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자발적 호구'가 성공할 것이다
'자발적 호구'가 되는 선택은 결코 나쁘지 않다. 호구 취급은 피하려 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활동 인구의 80%가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면 당연히 '호구'가 되는 거냐고? 아쉽지만 대답은 '그렇다'이다.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서비스업 종사자를 일컫는 다른 말인 것처럼. 이들은 감정을 희생하는 노동으로 돈을 번다. 때로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처럼, 입이 있어도 벙어리처럼 지내야 하는 힘든 직업군이다.
어느 콜센터에 전화를 했더니, 통화 연결 신호음 대신 "잠시 후 소중한 우리 엄마가 전화를 받을 거예요"라며 귀여운 꼬마가 상담원에게 폭언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 도대체 얼마나 심각하면 이런 안내 멘트가 등장할까?
정작 갑질을 하는 그들 중 대다수도 비슷한 일을 하며 같은 고충을 겪고 있을 텐데,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인간이 악해서일까? 나는 인간의 본성이 남을 괴롭히거나 상처 주는 것을 즐긴다고 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는 게 옳을까?
나는 그 원인을 '갑질이 하고 싶어서'라고 본다. '괴롭히고 싶어서', '상처 주고 싶어서'와 '갑질이 하고 싶어서'는 다르다. 물론 갑질을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갑질은 뒤틀린 욕망이며 없어져야 할 행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안쓰러운 부분도 있고 개선의 여지도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첫 번째 차이점은 그 목적과 이유다. 변태적 가학이 '가혹 행위와 피해자의 반응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갑질'은 기본적으로 자기 가치감 회복이라는 목적성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적당한 자기애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가치와 현실의 간극이 커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IMF 여파로 직장을 잃은 중장년 가장들이 택시 기사로 전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퇴근시간이 불규칙한 광고회사 특성상 심야 할증 택시를 자주 탔는데, 그때마다 "내가 원래 모 기업 임원이었는데..."로 시작하는 인생 조언을 3일에 한 번꼴로 들었다. 나는 그 기사님들을 이상하게 보거나 무시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내가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 '내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닌데'라는 마음이 그들을 힘들게 하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남들이 보는 것보다 자신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성공하는 사람은 '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구나'를 깨닫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 성공을 노력하지 않고, 자기 가치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갑질'로. '정말 소중하고 대단한 나', 그만큼 대접받고 대우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 그걸 풀 방법으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갑질'을 택하는 거다. 애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만 졸지에 '누구만 못한 사람'이 되어 갑질이라는 폭력의 일방적인 피해자가 된다.
'변태가학'과 '단순갑질'은 같은 행위지만 그 이유와 목적이 다르기에 다음의 차이가 있다. 두 번째는 상황을 반전시킬 적절한 대응이 존재하는가이다. 이 부분이 정말 중요하다. '자발적 호구'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이자 조건이 될 수 있다.
사이코패스의 가학 행위에 적절한 대응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갑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기 가치를 인정받으려 저런 미운 짓을 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 말이다. 우리라면 그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을'을 자처하고 있는 '자발적 호구'인데,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인정받길 원한다는데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이게 더 어렵다는 게 맹점이다. 그래서 우리 '자발적 호구'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에너지 불변의 법칙'은 물리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쪽이 받아 가지면 다른 쪽은 주고 없어진다. 돈이나 물건뿐 아니라 감정도 마찬가지다. 한쪽이 만족하면 다른 쪽은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그 상처가 너무 아파 쉽게 감당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직업이, 내 천성이 '을'로서 '갑질'을 받아내야만 하는 상황인 것을. 버티면 버틸수록 상처만 더 커지는 것을.
'갑질'은 이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재해이다. 이럴 때 차라리 '을'을 자처하고 나섬은 어떨까? 어릴 때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이미 많이 듣지 않았나? 강풍에 부러지는 단단한 소나무처럼 갑질에 내 마음이 무너지게 둘 수는 없지 않겠나? 유연한 대나무가 태풍을 버텨내듯, '자발적 호구'가 되어 갑질이라는 재해를 이겨내 봄은 어떨까?
그러나 여기서 안 좋은 소식 하나를 전한다. 사실 '자발적 호구'도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나무에게 '유연성'이 있듯, '자발적 호구'에게도 갖춰야 할 소양과 덕목이 있다. '사랑받는 호구'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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