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호구의 표현법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전투 민족'인가 보다.
'임전무퇴'의 화랑정신을 이어받은 탓인지, 눈앞에 벌어진 싸움을 가볍게 포기하는 법이 없다.
머리로는 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상황상 지금 내가 한 발 물러서는 게 훨씬 이롭다는 것도 계산이 선다.
그깟 작은 이익 따위는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놈의 '승부욕'만큼은 좀처럼 접어지지 않는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논리적으로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 직성이 풀리고, 상대가 "네, 제가 틀렸습니다"라고 항복을 선언해야만 잠이 온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승부라는 게 그렇다.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지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이기면, 상대는 진다.
너무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문제는 우리가 승패가 판가름 나는 그 결정적인 순간, 승리의 달콤함에 취해 이 잔인한 사실을 까맣게 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쾌감을 느끼는 그 순간, 당신 앞의 파트너는 비참함을 느끼고 있다.
'프로'라면, 그리고 '전략가'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당신이 지금 기어코 이겨먹으려는 그 태도가 왜 가장 하등한 전략인지 낱낱이 파헤쳐보겠다.
이 분야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는
"절대로 논쟁하지 말라"는 말이 수차례 반복해서 나온다.
왜일까?
논리로 상대를 묵사발 내는 것은 통쾌하겠지만,
그 승리 위에서 상대방의 '온전한 동의'나 '인간적인 호의'는 절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논쟁보다 더 한심하고, 더 최악인 상황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 한정 '무적의 치트키'를 사용하는 경우다.
"어디서 엄마 말에...", "선배가 말씀하시는데...",
"그래도 내가 형인데...", "언니 말이 우습니?"
논리로 안 되니, '관계의 우위'를 들먹이며 던지는 일방적인 승리 선언이다.
논리로 밟히니 억지로라도 이겨보고 싶은 그 마음, 오죽하겠나 싶다.
하지만 그 억지 다짐은 그냥 안쓰러울 뿐이다.
이건 승리가 아니다. 그저 '힘에 의한 제압'일뿐이다.
이런 식으로 얻은 승리의 전리품이 무엇인지 아는가?
상대의 존경심? 천만에. "꼰대"라는 비멸적인 이름표뿐이다.
당신이 자신만만하게 뽑아 든 그 '권위의 칼'은, 상대방이 당신을 인정할 때만 유지되는 것이다.
힘으로 상대를 핍박해 입을 막아버리는 순간,
상대는 마음의 문을 닫고 관계는 회복 불가 수준으로 망가진다.
그리고 당신의 권위도 형체 없이 사라진다.
특히 당신이 마주한 사람이 '프로'의 세계에서 만난 파트너나 고객이라면, 이 승부욕은 재앙이다.
기억하라.
비즈니스 관계에서 상대방은 적(Enemy)이 아니다.
그들은 파트너이고, 고객이며, 나아가 나에게 돈을 벌게 해주는 '고마운 은인'이다.
은인을 이겨먹고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자발적 호구'는 이 지점에서 영리하게 계산기를 두드린다.
"내가 오늘 져주고 상대의 기분을 세워줌으로써,
이 사람이 나에게 가져다줄 더 큰 이익을 챙기겠다."
내가 지고 상대가 이기게 해 주어라.
그 덕분에 당신은 분명 더 큰 이익을, 더 오래 가져갈 수 있다.
전투(말싸움)에서 이기고 전쟁(비즈니스)에서 지는 멍청한 장수가 되지 마라.
눈앞의 상황을 내 마음대로 끝냈어도, '사람'을 잃으면 아무것도 얻은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의 '기분'을 챙기려다, 당신의 밥줄이 되어줄 소중한 '사람'을 내치지 마라.
당신의 오늘은 어떠했는가?
오늘도 끓어오르는 승부욕을 참지 못해,
부하 직원에게, 가족에게, 혹은 파트너에게 "내가 형인데!", "내가 선배인데!"라며 억지 승리를 거뒀는가?
아니면 '기분' 대신 '사람'을 얻기 위해, 기꺼이 패배자가 되어주는 '위대한 전략'을 선택했나?
진짜 이기는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 웃으며 져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기어코 이기려 들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아주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쏟아내려는 것'이다.
내 논리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는 욕심을 부린다.
‘이것도 알려줘야 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아참! 이 얘기도 해야 해.’
당신은 그것을 '빈틈없는 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두서없는 쓰레기 더미를 마주친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이 시리즈를 매듭짓는 마지막 글, [이것만은 말하지 말아라] 네 번째 편에서는
광고계의 전설적인 일화 하나를 들려주겠다.
광고주에게 공 4개를 한꺼번에 던져버린 기획자의 이야기를 통해,
왜 당신의 말이 길어질수록 상대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지,
'15초의 예술'이라 불리는 광고의 경제학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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