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날 특집 이미예 작가 인터뷰
잠들어야만 입장할 수 있는 세계. 꿈을 사고파는 이야기로 베스트셀러가 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987명이 참여한 텀블벅 프로젝트로 독립출판에 성공한 뒤, 전자책을 거치며 독자들의 입소문을 발판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과거에는 소설가가 되기 위한 길이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원고를 투고해 등단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었다면, 이미예 작가는 직접 독자를 찾아 나서는 새로운 길을 밝히고 있다.
이미예 작가가 '꿈을 이루기 위해 대기업을 퇴사하고 쓴 첫 소설로 베스트셀러 등극'한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작품성을 알아줄 독자를 만나기까지는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거듭된 좌절로 인해 작가의 길을 포기한 채 3D 프린팅, 스마트스토어 운영처럼 글쓰기와는 동떨어진 업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는 어떻게 다시 펜을 잡고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지어냈을까? 지금 가장 많은 독자가 사랑하고 있는 소설의 저자, 이미예 작가를 만났다.
텀블벅 프로젝트 소개에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작년 말까지는 스마트스토어도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글쓰기로 절대 먹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계속 글을 쓰려면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3D 프린터로 쿠키 커터를 만들어서 스마트스토어에 판매하는 일을 했었다. 세무사 공부도 해 봤고.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나를 다시 글쓰기로 이끌었다. 한계를 넘었다는 식으로 거창하게 표현하기는 그렇고, 계속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 지금도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작가로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꼭 소설을 써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머릿속에 꿈이라는 소재를 계속 갖고 살았다. 만화나 영화를 볼 때에는 안 그랬는데, 다른 소설을 볼 때면 자꾸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킷리스트처럼 로망으로만 남겨둬도 충분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나에게 소설 쓰기란 그만두고 다른 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실행에 옮긴 건 언제였나?
처음에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에는 설레고 두근거렸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냐'고 다른 사람들이 물어봐 줄 때 너무나 기뻤다. 그런데 정작 꿈을 꺼내놓고 나니, '그걸 실제로 하고 있냐'는 질문이 돌아오더라. 그 때부터는 미칠 것 같았다. 나는 그냥 하고 싶은 상태만을 좋아하는 것인가 싶어 무서웠다. 그런 괴로움이 나를 움직였다. 다른 인터뷰에서는 마치 망설임 없이 확신에 차서 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의리로 읽어달라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완성하려고 퇴사했는데 막상 퇴사하고 나니 잘 안 써져서 좌절했다고. 무엇이 문제였나?
내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특히 전체적인 내용 흐름이 어떤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한 줄, 한 장을 쓰는 건 힘들지 않았는데, 내가 생각한 구조가 실제 페이지에 있는 이야기들과 점점 어우러지지 않는 거다.
처음에 쓴 원고의 구조는 초반에 '떡밥'을 던져서 독자가 기대하게 만든 뒤에 맨 뒤쪽에서 터뜨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인인데, 내가 던진 떡밥을 잘 회수하는 작가인 걸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간과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구조가 완벽하다고 생각했고, 복선과 사건을 모두 엑셀로 정리해서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글로 읽으니까 재미가 없는 거다. 그 때 머릿속에서 붕괴가 일어나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싶었다. 자영업을 시작한 것도 그 때다.
그대로 멈췄을 수도 있었는데 결국 책을 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내가 만든 세계관과 소재가 고스란히 컴퓨터에 남아 있었으니까. 이대로 끌 순 없다고 생각했고, 완벽히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스스로 시간 제한을 두고 책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텀블벅은 완성된 결과물이 없더라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미완성 원고로 프로젝트를 올렸다. 그게 결과적으로 나를 쓰게 만들었다. 한계를 넘었다는 식으로 거창하게 표현하기는 그렇고, 계속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 계속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초고를 웹소설 플랫폼에 올렸다가 반응이 없어 좌절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텀블벅 프로젝트를 위해 원고를 새로 쓰면서 염두에 둔 점은?
텀블벅할 때는 에피소드 형식으로 썼다. 복잡하게 해봤는데 아니니까 그냥 단순하게 했다. 내가 제일 간과한 게 판타지니까 세계관 주입이 먼저여야 하는데 사건부터 펼쳐지니까 재미가 없던 거였다. 그래서 도입부에 신화 이야기를 넣었다. 나는 이 얘기를 옛날부터 생각했으니까 기다릴 수 있는 거고 이 이야기를 처음 보는 사람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걸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쉬운 형식으로 한 건데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왔다.
문장도 전체적으로 힘을 뺀 것 같다.
읽는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설명을 유려하게 할 자신이 없으면 과감하게 뺐다. 근데 그건 소재가 판타지여서 가능했던 것 같고, 만약 다른 걸 쓴다면 그 부분은 보완해야 할 것 같다. 처음에 쓸 땐 꿈 상자를 사서, 그 꿈에 대한 매커니즘을 두 장에 걸쳐서 설명했다. 꿈 상자를 열자 빛이 나오고 뭘 걸면 녹아내리고 이런 식으로 설명했는데 '샀어, 꾼다'라고 하면 될 걸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주입하려고 애썼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처럼 지금 현실에 없는 공간을 묘사할 때는 조금 비워놔도 괜찮은 것 같다. 다른 판타지 소설을 봐도 내가 본 적 없는 걸 나노 단위로 설명해 주면 그때부터 좀 읽기 힘들더라. 시간을 충분히 갖고 몰입하면 괜찮은데 그 몰입할 시간이 사실 잘 안 나지 않나. 그래서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텀블벅 진행 당시 닉네임은 왜 실명이 아닌 '글쓴이a'로 했나?
신인이기 때문에 내 이름을 내세워서 득볼 게 없다고 생각했다. 또, 굳이 성별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당시 제목이 지금과는 달리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였다.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텀블벅에서 프로젝트가 주목을 받으려면 대표이미지와 제목이 중요한데, 대표이미지가 시커먼 편이어서 다른 책에 비해 약한 게 걱정이었다. 그래서 제목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 때 참고한 게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였다. 백세희 작가님도 텀블벅을 했으니까 성공을 배워야 하지 않나. 그런 문장형 제목이 잘 되던 때이기도 했고. 내가 분석한 결론은 제목에 역설적인 단어 두 개와 동사 하나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걸 참고해서 지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후원자 말을 듣고 스토리를 보완했다고.
처음에는 이미지와 에피소드 위주로 스토리를 짰다. 제목을 보고 들어온 사람이 '꿈'이란 동음이의어를 의도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침대 이미지를 상단에 넣었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녹틸루카라는 신비의 동물에 대한 에피소드를 배치해 세계관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열고 나서 한 후원자가 '소재만 보고 후원했다가 실망할지 모른다. 문장을 보고 싶으니 원고 미리보기를 넣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크게 공감했다. 미리보기 페이지를 넣고 나서 후원이 늘었고, 응원도 많이 받았다.
기획, 디자인, 인쇄, 배송 다 직접 했다.
학교 다니느라 수원에 살 때인데 운전도 못하면서 렌트카를 빌려 파주까지 힘들게 갔다. 확신이 없었지만 참았다.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다. 대신 누가 해줄 수 없는 일이니 주어진 시간 내 다 해야 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지금 안 하면 수습이 몇 배는 힘들어지니까. 그럼에도 결국 2주 정도 늦어져서 지연 공지를 했다. 처음 문의를 했을 때 인쇄소에서 100개를 기준으로 일정을 잡았었는데 1,000개가 넘어가니까 인쇄하는 데 시간이 걸려서 마감 기한을 2주 늘렸다. 텀블벅에서도 배송이 어려우면 업체를 소개해 주겠다고 전화를 줬다. 걱정돼서 연락했구나, 싶었다.
펀딩 후에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을 했다.
펀딩 전에는 내적인 좌절이 있었기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이 싫어서 투고를 안 했다. 판타지로 어딘가 투고하고 상을 받거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조차 알아보지 않았다. 나는 내 책을 '현실밀착형 판타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장르를 찾는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장르성이 아주 강해야 할 것 같고 아니라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여야 할 것 같은데, 내 소설은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텀블벅을 열고 후원자가 50명을 넘어갈 때쯤에 투고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출판사도 띠지에 두를 만한 문구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틀인가 사흘만에 100만원을 넘겼을 때, 이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서 여러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다. 그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온 거다.
다음 장면이 또 다른 실패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넘겨봐야 아는 것 같다.
마음속에 지니던 이야기를 후원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읽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원고가 어느 정도 완성되었을 때 지인들에게 먼저 보여줬다. 사실 지인들은 친분도 있고, 부탁을 받아 읽는 것이기 때문에 재미가 없더라도 끝까지 읽어준다. 위로는 됐지만 지인 칭찬만으로 크게 기쁘거나 하지는 않았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책을 받은 고등학생 후원자 한 분이 학교에 가져가서 읽었는데 너무 좋았다고 텀블벅 커뮤니티에 글 쓴 걸 봤다. 너무 기뻐서 그날 펑펑 울면서 일기를 썼다. 소설을 쓰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못 넘어갈 것 같았는데, 드디어 내가 소설을 냈구나. 그런데 심지어 읽은 사람이 재밌다니. 그동안 힘들었던 게 없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 살면서 기쁘다, 슬프다 하는 감정을 많이 경험하지만 이렇게 기쁘면서도 슬프기도 한 복잡한 경계에 있는 감정은 처음이었다. 글 쓰는 게 꿈인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귀한 감정 같다.
작가가 되고 깨달은 점이 있다면?
다작하는 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게 됐다. 작가란 돈으로 채워지지 않는 에너지를 글로 채우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표현해야 하루가 온전해지는 느낌이라 하는 것임을. 포기하고 싶을 때, 좌절하게 될 때, 그런 간당간당한 상태에 놓일 때 그 페이지를 넘기면 항상 다음 장면이 있더라. 다음 장면이 또 다른 실패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넘겨봐야 아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예비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했다 싶으면 남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 나는 확신이 부족해서 기한에 떠밀리듯 했지만, 완결을 지으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역시 혼자서 뭔가를 끝까지 갖고가 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에디터_ 홍 비 ㅣ 사진_ 최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