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천 개의 학을 접듯이
2026년 4월 1일,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2026년 4월 19일, 팔로워가 백 명이 되었다.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이 하나의 문을 열어준 일이었다면, 백 명의 팔로워는 그 문 안으로 누군가의 발걸음이 실제로 들어왔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문장은 혼자 쓰지만, 글은 끝내 누군가에게 도착하는 것임을, 나는 그 숫자를 통해 조금 실감했다.
그래서 오늘만큼은 잠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특별한 날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웨딩드레스가 축복의 상징일 수는 있어도 일상의 옷이 될 수는 없듯, 기쁨도 오래 붙들수록 오히려 빛을 잃는다. 결국 사람은 다시 평상복으로 돌아와야 한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오래 누워 있었다.
잠을 자다가 오디오로 소설을 듣다가, 다시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하루 종일 나는 이 세상이 아닌, 생각 속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곳은 현실보다 조용했고, 뉴스보다 덜 위협적이었으며, 사람보다 덜 피곤했다.
김애란의 소설을 듣고 있으면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거대한 비극만이 아니라 생활의 틈으로 스며드는 작고 오래된 불안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인류의 종말 같은 거대한 말보다, 오늘 내게 도착한 문서와 내가 건네야 할 친절 같은 것을 더 붙들게 된다. 삶은 대개 거창한 파국보다 사소한 균열 속에서 흔들리고, 또 사소한 반복 속에서 겨우 버텨지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전쟁과 재난의 소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뉴스를 멀리하고 사람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으면 내 불안은 잠시 잦아든다. 그러다 거실을 지나 방으로 들어오는 길에 앵커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나는 화들짝 놀란다. 세상이 여전히 거기서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가 들킨 사람처럼.
문득 그런 생각도 한다.
양평의 집으로 숨어들 듯 살아가면 조금은 자유로울까.
방공호 같은 삶 속으로 들어가면 마음도 조용해질까.
하지만 어디로 가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내 마음이다.
인류의 종말이 언제 올진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삶의 끝은, 그보다 훨씬 먼저 내게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 끝을 향해 또렷하게 보이는 하나의 날짜가 있다. 2028년 12월 말. 나는 그때 퇴직한다.
그 날짜를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아득한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내게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인류 전체의 평화를 걱정하기에는 내 삶이 그리 길지 않고, 그렇다고 오늘의 평화를 포기하기에는 하루가 너무 귀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다.
내게 찾아오는 사람을 성의 있게 맞이하는 것.
내게 도착한 문서를 순서대로 처리하는 것.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해지는 것.
세상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닿는 반경 안에서는 덜 거칠게 살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평화일지 모른다.
한동안 나는 세상이 요지경 같다고 탓했다. 세상이 뒤틀리고, 내 삶을 흔들어놓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꾸 어디론가 떠나 있고 싶었다. 그러나 찻잔 속 태풍처럼 소란한 날에도 내가 끝내 살아야 하는 경계는 하나다.
여기, 지금.
그래서 오늘의 기쁨도 오래 붙들지는 않으려 한다.
2026년 4월 19일의 백 명은 분명 내게 기쁜 선물이다.
하지만 축제는 축제이고, 일상은 일상이다.
특별한 날도 결국 하루를 지나면 평상복으로 돌아간다.
내일은 다시 월급날을 지나고, 월요일을 건너고, 나는 여전한 방식으로 일하고, 피아노를 연습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수영을 갈 것이다. 내게 글쓰기의 소재를 건네준 남편과 동료에게는 커피 한 잔쯤 사고 싶다. 기쁜 날이란 결국 이런 소박한 마음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이제, 이 평범한 반복을 쓰려고 한다.
이 연재는 대단한 사건의 기록이 아닐 것이다.
세상을 뒤집는 깨달음의 목록도 아닐 것이다.
대신 나는 매일 쌓이고 매일 부서지는 일상을 쓰려한다. 출근과 퇴근, 문서와 사람, 불안과 안도, 책과 음악, 수영장 물비린내와 피아노 건반의 촉감, 남편과의 대화,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는 마음을 쓰려한다.
마치 천 개의 학을 접듯이.
한 장 한 장은 작고 가볍지만, 접는 손길이 쌓이면 뜻이 되고 시간이 된다. 이 연재도 그럴 것이다. 나는 하루를 한 마리의 학처럼 접어, 천 개의 글을 쌓아보려 한다. 어쩌면 그것은 무한반복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비슷한 월요일이 오고, 비슷한 불안이 찾아오고, 비슷한 다짐이 또 적힐 것이다. 그러나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같아 보이는 날들 사이로 조금씩 다른 마음이 지나가고, 그 미세한 차이가 결국 한 사람의 시간을 만든다.
이 연재는 2028년 12월 말, 내가 퇴직하는 시점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때 나는 이 글들을 다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어떤 문장은 나를 스쳐 사라졌을 것이고, 어떤 문장은 끝내 남아한 권의 책이 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연재는 기록이면서 동시에 예고다. 지나가는 나날을 붙잡는 일이자, 먼 훗날 출간을 향해 조용히 모여드는 초고들이기도 하다.
물론 두려움은 다시 올 것이다.
문득 삶의 끝이 가까워지는 상상을 하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도하려 한다.
죽음이 조금 일찍 온다 해도 지나치게 두렵지 않도록.
살아 있는 동안만큼은 하루를 끝까지 살아낼 수 있도록.
이 글은 그렇게 시작된다.
월요일마다 연재될 **『매일 쌓고 매일 부서지는 일상』**의 여는 글로.
삶은 자꾸 무너지고,
마음은 자꾸 흩어진다.
그런데도 사람은 이상할 만큼 성실하게 다시 시작한다.
오늘도 나는 이 글 속에서
다시, 모래성을 쌓는다.
그리고 학 한 마리를, 천천히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