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어르신, 그 아득한 간극에 대하여

by Tugboat

모니터를 켜고 앉아 지금까지 연재해온 이야기들을 가만히 살펴본다.

늘 머릿속을 맴돌던 묵직한 화두, 어쩌면 이 글들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적어 내려갔어야 할 문장들을 화면에 띄워놓고 한참을 머뭇거린다. 뜨거운 맹물에 인스턴트 커피 몇 알을 톡톡 털어 넣어, 보리차인지 커피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밍밍한 갈색빛의 연한 블랙커피를 벗삼아 첫 줄을 써나간다.

‘어른이 되기도 이토록 어려운데, 어르신이 되는 길은 얼마나 아득한가’라는 긴 탄식을 조심스레 적어본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가 이 근본적인 주제를 뒤로 미뤄둔 채 변죽만 울렸던 이유는 나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러운 탓이었다. 지난 글들을 통해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고성을 지르던 성난 노인의 씁쓸한 풍경을 이야기했고 , 회의실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던 협력업체의 나이많은 팀장 K의 뻣뻣한 아집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글들을 써 내려가는 새벽 내내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나 역시 내 무지나 실수가 드러나는 순간 쿨하게 인정하기보다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려 했고, 내 진심을 남들이 알아서 해석해 주길 바라는 융통성 없는 오만에 빠져 있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십 대의 거침없던 엔진 소리는 사라지고, 비가 오면 무릎이 시리고 기억력은 자꾸 오작동을 일으키는 낡은 중고차 같은 몸뚱이를 끌고 가면서도, 내 마음은 여전히 온전한 일인분의 몫조차 버거워 헉헉대는 덜 자란 아이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의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가만히 숨만 쉬고 있으면,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 존경받는 '어르신'이 될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지나온 글들에서 짚어보았듯, 육체의 노화가 영혼의 성숙을 담보하는 보증서는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삶의 영수증을 스스로 결제하고, 비가 올 때 내 우산을 스스로 챙겨 드는 책임감이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고장 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대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로 낡은 부품을 떼어내며 나라는 존재를 고쳐 쓰는 치열한 예술이다. 하지만 '어르신'의 경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멀고 깊은 곳에 있다.


어른이 내 몫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하는 자라면, 어르신은 타인의 무게마저 기꺼이 덜어주는 넉넉한 품을 가진 자다. 나이가 벼슬인 양 자기 기분을 밖으로 배설하여 피하고 싶은 얼룩이 되는 대신, 세월이 흐를수록 끓어오르는 감정을 안으로 삭히고 걸러내는 촘촘한 거름망을 짜야만 닿을 수 있는 외롭고 단단한 자리다.

고장 난 몸과 마음을 수십 번 고쳐 쓰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스텀 모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내 빈틈 사이로 타인의 온기가 드나들 수 있게 기꺼이 문을 열어두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자신의 낡음을 숨기려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오해받을 수 있는 진심조차 부드러운 포장지로 다정하게 싸서 건넬 줄 아는 배려. 그것이 비로소 어른의 좁은 그늘을 넘어 어르신의 넓은 품으로 향하는 숭고한 질감이 아닐까.




머그잔 바닥에 남은 식어버린 연한 커피를 마저 입에 털어 넣는다. 입안에 맴도는 쌉싸름하면서도 구수한 끝맛이 어쩐지 오늘따라 퍽 달게 느껴진다.

완벽한 어른도, 존경받는 어르신도 되지 못해 매일 밤 뻣뻣해진 뒷목을 주무르며 자책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옹졸함과 빈틈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부끄러워할 줄 안다면, 적어도 피하고 싶은 오물이 되어가는 늙음의 비극 앞에서는 멈춰 설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내가 적어온, 그리고 앞으로 적어갈 이야기들은 대단한 깨달음을 주는 멘토의 정답지가 결코 아니다. 그저 이 밍밍한 보리차 같은 블랙커피 한 잔을 곁에 두고, 서툴고 삐걱거리는 마음을 매일 조금씩 닦고 조이며 진짜 어르신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가는 한 중년의 솔직한 오답 노트다.


당신의 오늘 하루가, 애써 짊어진 나이라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기꺼이 흔들릴 수 있는 유연한 시간이기를 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서로의 틈을 온기로 채워가는 이 서툴고 따뜻한 여정에, 부디 당신도 편안한 마음으로 동행해 주기를 바란다.



어른이 내 몫의 비를 견디는 일이라면,
어르신은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낡고 넓은 우산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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