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은 고장이 아니라, 견뎌낸 시간의 훈장이다

by Tugboat

탁.

정비소의 기름 냄새가 훅 끼쳐오는 오후 2시.

리프트 위에 올려진 녀석의 배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10년이 넘은 차, 여기저기 찍히고 긁혀 칠이 벗겨진 녀석이 공중에 붕 떠 있다.

마치 수술대에 오른 노장(老將) 같군.

무상 AS기간이 훌쩍 지나 벌써 몇년째 거래하고 있는 정비소의 정비공이 스패너를 내려놓으며 장갑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번엔 라디에이터가 터졌네요. 사람으로 치면 열병 같은 겁니다."




지난달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말썽이더니, 이번엔 냉각수다.

부품 하나를 갈아 끼우면, 보란 듯이 다른 곳에서 비명을 지른다.

주변에서는 입을 모아 말한다.

"이제 그만 보내주지 그래? 수리비가 차값보다 더 나오겠어."

틀린 말은 아니다. 경제적인 논리로만 따지자면 이 녀석은 이미 폐차장의 이슬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효율을 따지는 세상에서 늙고 병든 것은 죄악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보닛을 톡톡 두드렸다.



새 차는 ‘성능’으로 타지만, 헌 차는 ‘사연’으로 타는 법이다.

우리의 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십 대의 우리는 마치 갓 출고된 신차처럼 거침이 없었다.

밤을 새워도 엔진 소리가 경쾌했고, 어떤 험로를 달려도 쇽업쇼바가 말랑하게 충격을 흡수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신호를 보낸다.

비가 오면 무릎이 먼저 날씨를 알고, 과음을 한 다음 날엔 해독 기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낀다.

눈은 침침해지고, 기억력이라는 부품은 자꾸 오작동을 일으킨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한다.

'나도 이제 한물갔구나.' 하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건 쇠락이 아니라, 삶의 질감이 깊어지는 소리다.




부품을 교체한다는 건 단순히 기능을 복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건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선언과도 같다.

정비공이 새 부품을 끼워 넣고 기름때 묻은 손으로 볼트를 조인다.

끼익, 끽.

그 소리가 뼈를 맞추는 소리처럼 처절하면서도 어딘가 숭고하게 들렸다.

젊음이 저절로 주어진 선물이라면, 늙어감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예술이다.

낡은 부품을 떼어내고 새것을 채워 넣으며 우리는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

순정 부품 그대로의 싱싱함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수십 번의 수리와 교체를 통해 내 몸과 마음은 비로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커스텀 모델'이 되는 셈이다.

덜덜거리는 엔진 소리는 불안한 소음이 아니다.

지금까지 그 먼 길을 달려오느라 수고했다는 거친 숨소리이자,

앞으로도 주인이 가자면 기꺼이 굴러가겠다는 충성스러운 대답이다.

그러니 몸 한 구석이 아파오거나, 마음이 예전처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서글퍼할 것 없다.

그건 당신이 치열하게 살아냈다는 증거이자, 훈장이니까.




수리를 마친 녀석의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쿨럭.

처음엔 기침하듯 거칠게 떨리더니, 이내 묵직하고 낮은 중저음으로 숨을 고른다.

새 차처럼 매끄럽진 않지만, 깊이가 있다.

덜컹거려도 괜찮다. 가끔 멈춰 서도 괜찮다.

중요한 건 남들보다 앞서나가는 속도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는 그 용기 있는 사실 자체니까.


오늘 당신의 몸이나 마음 어딘가가 심하게 삐걱거린다면, 그건 망가진 고장이 아니라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어가라는 다정한 신호일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 밤에는 거울 앞에 서서, 당신이라는 이 낡고 소중한 차에게 수고했다고, 따뜻한 위로 한마디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내일도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며 기꺼이 내일이라는 길을 다시 달릴 테니 말이다.




가장 완벽한 것은 한 번도 고장 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고장 나고 고쳐지며 끝내 다시 시동을 걸 줄 아는 용기입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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