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자발적 호구'가 성공할 것이다
인류에게 있어 최고의 발명품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나는 주저 없이 '법'을 첫손가락에 꼽겠다. 법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하는 안전장치다. 법이 없다면? 아마 인간은 당장이라도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빠져들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한정된 자원을 두고 벌어지는 무한 경쟁. 극단적으로는 타인을 죽이거나 잡아먹는 행동까지도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 말이다.
이런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하는가? 역사 기록 속 우리 조상들이 그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들이 그러하며, 21세기 현실에서도 폭동이나 전쟁이 벌어지면 이런 일은 여지없이 일어난다. 결국 '법'은 누구도 견디기 힘든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다 함께 포기하자”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적어도 그 약속을 따르는 사람끼리는 각자의 생명과 재산을 상호 보장받도록.
그래서 나는 이 '법'에 대한 신뢰가 높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법 없이도 살 사람", "법대로 사는 사람", 그리고 "법 없이 사는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법이 없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내 이익보다 상대방의 상처가 더 크게 보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포기한 내 몫이 아깝기보다, 내 것을 양보받은 사람의 행복한 모습이 더 기쁜 사람. 새벽 3시 빨간불에 규칙대로 멈추고, 선물을 받을 때보다 줄 때 더 즐거운 사람이다.
그리고 조금은 안쓰러운 사람이다. 이들이 바로 호구 예비후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이용당하고 갈취당할 때가 많다. 심지어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보답이 없을 줄 알면서도 기꺼이 베푼다.
그러나 이들은 착한 사람이지 바보가 아니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으니 상처도 많이 받는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가진 게 많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호구처럼 마음껏 베풀고, 알면서 속아줘도 무리해서 나가떨어지지는 않을 테니.
'법대로 사는 사람'은 약속했던 대로 사는 사람이다. 적당한 이기심과 잘 교육된 윤리의식의 균형을 이룬다. 내 것을 챙기면서 남에게 크게 폐 끼치지 않는다. 물론 조금 정 없어 보이기는 한다. "네가 나한테 이만큼 주었으니 나도 이만큼 주겠다", "내가 너에게 이 정도 했으니 너도 나에게 이 정도는 해라". 받은 게 없이 베풀 때도 나중에 돌아올 것을 계산해서 행동한다.
하지만 그게 사람이다. 완벽히 공평한 분배란 없는 법. 사람 관계란 원래 한쪽이 더 좋은 법이다. 이득도 봤다가 손해도 봤다가 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 매번 사람 사이에 저울을 두면 관계가 아니라 거래가 될 테니, 그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들일 것이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한 만큼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우리가 사는 공동체, 사회, 국가의 존재 의의가 바로 이 신뢰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더 많이 갖고 싶어 한다. 하지만 누군가 더 많이 가지면, 다른 누군가는 적게 가져야만 한다. 누가 작은 몫을 원하겠는가? 그걸 공평하게 나누기로 윤리로, 도덕으로, 관습으로, 그리고 법으로 약속하고 지킴으로써, 더 가지려는 사람을 견제하고 덜 가져가는 사람을 보호함으로써 세상이 유지되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이들은 마음 여린 착한 호구들이 멸종되지 않도록 지키는 수호자들이다.
'법 없이 사는 사람'은 빌런이다. 본인의 욕망, 욕구, 입장이 무엇보다 먼저인 사람. 사회적 약속보다 항상 내 입장이 우선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마침내 내 이익을 실존법보다 앞세운 모습이 바로 범죄자, 무법자다. 가장 좋게 말하면 인간의 본성에 충실한 사람들, 아직까지 혼자만 '자연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항상 자기중심적이기에 거리낄 게 없다. 이들 생각에는 남의 몫을 빼앗는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자기 몫을 못 챙긴 사람이 무능한 사람이다. 평생을 가도 먼저 커피 한잔을 사지 않는다. '밥은 내가 샀으니', '지난번엔 내가 샀으니', 아무 상관없다. 받는 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커피는 네가 사라"라고 말하기 전엔 꿈쩍도 않는다.
다 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분담 비용 이야기가 나올 때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두 눈을 부릅뜨고 '혹시 좋은 일이 있는 사람이 있나' 찾는다. 마침내 그 사람을 찾아내면 목소리를 높인다. "야 좋겠다. 오늘 이 자리는 네가 쏴라!"
비단 돈뿐이겠는가? 같이 일을 해도 이들은 어떻게든 덜 힘든 자리를 잡고, 같이 놀아도 더 좋은 자리를 찾는다. 물론 누군가는 그들대신 피해를 보게 되고, 역시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기서 더 기분 나쁜 건 '척'을 한다는 것이다. '손해 본 척', '양보한 척', '힘든 척', '착한 척'. 사회라는 틀 속에서 이 심성이 탄로 나면 나중에 손해 볼까 봐 '척'이라도 하고 있는 거지, 이게 가책 때문일 리 없으니 뒷맛마저 안 좋다. 둘이 만나 즐겁게 시간을 보낸 후 단 얼마라도 돈을 덜 썼다는 데서 더 큰 희열을 느끼는 사람에게 뭘 더 바랄까? 그들은 바란다. 주위가 온통 착하고 돈 많은 호구이기를.
여러분이라면 이 세 부류의 사람 중 누구와 함께하겠는가? 조금의 이익도 못 놓는 사람과 손해도 기꺼이 감수할 사람. 여러분은 누구와 같이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가? 답이 뻔한 질문을 왜 하냐고? 그 뻔한 답이 바로 세상이 호구를 사랑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호구가 성공의 기회에 가까이 있는 이유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호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도 힘들고 나에게 속해 있는 소중한 사람들도 힘들다. 원하는 만큼 양보해주되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너무 어려운 이야기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사람들이 한없이 악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많은 양보를 한 이에게 애정을 느끼고 돕고 싶어지는 게 보통의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20여 년의 현장 기억을 돌아보면 그랬다.
기꺼이 호구를 자처하고 나설 때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 상황이 많았다. 그때마다 더 큰 이익은 포기해야 했고, 더 좋은 대접은 마다해야 했지만 말이다. 업무상 완벽한 '을'이라 상대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면,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남에게 냉정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떤가? 차라리 자발적으로 호구가 되어보는 것은?
내 결론은 이렇다. 결국 호구가 성공할 것이라고. 하지만 가장 비참하게 실패하는 것도 호구라고. 사실 '스마트하게 자발적 호구되기'는 섬세한 작업이다. 호구로 살아남는 건 힘들다. 거래나 협상의 순간에 약한 상대의 목덜미를 무는 걸 비난할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람을 이용 수단으로 보는 '무법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호구로 남는 것도 힘들다.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작은 것을 지키려 한 것뿐인데, 잇속을 다 챙기는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도대체 어디까지 양보하고 포기해야 내가 안쓰러워 보일지...
하지만 일상에서, 업무에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호구로서 관계와 거래, 협상을 더 큰 성공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도 나와 상대 모두가 만족하는 모두의 성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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