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피복이 벗겨져 위태로운 충전기 케이블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이리저리 각도를 비틀어야 겨우 전기가 통하는 녀석. 조금만 건드려도 연결이 끊어지는 통에, 휴대폰을 충전하려면 숨조차 조심해서 쉬어야 한다.
그 사람과의 통화가 딱 그랬다.
분명 같은 곳을 보고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찰나의 순간 드러난 그의 본심은 내 믿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입안에서 쇠 맛이 났다. 당황한 나는 얼굴 표정도 드러낼 수 없는 전화기 너머에서 말까지 버벅대고 있었다.
냉정하고 사무적인 어투로 카톡 메신저를 보내고 그의 답변에 복수하듯 아무런 리액션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결국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그와 마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 비릿한 현실이 창밖의 싸늘한 바람보다 더 살을 에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분했다. 배신감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그건 차라리 '자기 혐오'에 가까웠다.
"나만 진심이었구나. 나만 이 일을, 우리의 정의를 목숨 걸고 지키려 했구나."
그의 이기적인 선택보다, 사람을 볼 줄 몰랐던 나의 안목이 더 부끄러웠다. 속았다는 사실보다, 여전히 그와 얽혀 당장의 문제를 그리고 미래를 꾸려야 한다는 비굴함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밤새 이불을 걷어찼다. 당장이라도 관계를 끊어내고 호통치고 싶었다. "당신,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얽혀있는 프로젝트, 지켜야 할 내 평판, 그리고 책임져야 할 결과물들이 발목을 잡았다.
가슴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는데, 입으로는 "네, 알겠습니다. 전달 하겠습니다"라는 건조한 텍스트를 타이핑해야 하는 모순. 나는 전혀 쿨하지 못했다. 질투와 분노, 그리고 먹고사는 문제 사이에서 널뛰기하는 내 모습은, 내가 그토록 경멸하던 '속물 중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잠 못 이루던 새벽, 문득 일본의 '킨츠기(Kintsugi)'라는 공예 기법이 떠올랐다. 깨진 도자기를 버리는 대신, 그 깨진 틈을 옻으로 붙이고 금가루를 발라 장식하는 기술이다. 킨츠기를 거친 그릇은 깨지기 전보다 더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게 된다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금이 간 그릇도 여전히 물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관계는 깨졌다. 인정해야 한다. 예전처럼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놓고, 의기투합하던 '파트너'는 이제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그릇을 당장 깨뜨려 버릴 필요는 없다.
배신감은 어쩌면 나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내 마음과 같기를 바랐던 기대, 내가 준만큼 돌아와야 한다는 계산. 그 기대를 내려놓으니 상황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뜻을 같이한 '동지'가 아니라, 그저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만 손을 잡는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것이다. 이걸 인정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나는 그와의 관계를 '수리'하기로 했다. 예전의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의'라는 이름의 금가루를 발라 거리를 두는 것이다.
감정을 섞지 않는 건조한 말투, 정확한 업무 처리, 그리고 사적인 기대를 배제한 태도. 이것은 비굴함이 아니다. 깨진 관계가 더 이상 나를 찌르지 못하게 만드는, 어른의 '안전장치'다.
나의 선의가 이용당했다고 슬퍼할 필요 없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것은 내 삶의 태도였으니까. 그가 그것을 받지 못했다면 그건 그의 그릇이 작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동지'가 아니라 '협력자'로서 다시 테이블에 앉는다. 덜 뜨겁지만, 오히려 더 안전한 거리에서.
당신도 지금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보며 속으로 피를 삼키고 있을지 모른다.
다시 그와 악수를 해야 한다면, 너무 애써 웃으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억지로 용서할 필요도 없다. 마음속 응어리는 그대로 둔 채, 그저 기능적으로 움직여도 괜찮다.
우리는 프로니까.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게 우리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이니까.
깨진 틈을 메우느라 고생했다.
이제 그 사람에게 쏟았던 뜨거운 진심은 거두어들여, 오직 당신 자신을 위해 쓰기를.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철저히 '연극'이라고 생각하며, 무대 밖의 당신은 더없이 평온하기를 바란다.
상처받은 당신의 성실함이, 언젠가는 더 귀한 인연으로 보상받기를 빈다.
깨진 그릇을 억지로 붙이려 애쓰지 마세요.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담아야 할 물만 담아내는 것도 어른의 기술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