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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May 21. 2021

물건을 만들려는 자, 을지로에 가라

디자이너와 세운상가 장인의 콜라보, 2021 세운메이드 프로젝트

청계천 일대의 기계 금속과 전기·전자, 조명과 건축 자재들, 방산 시장의 포장 재료, 목공소 거리, 충무로의 인쇄 골목까지. 을지로는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오래된 재료 상가와 가공 업체가 골목길을 따라 연결되어 있다. 도보로 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밀집되어 있는 업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의 생산 공정에 함께 참여한다. 앞집에서 재료를 사고, 옆집에서 금형을 뜨고, 뒷집에서 후가공을 하는 식이다.


그리고 각각의 업체에는 오랜 시간 노하우를 갈고 닦은 장인들이 있다. 이들은 상상 속의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제작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켜준다. 미대생부터 디자이너, 창업가, 예술가들이 을지로에 모여들게 된 이유도 이처럼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최적화된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을지로의 오래된 농담인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라는 말처럼, 을지로는 시대를 넘어 재료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어 주고 있다.


'세운메이드 프로젝트'는 세운 상가군의 인프라를 이용한 시제품 제작 지원 사업으로 을지로의 역사깊은 제조업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아이디어를 구현하려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지역의 제조 현장과 만나고 실험하고 협업하도록 만든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이번 세운메이드 프로젝트 참여 디자이너와 을지로 기술인·장인의 협업 제품들을 소개한다.


한옥의 따뜻함을 수놓는 전통문양 조명〈빛무늬등〉

칠석무늬는 전통문양을 새긴 <빛무늬등> 조명을 개발했다. 현대식 한옥이나 한옥호텔 등 한국적인 인테리어가 주목받고 있지만 조명은 수입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아쉬움에서 직접 제작하기로 한 것. 빛무늬등은 황동으로 된 바디에 종이 갓을 얹은 방식으로 조명을 켜면 산, 솔, 복, 국화, 호랑이 등 한국적인 전통문양을 감상할 수 있다.


적절한 투명도를 위해 특수가공을 거친 종이

빛무늬등 제작에는 15가지 크고 작은 공정이 수반되고, 각각의 공정은 을지로·청계천 일대의 업체들이 맡았다. 특히 종이 갓에 찍힌 문양이 빛을 아름답게 투과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열을 가한 금속으로 종이를 눌러 투명하게 만드는 특수가공을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금형의 재질, 온도, 시간, 압력 등 다양한 변수가 중대한 영향을 미쳤고, 칠석무늬는 오랜 시간 노하우를 쌓아 온 장인의 도움을 받아 도안 수정 및 수차례의 테스트를 거쳐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전통문양에 진심이 되었던 계기가 있습니다. 2016년 작업했던 전남 무형문화재 김규석의 저서 『김규석 목공예』, 『아름다운 우리 무늬』입니다. 당시 전통문양을 그래픽적으로 표현하는데 그쳤던 제게 전통문양의 의미와 가치를 바로잡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해준 작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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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한 하루를 만드는 캘린더, 〈gnomon(노몬)〉

별마당 도서관의 대형 트리 제작부터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자신의 아이디어와 세운의 기술을 결합해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완수해온 어보브 스튜디오는 창업 지원 공간인 세운큐브에 입주해 기술 장인과 동료 디자이너와의 협업 등 다양한 도움을 받아왔다. 이번 진행하는〈노몬〉프로젝트는 손잡이를 돌리면 날짜가 넘어가는 새로운 형태의 퍼페츄얼 플립 캘린더로 아날로그한 재미와 멋이 있는 감각적인 제품을 만들었다.


가장자리를 미세하게 가공한 알루미늄 카드


어보브 스튜디오는 당초 달력카드를 아크릴로 만들 계획이었으나, 도면 크기를 완벽하게 맞춰 제작했음에도 카드가 넘어가지 않아 당황했다. 팀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본 후에 카드의 무게와 가장자리 가공이 넘어가지 않는 원인임을 밝혀냈고, 무게를 늘리기 위해 카드 재질을 아크릴에서 알루미늄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질만 알루미늄으로 바꾸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카드가 잘 넘어가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카드 가장자리를 미세하게 갈아내는 '면취' 공정이 필요했는데, 카드 하나 하나를 작업해야 하는 다소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제작 업체에서 섬세하고 정확하게 작업해줘 의도한 대로 프로젝트를 준비할 수 있었다.


"처음 디자인을 시작한 게 29살, 늦게 시작한 편이라 시작할 때부터 어떠한 디자이너로 남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어요. 대학원에서 한국적인 디자인에 대한 논문을 쓴 적이 있어요. 사실 한국적인 디자인이라고 하면, 단청 문양, 기와의 곡선이나 이런 것들이 주로 생각날 수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현 세대에서 굉장히 새롭게 디자인을 잘하는 분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어서 함께 한국적인 디자인을 정립해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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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펼쳐지는 풍류 한 상, 〈불소반〉


괄호 프로젝트는 부부로 이루어진 팀으로 퇴사 후 자신만의 브랜드를 시작했지만 둘 외에 교류가 없어 피드백을 받기 어렵다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세운메이드 프로젝트 참여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 제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조선시대의 소반 다리, 60년대의 알루미늄 밥상, 현대의 부탄 로스터가 결합한 〈불소반〉으로 시대를 아우르는 제품을 선보인다.


헤어라인 가공, 시보리 작업을 통해 마감한 알루미늄 상판

알루미늄 원자재는 표면이 일정하지 않거나, 군데 군데 찍힌 자국 같은 단점이 있었다. 아노다이징(알루미늄 표면 마감 방법 중 하나)작업을 거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생산 단가가 너무 높게 측정되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시보리 공장에서 수작업으로 판의 평면을 고르게 하고 내구성과 강도를 높여줄 수 있는 헤어라인 가공을 추천 받아 판재의 평탄화와 함께 찍힌 자국 등도 보완할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공임으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다. 또한 주걱봉으로 금속판을 밀어내어 금형 모양에 맞게 변형시키는 가공방식인 테두리의 ‘시보리' 작업으로 하나하나 장인의 손길로 말아지고 다듬어졌다.


"우리가 제품을 만들어 나갈 때에는 아름다운 것들을 여러사람이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철학을 지키고자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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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지혜원

인터뷰: 세운협업지원센터

사진: 스튜디오 오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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