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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Jul 23. 2021

[내러티지] 1화.
‘만화가’ 그리고 ‘기획자’ 수신지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능할까


내러티지

만화 속 하얀 네모 칸을 보신 적 있나요? 말풍선과 달리, 캐릭터의 속마음이나 이야기 속 상황을 설명하는 이 칸은 '내러티지(narratage)'라고 부릅니다. 정작 만화 속 캐릭터는 그런 칸이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독자는 이를 통해 캐릭터의 이면은 물론 작가의 의도나 앞으로의 서사를 파악하고 예측하기도 합니다. 텀블벅은 이 내러티지의 영역을 작품 외부로 확장해 가져오고자 합니다. 인터뷰 시리즈 <내러티지>는 전통적인 지면이나 정식 연재 플랫폼은 물론, 다양한 공간을 종횡무진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는 그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져봅니다.



2017년 인스타와 페이스북에 '민사린'이라는 계정이 생겼다. 이 계정에는 민사린이라는 여성이 결혼 후 겪는 '며느리'라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만화 <며느라기>가 매주 올라왔다. 많은 공감과 반응을 이끌어낸 이 작품의 작가가 누군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지만, 작가는 연재가 끝날 때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계정의 뒤에는 <3그램><스트리트 페인터>를 그린 작가 수신지가 있었다.


수신지 작가의 첫 독립연재 만화인 <며느라기>는 2017년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했다. 어떤 작품이 상을 수상하는 일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며느라기>의 수상은 만화계의 지평을 바꾸었다. 작가 개인 연재작으로서 최초의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이었기 때문이다.



'만화가' 그리고 '기획자' 수신지


만화가, 기획자, 출판사 대표 여러가지 정체성을 지녔다. 어떤 호칭이 가장 편할지?

역시 작가 아닐까. 만화가.


대표로 계신 출판사 귤프레스는 왜 '귤'프레스인가?

정말 귤을 좋아해서. 독립출판한 모든 책에 귤이 그려져 있다. 만화책과 귤은 잘 어울리지 않나? 만화책을 보면서 귤을 까먹는 것을 좋아한다.


<며느라기>는 왜 SNS 개인연재로 선보이게 되었나?

웹툰 플랫폼과 정식 연재를 논의하다 엎어진 상황이 몇 번 있었다. 실망이 커지더라. 하지만 그 소재 자체가 내 머릿속에서는 너무 재밌기 때문에 꼭 하고 싶었다. 내가 이 만화를 구상하고 준비한 시간은 정말 긴데, 사실 편집부가 그 가능성을 판단하는 시간은 그에 비하면 짧지 않나. 그들의 판단을 그냥 받아들이고 작품을 이렇게 접는 게 맞는 걸까? 싶었다. 이미 몇 군데에 만화 초안을 보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도 있었다.


조급했던 이유는?

<며느라기>의 소재 자체는 평범하지만, 많이 그려지지 않아서 특별하다고 봤다. 비슷한 소재를 다른 누군가가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루빨리 세상 밖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SNS를 선택한 것도 있다. 어떤 허가를 거칠 것 없이 바로 발행할 수 있으니까. <며느라기>는 6개월 정도를 준비했는데 그동안 <며느라기> 작업 말고 다른 일을 거의 안 했다.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작업을 하고 책을 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빨리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다. 순진했다.(웃음)


SNS 독립연재는 일반 상업연재와 다른 점이 있을까?

전혀 없다. 작업을 하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원처럼 규칙적으로 일한다. 운동도 꾸준히 하는 편이고. 이런 루틴은 독립연재 이전에도 비슷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들어오는 외주의 대부분은 SNS에 올리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더라. 개인 계정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 만든 계정에 광고를 올리는 것이고, 결국 나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 작업’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책임감을 가지게 된다.


인스타, 딜리헙 병행연재는 어떻게 고안한 것인지? 자체적인 '미리보기' 시스템을 만들었다.
*<곤>은 인스타에서 연재를 시작했지만, 그 다음화 미리보기를 '딜리헙'이라는 플랫폼에 업로드했다. '딜리헙'은 작가가 자신의 콘텐츠를 자유롭게 업로드하고,유저에게 판매할 수 있는 오픈마켓형 플랫폼이다.

<며느라기>의 다음 작품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어디서 연재해야 할까?' 였다. 며느라기 이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새로운 대안 매체가 생겨날 줄 알았는데 없었다. <며느라기>는 정식 고료가 없는 채 인스타그램에 올렸으니까 '완전 무료'였다. 당시 마음 속 한켠에 '내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있지만, 만화가 공짜라는 인식을 강화시키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곤> 연재 중간에 딜리헙을 알게 되어 뒤늦게 딜리헙에서도 연재하게 되었다. 독자들에게 딜리헙이 어떤 곳인지, 딜리헙에서 연재하는 이유 등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작가의 자전적인 암 투병기를 다룬 <3그램>은 책으로 먼저 선보였고,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아랑'의 이야기 <스트리트 페인터>는 웹툰으로 연재되었다. <며느라기>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곤>은 인스타그램과 딜리헙에서 동시 연재되었다.*

책, 웹툰, SNS 개인연재, 오픈 마켓 등 만화를 다루는 거의 모든 플랫폼을 거쳤다. 각각 어땠나?

먼저 책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작품을 종이책으로 바로 내는 것은 작가 스스로 너무 만족스럽다.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장악할 수 있으니까. 맨 뒷장을 그리다 다시 앞으로 갈 수도 있고, 제작이 끝날 때까진 계속 수정을 거칠 수 있어 가장 집중하기 편하다. 연재는 아무리 세이브를 쌓아두어도 이미 발행된 앞의 내용을 다시 돌이킬 수 없고, 댓글이나 반응같이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요소가 계속 생겨난다. 사실 책만 제작했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단점은 안 팔린다는 거?(웃음) 노력에 비해 금전적인 보상이 너무 적다. 결국 이 책을 만들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지금 같은 시대엔 정말 용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웹에서 만화를 보는 것이 언젠가는 사라질 문화가 될 수도 있으니까. 누릴 수 있을 때 웹 문화를 누려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책이 좋아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웹툰 시장이 시작될 때 나와 큰 관계가 없을 거라 생각했고,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그래도 경험은 해보자 싶어서 케이툰에서 웹툰 <스트리트 페인터>를 연재하게 됐는데 해보니까 스릴이 있었다. 연재라는 게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더라. 어떤 작품 하나가 6개월 만에 나온다는 것은 정말 빠른 편이니까. 연재하는 내내 뭔가 '붕 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쁘게 말하면 건강도 상하고 그 방식대로 쉼 없이 연재는 못 할 것 같다. 그 사이트는 타 사이트에 비해 유저도 적고 댓글 참여율도 적은 편이라 맘 편히 연재한 것도 있다. 그리고 그때 '월급'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봤다. 너무 좋고 정말 충격적이더라. 남들은 다 이렇게 살았구나! 싶고.(웃음) 퀄리티와 상관없이 마감을 하면 이렇게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 충격적인 동시에 '계속 하다보면 여기서 못 벗어나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SNS 연재의 가장 큰 단점은 원고 그 자체로는 돈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빠르게 작업하고 발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작가가 누군가의 허가를 거치지 않고도 자신의 작업을 발표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된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원고를 올리는 것에 대해 고료를 받을 수는 없지만 광고를 받거나 외주를 받으면서 독자적인 수익을 얻는 흐름이 생긴 건 좋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오픈 플랫폼. 오픈 플랫폼에서 나오는 수익이 높진 않았다. 오픈 플랫폼에서 어떤 작품이 잘 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역시 이야기가 좋으면 잘 될 수 있구나'를 보여주어 희망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1등의 사례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선 작가 개개인의 홍보보다는 플랫폼 차원의 홍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만화가 수신지와 기획자 수신지는 머리 속에서 자주 충돌하는 편인가?

작품의 내용이나 소재를 선택하는 면에선 딱히 충돌하는 부분이 없다. 대부분 제작과 관련해서 많이 충돌하더라. 돈을 지불하는 사람(기획자, 대표)과 작가 사이의 문제!(웃음) 며느라기를 만들 당시 책 가격에 대한 개념이 없어 일단 2만 원으로 정했다. '그냥 2만 원 정도면 되는거 아닌가? 책이 2만 원 넘으면 너무 비싸지 않나?'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책 가격을 책정하는 공식같은 게 있더라, '제작 비용은 책 가격의 몇 % 정도는 넘지 않는 게 좋다, 책 가격 = 제작 비용X몇 배' 이렇게. 며느라기 책 가격은 원가 대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책정한 것이었다. 책은 많이 팔았지만 소득은 얼마 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 경험을 겪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더라. 예를 들면 작가인 내가 '이 작품은 팝업북 형태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도 이젠 못 만든다. 마음속에 기획자가 있으니까. 벽이 생겨버렸다.


만화를 그리는 것 뿐만 아니라 유통, 판매 등을 조율하게 됐는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지?

어려운 점은 차기작을 구상하면 이젠 이게 작품뿐만 아니라 완전히 하나의 덩어리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약간 귀찮다고나 할까.(웃음) 만화만 딱 그리는 거라면 내 일의 무게가 (손으로 작은 덩어리를 만들며) 요 정도로 느껴질 텐데. 이제는 내가 새로 만화를 그리면 (팔을 넓게 벌리며) '이 정도의 일을 시작하는 거다.' 라는 걸 이미 알고 있으니까.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게 약간 그런 부담감 때문이기도 하다. 원고도 해야 하고 제작도 해야 하고 판매도 고려해야 하고 다 쉽지 않은 일이라. 원고 작업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제작과 유통은 누군가와 반드시 소통하고, 협업을 거쳐야 하지 않나.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도 일을 받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더라.


예를 들면 <며느라기>를 책으로 제작할 때도 자체적으로 사이트를 열고 예약 판매를 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 CS 문의를 응대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벅차더라. 당시에는 책을 '제작'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가격을 어떻게 책정할지, 어떤 디자인을 선택해야 파손이 덜 할지 그런 걸 전혀 몰랐다. 내지도 그저 두꺼운 종이를 쓰는 게 좋은 줄 알았다. 뒷면의 그림이 비치지 않으니까. 그런데 책 전체 두께가 두꺼워지면 무게가 무거워진다. 무거우면 떨어졌을 때 더 크게 파손될 가능성이 크고, 보관할 때 부피가 커진 만큼 공간이 더 필요하니까 비용이 추가된다. 이렇게 한 번 경험을 하고 나니까 배우는 점이 있더라. 그래서 <곤> 단행본을 제작할 때는 디자이너님께서 실험적이고 멋진 디자인을 많이 주셨는데 채택할 수 없었다. '자유롭게 디자인 해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막상 시안을 받아보고 나니 '아, 이건 안되겠다'라는 감이 왔다. 정말 죄송하게도 여러 번 수정을 부탁해야 했다.


좋은 점은 '스피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바로 추진할 수 있으니까. 무언가를 기다리거나 누군가의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정말 편하다. <며느라기>의 경우 코멘터리 북을 냈는데 이것도 '인터뷰가 잦은데 같은 질문을 많이 하니까 이걸 그냥 책으로 내면 어떨까?' 싶어 바로 제작했다. 중간에 허가를 받거나, 지연될 만한 사항이 없으니까. 그리고 작업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사실상 콘텐츠인데! 이걸 책으로 내야겠다 싶었다.


'독립출판', '독립연재'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답하는 편인지?

인스타에 만화를 올리려고 하는데 몇 시에 업로드하는 게 좋을까요? 이런 질문은 받아봤다. 그런 건 잘 모르는데.(웃음) 사실 그런 질문은 확신이 필요해서 묻는 질문 같다. 우선 '하면 좋다.' 라는 말을 많이 하긴 한다. 확신을 줄 순 없어도 일단 시작을 해봐야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구나.' 감이 오는 거니까.





<며느라기> 이후의 이야기


<며느라기>가 성공적이었기에 차기작 <곤>을 선택하는 것에 부담감이 있지는 않았나?
*<며느라기>의 완결 후, 수신지 작가는 낙태죄를 다루는 만화 <곤>을 연재했다. <곤>은 가상의 한국에서  '낙태를 한 번이라도 한 여성은 모두 감옥에 간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담감이 크진 않았다. ‘여성 서사’라고 불리는 이야기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했었다. <며느라기> 당시 반응이 많아서 좋았지만 부정적인 의견도 함께 있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차기작은 그런 의견이 갈릴만한 만화 말고 재밌는 이야기를 할까?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낙태죄’가 중요한 이슈라고 봤다. 스스로도 <며느라기> 다음이라 부담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그렇진 않더라. 다행히도.(웃음)


<곤> 작가노트에 낙태죄 판결 이후 오히려 고민이 많았다고 썼던데.

작품이 나오기 전에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뒷북치는 거 아닐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후 나도 마음이 조금 식었다. '낙태죄 폐지'에 일조하기 위한 작품을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갑자기 다 해결된 사안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작품을 이대로 진행해야 하는가에 대해 나 자신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헌법불합치 판결은 났지만 아직 법이 제정된 것은 아니고, 사람의 인식을 바꾸는 데 콘텐츠가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 바뀌어도 인식은 여전할 수도 있으니 낙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는 수긍이 갔기에 결국은 진행하게 되었다. 낙태죄 말고도 아빠와 엄마의 성 중에서 누구의 것을 따를 것이냐의 문제와 같은 가부장적인 제도나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등의 돌봄 노동의 측면에서도 할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에 효용이 있었다고 본다.


사회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다보니 소재나 장면에 대해 검열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그럼에도 선택된 장면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게까지 무언가를 불사하거나 무릅쓴 적은 없었다. 다 자연스럽게 그리게 된 것 같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는데 <곤> 안에서 '장애인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잠깐 언급된다. 그 부분이 정말 안 풀려서 잠시 휴재를 했다. 여성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 그리기 위해 자료조사도 하고 공부하면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장애인의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주제 자체로도 이야기할 것이 많은데 '이걸 놓쳤구나' 싶었다. 그때라도 넣고 싶어서 이렇게 저렇게 짜봤는데 어색했다. 여러 번 수정하고 자문을 구했지만 결국 캐릭터 간의 대화로만 다루게 되어 아쉬웠다.

그때 장애인을 처음 그려보았다. 오랫동안 일러스트 작업을 했지만 등장인물 중 장애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장애인'이라고 글자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의 자의적 판단이 들어가는데, 내가 그 '이미지'를 잘못 그리는 실수를 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인터넷에 올라가면 그것을 다시 수습할 수 없으니까.


댓글이나 독자 반응에 영향을 받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각자 나름의 생각을 말하고 싶으니까 거기 글을 쓰겠거니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의도가 있어서 시작했다면 댓글은 그렇게 큰 영향을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부정적인 댓글은 내용이 뻔하다. 창의력이 없달까?(웃음) 그래서 타격이 적다. 나한테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어딜가도 되게 비슷비슷한 얘기를 부정적으로 하더라. 아무 상관 없는 것까지 엮어서 악플을 달기도 하고.

<며느라기>를 연재 할 때도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즉각적인 다수의 반응이 처음이니까 당황스럽긴 했다. 마침 그때 비슷한 고민을 겪는 창작자들이 모여서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그 모임에 나가서도 매번 느꼈다. '다들 똑같구나.' 그걸 알고 나니 당황스러움이 줄어들었다. 내가 정말 잘못한 부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달리는 그런 내용이구나.' 하고. 마음이 좀 편해졌다.


오히려 그 보편성에 위로를 받은걸까.

그렇다.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능할까


귤프레스를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도 유효한지?

없앨 생각은 없다. 작가에게 누군가의 허락이나 도움 없이 자유롭게 생각한 것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는 중요하다. 다만 요즘 두 가지 고민이 있다. '웹이란 것에 질렸다'는 것과 '꼭 책을 만들어야만 할까'라는 고민이다. 서로 상충되는 고민이긴 하다. 요즘은 모든 콘텐츠의 기본이 웹 아니던가. 넷플릭스에 무엇을 보고, 웹 링크로 무언가를 공유하고. 그런 게 너무 지겹더라. 그래서 그냥 만화를 '책'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일종의 향수 같다. 그런데 그러려면 책을 만들어야 하니까! (웃음) 책을 만들지 않아도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굳이 그 번거로운 일을 하면서 책을 만들기 위해 물자를 쓰는 게 맞는 건가 싶다. 지금까진 웹으로 그린 것을 책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쳤는데,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찾고 싶다.


독립연재는 외주를 받기 위한 중간 다리일까? '독립적인 작품활동'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가장 원하는 건 지금의 SNS에 작업을 게시하는 그 자체로 수익을 버는 거다. 광고가 즉각적으로, 자연스럽게 달리면 독자가 굳이 고료를 내지 않더라도 창작자는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SNS는 그런 모델을 만들어줄 생각은 없는 것 같고(웃음) 결국은 우리가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곤> 연재 중에 광고를 한 번 넣었다. 내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작품의 연재가 끝날 때까지 그런 광고를 매 에피소드별로 받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회사명'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같이. 그러면 굳이 다른 외주를 받지 않아도 만화 작업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그 작업 자체가 돈이 되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주가 들어오면 좋다. 돈이 함께 들어오니까. 하지만 그건 받는 '돈'이 좋아서지 '외주 일'이 좋은 건 아니지 않나. 하다 보면 주객이 전도될 수도 있다. 광고 의뢰가 들어와도 개인 계정에 올릴 뿐 만화 계정에는 광고를 넣지 않는다. 연재를 하는 도중에는 꽤 많은 광고 제의가 들어온다. 그리고 대부분 작품을 올리는 그 계정에 광고를 올리길 바라지만 그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작품에 대한 집중력을 흐리니까. 대부분의 제의는 거절했다.
*수신지 작가는 작품별로 계정을 생성했다. 작가의 개인 계정은 따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혹하는 제안이 있었나?

전혀 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의 들어온 광고 내용 대부분이 여성에게 권하는 가사 노동, 돌봄 노동에 유용한 아이템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만화 내용을 봤다면 절대 의뢰할 수 없는 종류의 광고 제안이었다.(웃음) 사실 그래서 유혹이 전혀 없던 것 같다. 대기업에서 연락이 온다면 혹하겠지만, 그런 제의를 받아들여서 작품을 망가트릴 바에야 안 받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광고가 들어오면 광고에 맞춰 무언가를 결국 새로 그려야 한다. 그런 것이 다 작품 제작의 집중력을 깨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며느라기>를 잘 마무리한 덕분인 것 같다.


작가가 독립적인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화는 정말 귀찮은 일이지 않나.(웃음) 다른 작가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동력을 써야만 한다. 그렇기에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 작가가 그릴 수 있는 만화의 양도 한정되어 있으니 내가 그리는 작업 하나, 하나가 정말 귀하다. 체력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도 총량이 있다고 본다. 그 하나하나를 본인 스스로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 같다. 방법은 각자 다르겠지만, 그 총량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그게 가장 필요하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야기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의 답은 여전히 '그렇다' 인가?
*<곤>의 마지막 작가 노트엔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사라질 줄 알았지? 조용히 있을 줄 알았지? 우리는 계속 말하고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라는 작가의 말로 마무리된다.

"당연하죠." 과거 나의 어떤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렇더라. 이야기를 보면서, 드라마를 보면서, 미디어를 보면서 우리는 학습되어 왔으니까. 거기서 배운 것이 너무 많고, 또 우리를 세뇌하는 것이 너무 많다!(웃음) 그러니 앞으로도 이야기의 힘은 여전할 것이라고 본다. 대신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가 우리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 줄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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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june

편집 lotso 

일러스트 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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