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에도 때론 '포장지'가 필요하다

by Tugboat

거실이 소란스럽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창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늦은 아침 햇살이 먼지 위로 내려앉는데, 아내의 목소리는 그 햇살보다 날카롭다.


"지금이 몇 시인데 여태 자빠져 있어!"


고등학생 아들 녀석은 부스스한 머리로 방문 앞에 서서 웅얼거린다. 어제 새벽까지 공부하느라 늦게 잤다는 항변이다. 억울함이 잔뜩 묻어난 목소리다. 사실이다. 나는 새벽 3시 무렵,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녀석의 방문 틈으로 새어 나오던 불빛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 '갱년기 대 사춘기'의 대전에서 슬며시 발을 빼고 외면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억울한 아들을 변호해주지 않는 비겁함이 아니다. 아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다. 피곤한 건 알지만, 세상은 새벽의 고군분투보다 아침의 게으름을 더 크게 보는 법이니까. 그저 이 소란 속에서, 문득 잊고 지냈던 내 지난 날의 기억 하나가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광고 회사 시절이었다. 프로젝트가 걸리면 주말도 반납하고 야근과 철야를 밥 먹듯이 했다. 성과는 달콤했다. 광고주가 내부 강의를 의뢰할 정도로 내 주가는 높았다. 그런데 그해 연말, 회사가 상대평가를 도입하면서 나는 생전 처음 'B'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면담을 요청해 따져 묻는 내게, 제조사인 모그룹에서 파견된 조직장은 안경을 고쳐 쓰며 조금은 미안한듯 말했다.


"회사는 '농업적 근면성'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일이 없을 때 널브러져 쉬거나, 자유롭게 시간을 썼던 내 태도가 문제였단 말이다.

나는 분노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것 아닌가? 책상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그 평가를 모욕이라 여겼고, 결국 얼마 후 이 회사를 떠나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쿨하고 당당하다고 믿었고 , 그 조직이 낡아빠졌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이제 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융통성이 없었다. 아니, 내 진심을 남들이 알아서 해석해 주길 바라는 오만함이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 본부장님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인생에는 적당한 '쇼(Show)'가 필요하다. 정확한 영어 표현으로 '쇼오프(Show-off)'라고 하던가.


우리는 흔히 겉치레를 위선이라며 경멸하곤 한다. 알맹이가 중요하지, 포장이 중요하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마트에서 귤 한 상자를 사더라도 겉이 번들거리고 색이 고운 쪽에 손이 가기 마련이다.


내가 아무리 밤을 새워 일하고 공부했다 해도, 세상이(혹은 상사가, 혹은 엄마가) 눈을 뜨고 지켜보는 시간에 자고 있다면, 그 노력은 '게으름'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렇게 나 스스로 쌓은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새벽 3시의 불빛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잠깐의 쇼를 위한 수고의 몇 배되는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때 내가 잠깐의 눈치, 그러니까 '일하는 척'하는 쇼를 조금만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아들 녀석이 10시에 일어나는 대신, 8시에 일어나 단어장이라도 펴는 쇼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나의 진심을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돕는 '친절한 신호'다. 내용물이 깨지지 않게 감싸는 완충재 같은 것이다. 농업적 근면성이란 결국, 타인을 안심시키는 성실한 연출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실의 소란이 잦아들고, 아들 녀석은 입이 댓 발 나온 채 화장실로 들어간다. 녀석도 언젠가는 알게 될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보다, 남들 눈에 보이는 1인치의 태도를 가꾸는 것이 세상을 사는 데 훨씬 더 가성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가끔은 뻔뻔해져도 좋다. 내가 흘린 땀방울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다면, 짐짓 힘든 척 이마를 훔치는 시늉을 해도 괜찮다. 그것은 가식이 아니라, 내 소중한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스스로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


당신도 혹시 묵묵히 일만 하다가 억울한 평가를 받은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다음번엔 조금 더 과감하게 '쇼'를 해보시라. 진심이라는 무거운 돌덩이도, 예쁜 보자기에 싸서 건네면 받는 사람이 훨씬 가볍게 받아들일 테니 말이다.



"오해받은 진심을 해명하는 것보다,
적절한 연출로 안심시키는 것이 때론 더 깊은 배려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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