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종이 한장은 때때로 거울보다 정확하다
먼저 가본 미래
오래된 종이 한 장은 때때로 거울보다 정확하다.
며칠 전, 2013년 4월 7일에 적어둔 메모를 다시 읽었다. 그 안에는 그 시절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의 풍경이 들어 있었다. 아파트 한 채, 붉은 소파, 와이드 TV, 침대, 서재. 물건들이라기보다 어쩌면 한 사람의 마음이 머물고 싶어 했던 장면들에 가까웠다. 그 목록 가운데 아직 내 것이 되지 않은 것은 빨간 BMW 하나뿐이다. 이제는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퇴직을 앞둔 지금, 나는 그것을 사지 않기로 한다. 사람은 어떤 물건을 갖는 순간부터, 뜻밖에도 그것에 붙잡히기도 하니까. 언제든 그만두고 싶을 때 망설이지 않기 위해 나는 그 차를 갖지 않기로 했다.
그 메모가 이상할 만큼 반가웠던 것은 적어둔 것들이 제법 이루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 지금의 내가 이미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서울대라고 적혀 있었고, 영어공부라고 적혀 있었고, 작가라고도 적혀 있었다. 문장을 읽다가 웃었다. 오늘의 나는 새로 생긴 사람이 아니었다. 오래전의 내가 먼저 상상해둔 자리로 겨우 걸어와 앉은 사람일 뿐이었다. 미래는 그렇게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조용히 자리를 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 종이 한 장은 내가 잊고 지내던 더 오래된 시간까지 불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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