저녁때 맥주 한잔 하시죠?"
"저는 달랏하우스쪽에 살아요. 오토바이 있으니 우리집에서 한잔해요"
가볼까 생각했지만, 후배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오라는 것도 수상하며, 괜히 갔다가 어디 팔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지만, 이곳에 사신다고 하니 별일이야 있겠냐 싶어 택시 타고 찾아가기로 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내렸는데도 한참을 나오지 않아 잘못 온건 아닌가, 괜히 오겠다고 했나 후회가 밀려올 때쯤 급히 이쪽으로 뛰어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걱정과 달리 조금은 작은 체구의 그분은 늦어서 미안하다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알고보니 베트남분과 결혼해서 이곳에서 살고 계신분이었다. 아내분은 한국말을 잘해서 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고, 딸 '혜리'는 오랜만에 보는 손님들이 신기했는지 계속 우리 주변에서 놀면서 엄청난 애교를 시전했다.
냉장고 가득찬 맥주와 바로 구워 먹는 삼겹살은 꿀맛이었다. 정말 염치 불구하고 먹어댔고, 더 먹고 가라는 걸 억지로 뿌리치며 자리를 일어났고, 한사코 거절하시던 아내분께 억지로 20만동을 쥐어주고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왔다.
달랏을 떠나기 아쉬웠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무이네로 출발했다.
아침 대신 먹으려 샀던 반미를 중간에 잠깐 쉴 때 까보니 빵반, 고수반이다. 아무리 고수가 익숙해졌다지만 너무 많이 들어간건 역시 무리다. 반쯤 먹다 개들한테 던져주니 빵과 고수만 빼고 알맹이만 빼먹는다. 귀신같은 녀석들.
산길을 한참을 더 달려 정오쯤 무이네에 도착했다. 따가운 햇살과 밥 먹으러 오라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외침이 우리를 반긴다.
마지막편. 무이네와 호치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