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그리고 마무리
베트남, 그리고 마무리 (무이네, 호치민)
아스팔트 위로 작열하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하지만, 아저씨의 엄청난 호객행위에 비해 맛은 현저히 떨어졌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볶음밥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배 채우는데에 만족해야했다.
내일 새벽에 있을 선라이즈 투어를 11만동씩에 예약하고 수영을 좀 해볼까 하고 바닷가로 진출했다.
그러나!!
이쪽 바다는 아무리 봐도 수영할만한 구조가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백사장으로 쫘악 펼쳐진 바닷가가 아니라 시멘트가 덮여있는 삭막한 바다다. 당연히 수영하는 사람도 없거니와 파도도 너무 높아서 감히 엄두도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바닷가를 걸어가다가 이곳에서는 수영이 어려움을 감지하고 빠르게 포기해버렸다.
대신 근처 커피집에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로 만족해야 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도로 위로는 가끔씩 택시나 오토바이가 한두 대씩 지나다닐 뿐이고,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커피집을 떠나 숙소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커피집이라고 실내에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그런 카페를 연상하면 안된다. 당연히 실외에 햇빛만 가릴 수 있게 해놓은게 전부지만 편히 앉아서 시원한 음료를 마실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해가 저물고 적당히 어두워지자 우리는 숙소 근처에 있는 '버거리아' 라는 식당을 찾았다.
수제버거와 케사디야를 하나씩 시키고 맥주를 마셨다. 식당에서 기거하는 고양이가 어슬렁거리며 우리 주위를 맴돌 뿐 단 한 명의 손님도 들어오지 않았고 반대편 식당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나 한적해서 조금 심심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너무나 편안한 밤이기도 했다.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선라이즈 투어는 숙소 앞으로 픽업이 온다. 우리는 3시 30분쯤 일어나 각자 큰일을 치르고 이만 닦고 나갔다. 아니, 아마도 닦은것 같다. 남자들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미 지프에는 5명이 들어가 좋은자리를 선점해있었고 우리는 맨뒤 간이의자에 겨우 엉덩이를 붙일 수 있었다.
중국인 여자 둘은 맨 앞 좌석에서 떠들어대며 중간에 앉은 서양인 커플에게 친한 척 해댔지만 우리에게는 눈인사조차 없었고, 단 한 번도 자리를 양보하려는 배려 따위도 없었다. 나쁜X들.
맨뒤에 같이 앉은 베트남 청년만이 우리의 대화 상대였다.
생각보다 한참을 어스름한 새벽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화이트샌듄.
40만동 바이크는 우리에게 사치라 무작정 남들 걷는 방향으로 모래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언덕에 앉아 이제 막 떠오르려는 해를 바라보고 앉았다.
절로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해가 떠오르면서 점차 변하는 모래언덕의 새벽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색깔을 마음껏 자랑했다.
화이트샌듄에 들러 한참을 누워있었고, 피싱빌리지에 잠깐 내려 사진 몇 장을 찍었다.
꽤나 긴 거리를 걸었던 요정의 샘물은 길 한쪽으로 이어지는 오묘한 색감의 모래바위들이 인상적이었다. 발에 닿는 모래의 촉감이 너무나도 부드럽고 특이해서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참을 밟아댔다.
하지만 도대체 왜 요정의 샘물인지는 도저히 알길이 없다.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이제 겨우 오전 8시. 쌀국수 하나 사 먹고 돌아다니다 하릴없이 어제 갔던 커피집에서 음료 2잔씩 마셔가며 죽치고 앉아있었다.
어쩐일로 한국여자 두 분이 들어오더니 옆자리에 앉아 음료를 주문했다. 반가운 마음에 말을 붙여보았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시죠?"
"아......네."
"무이네엔 언제 오셨어요? 저희는 어제 왔어요~"
"오늘요."
그리고 뭐가 불쾌했는지 등을 돌린 채 음료를 마시고 대화를 하더니 자리를 뜰 때까지 한마디의 말도, 인사도 없었다.
마치 우리를 해외에서 여자나 꼬시려고 말을 거는 치한 정도로 생각하는것 같아 기분이 언짢아졌다.
그래도 어쩌랴. 우리가 이해하는 수밖에.
새벽부터 움직여서 그런지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났다.
저녁에는 그래도 보케거리에서 해산물 좀 씹어봐야 되지 않겠나!
카페에서 연락된 30대 청년 한 명과 만나 가게 탐색에 들어갔다. 여러 집을 거쳐 흥정한 끝에 가리비와 타이거새우를 주문했다.
이렇게 풍부한 양의 가리비가 1Kg에 겨우 1500원. 새우는 1kg에 1만원.
셋이서 신나게 먹고 마시고 2만 5천원 정도 나왔으니, 역시 베트남의 물가는 축복이다.
우리는 러시아 음악이 흘러나오는 근처 맥주집에서 2차를 한 뒤 기분좋게 헤어지며 서로의 남은 여행 잘 마무리하길 기원했다.
호치민으로 이동하는 날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1성이나 2성급의 게스트하우스도 꽤나 가격이 쎘다.
오후 늦게야 도착한 호치민은 역시 덥고 복잡하고 정신없고 시끄러웠다. 달랏과 무이네를 거쳐오며 조금은 한적한 시골에 있다가 이제 막 도시에 상경한 사람들처럼 우리는 이곳에 적응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길거리에서는 각종 행사들이 펼쳐졌고 먹거리 시장들이 열렸다. 음식을 먹으려는 인파로 지나다니기도 힘들었고, 근처 공원에서는 제기 차는 청년들이 즐비했다.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빨면서 벤치에 앉아 제기 차는 모습을 한참을 구경했다.
더위를 피해 공원으로 나와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우리나라 여름을 닮아있었다.
내일부터 묵을 숙소는 데탐거리에 있는 3성급 호텔로 질렀다. 마지막 이틀이니 아주 조금은 호사를 누려보자는 심산이었지만, 아고다 특가에 쿠폰까지 발급받아 1박에 3만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었으니 사실은 끝까지 경제적인 선택이었다.
사이공 스퀘어를 포함한 각종 쇼핑몰과 벤탄시장, 통일궁, 우체국을 돌아 노틀담 성당까지 사진에 담으며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더니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일사병 걸리기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확실히 호치민이 관광의 중심인 것을 느낄수있는게 다른 곳에 비해 물가가 쎘다. 대략 1.5배에서 2배정도 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깔끔해 보이는 체인점에서 무려 10만동이나 주고 먹은 쌀국수는 베트남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없었다. 에어컨 덕분에 조금 시원하다는 점 빼고는 그 어떤 장점도 없어 보였다.
다행히도 나중에 포퀸에서 맛본 6만동짜리 도가니 쌀국수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땀과 함께 흡입할 만큼 맛이 훌륭했다.
맥주 한잔할 친구들을 카페에서 구하니 금세 2명이 섭외가 됐다. 유명하다는 꼬치구이집 목욕탕 의자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셨는데, 워낙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가격도 비싸고 상당히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딱히 맛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2차는 데탐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3층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으로 물담배를 피워봤는데 인공적인 과일향이 나면서 색다른 느낌이었지만, 담배라기보다는 그냥 수증기를 들이마시는 기분이었다.
3차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 더 이상은 맥주를 마시지 못할때까지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마지막 날 체크아웃하고 숙소에 짐을 맡긴 뒤 가까운 사이공 스퀘어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나니 더 이상은 할일이 없었다.
숙소 로비 쇼파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을 먹고 커피 한잔 마신 뒤 일찌감치 떤선녓 공항으로 출발했다.
총 26일에 걸친 베트남 종단여행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사파에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후배 소원대로 같이 마사지를 받지 못한 것도 미안했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서 뭔가 심심하기도 했지만, 쌀국수 하나 만큼은 원없이 먹고 돌아온 것 같다.
최근 베트남 열풍이 불어 정통 베트남 쌀국수를 판매하는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가격이나 맛 그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시 베트남에 갈 기회가 생긴다면 더 많은 종류의 쌀국수와 먹거리들을 경험해보고 싶다.
고급 리조트나 호텔에서만 지내고 고급식당만 다닌다면 제대로 된 베트남의 맛을 알기는 어렵다. 길거리에서 파는 쌀국수가 훨씬 더 맛있고,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가 더 여유스럽다는 것은 나 같은 배낭여행자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