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 오늘따라 타고 왔던 이면도로의 반대쪽 차선이 꽉 막혀 있다.
그 막힌 길로 그냥 가야 할지, 아니면 퇴근하는 차량들과 섞이더라도 그나마 큰길인 올림픽대로로 우회해야 할지. 이런 고민의 끝에 문득 생각이 스친다.
이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조차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방향타를 쥔다. 차선을 바꿀 것인가, 그대로 직진할 것인가. 이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갈 것인가.
이 사소한 움직임부터 삶의 굵직한 궤적을 정하는 일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쉼 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나이가 들고 세월의 때가 묻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진 자리에 서게 된다. 직장에서는 조직의 장으로, 집안에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때로는 그저 연장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임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지혜가 쌓여 선택이 쉬워질 줄 알았건만 현실은 정반대다. 책임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선택은 늘 버겁고 조심스럽다. 세상에 내 바람대로만 흘러가는 완벽한 선택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잘된 부분과 잘못된 부분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굴러떨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뼛속 깊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오답'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선택이 낳은 흠집,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잘못된 부분만을 기어이 도려내어 무자비하게 부각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이다. 그 뾰족한 비난이 두려워 우리는 번번이 망설인다. 혹여라도 책임의 화살이 날아올까 봐 적당한 핑계를 찾고, 누군가 대신 이 짐을 져주기를 바라는 나약한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 때면, 나 스스로가 참 쿨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 최고의 리더를 양성한다는 하버드 MBA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하나 있다.
그곳에서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을 던져주고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게 하는 가혹한 시험이 자주 열린다고 한다. 도저히 불가능한 시간이라며 따져 묻는 학생에게, 노련한 교수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단다.
"당신이 졸업 후 사회에 나가 조직의 수장이 되면, 단 1분 만에 100만 달러짜리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할 상황이 수도 없이 닥칠 것입니다."
100만 달러라는 거창한 숫자가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매 순간 삶의 결재판 앞에 선다. 그렇다면 이 버거운 선택의 순간들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모든 변수를 통제해 흠집 없는 정답을 찾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 고민 끝에 다다르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삶의 본질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내 스스로가 압도적으로 강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함이란 타인을 윽박지르고 군림하는 폭력적인 카리스마가 아니다. 누구도 내 판단을 함부로 가로막지 못할 만큼 단단하게 다져진 실력, 그리고 내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되든 억울함 없이 온전히 그 무게를 짊어지겠다는 굳건한 내면의 맷집이다. 우리는 일단 강해져야 한다. 나의 능력과 책임감이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 내가 하는 고민은 비로소 타인의 입김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결정지어진다. 무리하게 나의 빈틈을 헤집으며 공격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말들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선택의 결과가 늘 100점일 수는 없다. 그러나 스스로 충분히 강하고 단단하다면, 설령 결과의 일부가 어긋나더라도 "이 결정은 내가 내렸고, 이 결과 역시 내가 온전히 감당하겠다"라고 담담히 선언할 수 있다. 그 순간, 우리를 그토록 괴롭히던 타인의 참견과 비난은 튕겨 나가 흩어진다.
결국 우리가 마주했던 '선택의 두려움'과 남들의 평가는 피해야 할 웅덩이가 아니라, 스스로의 내공을 벼려내라는 삶의 날카로운 초대장인 셈이다. 세상의 비난을 막아설 튼튼한 방패는 결국 나의 실력과 책임감뿐이다. 내 능력을 기르고 맷집을 키워가는 과정, 그것만이 정답 없는 세상에서 기꺼이 내 몫의 화살을 맞으며 나만의 궤적을 그려갈 유일한 무기다.
차창 밖으로는 수많은 차들이 앞뒤 좌우로 빈틈없이 꽉 막혀 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퇴근길에 올림픽대로로 들어서서는 안되었다.
앞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기에 가속 페달에 조용히 발을 얹으며, 오늘 하루 머리를 묵직하게 했던 선택의 무게들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당신도 지금 이 순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막막한 기로에 서서 누군가의 날 선 평가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선택이 어렵고 책임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그만큼 당신의 일상과 주변을 진지하게 껴안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에 겁을 먹고 당신 삶의 운전대를 남에게 넘겨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답을 찾으려 헤매는 대신, 묵묵히 당신의 실력을 벼리고 내면의 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은 어떨까. 누구도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진 당신이, 마침내 당신만의 선택을 오롯이 껴안고 묵직하게 나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스스로 단단해질 때, 비로소 내 삶의 운전대를 온전히 쥘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