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잠을 청하는 노력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헛헛하고 당연한 불면의 밤.
어둠 속에서 스마트폰의 푸스름한 빛만이 유일하게 깨어 있는 내 퀭한 눈동자를 비춘다. 무심코 웹툰 어플리케이션을 켜고 습관처럼 스크롤을 내리다, 어느 화려한 썸네일 앞에서 손가락이 멈칫한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피투성이가 된 채, 악에 받쳐 포기를 모른다 외치는 소년의 얼굴. 예전 같았으면 단숨에 홀린 듯 클릭했을, 이른바 정통 '소년물'이자 '성장물'이다. 그러나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그 뜨거운 눈빛을 위로 밀어 넘겨버린다. 대신 내가 고른 것은 이미 완성형인 주인공이 환생해 초반부터 세상을 호령하는 절대 강자, 이른바 '먼치킨(Munchkin)물'이다. 아무런 고난도, 눈물겨운 시련도 없이 손가락 하나로 적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그 한없이 가벼운 서사 속으로 나는 도망치듯 빠져든다.
나도 마흔의 문턱을 넘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땀 냄새가 진동하고 눈물이 범벅된 서사에 기꺼이 피가 끓던 사람이었다. 재능 없는 외톨이가 수천 번의 맨주먹질 끝에 마침내 세상의 인정을 받아내거나, 농구 코트 위에서 땀과 눈물을 쏟으며 몸을 던지던 그 흔하고도 찬란한 영광의 궤적들. 나는 그들이 진흙탕을 구르고 깨지며 껍질을 깨는 모습에 내 삶을 투영하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영광을 위해 그토록 아프게 버텨내는 또 다른 영광의 시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사랑했다. 젊음이란 무한한 배터리와 같아서, 타인의 고통이나 허구의 시련에 깊숙이 이입하고도 거뜬히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특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의 처절함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화면 속 주인공이 시련을 겪고 좌절하며 바닥을 칠 때면, 내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숨이 턱턱 막혀온다.
'아, 나 하나 건사하며 살기도 벅차 죽겠는데, 이제는 가상 세계의 누군가가 저토록 힘들어하는 것까지 지켜봐야 하나.'
피곤함과 짜증이 머릿속을 맴돈다. 고난 끝에 오는 달콤한 열매를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이제 내게 없다. 시작부터 상처받지도, 실패하지도 않으며 단숨에 정상을 꿰차는 압도적인 강자에게서만 위안을 얻을 뿐이다.
시련 없는 승리에만 환호하는 나의 얄팍함이라니.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타인의 가상한 고통마저 외면해 버리는 나의 이 좁아진 마음은, 그저 나이가 들어 낡아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하루하루 살아내는 일이 지독하게 고단해서일까. 탁자 위에 놓인 식어버린 블랙커피 한 모금을 삼키니, 혀끝에 맴도는 그 씁쓸한 맛이 마치 쪼그라든 내 열정의 크기 같아 속이 상한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어떤 위기도 없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적들을 베어 넘기는 먼치킨 영웅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문득 뒤엉킨 생각의 타래를 반대로 풀어본다. 나의 이 무기력해 보이는 취향의 변화가 과연 단순히 늙고 지쳐서 공감 능력이 퇴화했다는 증거일 뿐일까?
우리는 삶이라는 거대한 링 위에서 매일같이 잽을 맞으며 살아간다. 아침 지옥철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억지웃음을 지어야 하는 직장인의 굽은 어깨, 마트의 차가운 매대 앞에서 몇백 원의 차이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생활인의 주름진 이마, 부조리한 세상의 요구 앞에서도 묵묵히 고개를 숙이는 중년의 먹먹한 침묵. 이것들은 모두 그 어떤 소년 만화보다 치열하고 피 튀기는 '성장물'의 한 장면들이다. 현실에서 우리는 수많은 불통제 변수 속에 놓여 있다. 갑자기 치솟는 대출 이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육신의 병환, 아무리 진심을 다해도 좁혀지지 않는 타인과의 오해. 우리는 늘 무력함을 마주하며 고군분투한다.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매 순간 한계에 부딪히고, 보이지 않는 상처를 꿰매어가며, 이름 없는 영광을 위해 온몸을 던져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주인공이다. 그렇기에 허구의 세계에서마저 주인공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는 것은, 간신히 아물어가는 내 상처의 딱지를 다시 헤집는 일과 같다.
결국 먼치킨물에 대한 우리의 헛헛한 열광은 현실 도피나 비겁함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같이 버거운 시련을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우리 자신에게 허락된 '작은 진통제'다. 고난을 회피하려는 얄팍한 마음은 사실, 이미 현실의 무거운 짐을 훌륭히 짊어지고 걷는 자들의 당연하고도 정당한 휴식에 대한 갈망인 것이다. 가상 세계의 절대 강자가 손쉽게 적을 물리칠 때 우리가 느끼는 쾌감은, 고된 하루를 끝내고 답답한 양말을 벗어던지는 순간의 해방감과 맞닿아 있다. 내 의지대로 세상이 움직여주는 그 평온한 감각, 단 한 번이라도 변수 없이 예측 가능한 승리를 거두고 싶다는 소박한 판타지. 치열한 성장은 이미 현실의 내 몫으로 차고 넘치니, 이야기 속 너만은 제발 다치지 말고 편안하게 이겨다오. 그것은 어쩌면 매일 남몰래 상처받는 나 자신을 향한 무의식적인 위로이자 연민이었을지도 모른다. 무거운 서사를 외면하는 현상은 영혼의 고장이 아니라, 삶의 질감이 짙어지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마음의 애틋한 방어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방 한구석, 책장에 꽂혀 있는 빛바랜 만화책들을 가만히 눈으로 더듬어본다.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무릎이 깨지도록 달리던 주인공들은 내 젊은 날의 초상처럼 여전히 아름답지만, 이제 나는 그 무거운 책장을 기꺼이 덮어둘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더 이상 매 맞으며 크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자랐고, 또 충분히 버텨내고 있으니까.
당신도 혹시 시련 없는 쉬운 이야기, 갈등 없는 가벼운 승리만 찾게 되는 자신을 보며 멋쩍어하고 있는가. 뜨거웠던 청춘의 열정이 식어버렸다며 밤의 정적 속에서 홀로 자책하고 있다면, 이제 그 무거운 마음의 짐을 스르르 내려놓아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지금 절대 강자의 손쉬운 승리에 기대어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신의 현실이 그만큼 맹렬하게, 한 점의 후회도 없이 타오르고 있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눈부신 증거다.
내일이면 우리는 또다시 아무런 초능력도, 무적의 방패도 없이 맨몸으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적과 맞서야 하는 팍팍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오늘 밤만큼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우아하게 세상을 구하는 그 비현실적인 영웅의 등 뒤에 숨어 마음껏 숨을 고르자. 당신은 이미 당신 삶이라는 가장 위대하고 험난한 대서사시의 주인공으로서, 매일같이 주어지는 영광의 상처들을 너무나도 훌륭히 견뎌내고 있으니까. 이 깊은 밤, 스마트폰의 차가운 푸른빛 아래서 당신이 만나는 그 싱겁고도 쉬운 승리가, 내일의 무거운 하루를 기꺼이 버티게 할 따뜻한 위로가 되기를 조용히 빌어본다.
상처 없는 영웅에게 위로받는 밤, 그것은 치열하게 살아낸 나에게 건네는 작고 다정한 진통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