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물]"100% 확신은 없지만 같은 제품을 10년은 팔아보고 싶어요"
한우물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이 곳 저 곳 파지 않고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결국 물을 얻는다는 것을 뜻하는 속담입니다. <한우물> 시리즈는 하나의 주제 혹은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나아가는 창작자를 조명합니다.
깜짝 놀랄 때 쓰이는 감탄사를 연상시키는 브랜드 'eeeek(이크)'. eeeek에는 똑같은 e라는 알파벳이 네 번 들어가지만, 로고에는 서로 다른 폰트의 e가 사용됐다. 마치 실리콘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사용해 다양한 색과 매력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eeeek의 뚝심과 의외성을 닮았다.
eeeek는 텀블벅에서 실리콘 스트로우, 투약병 프로젝트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꼭 필요한 제품이었는데 드디어 나왔다'며 지지를 보낸 후원자가 각각 3,650명과 4,167명. 이제 독창적이고 유용한 실리콘 제품 브랜드로 널리 알려지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덴마크,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다양한 국가로 수출까지 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실리콘 소재가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을 때부터 지금까지 6년간 실리콘 소재 한 우물을 파 온 eeeek. 100% 확신은 없지만 같은 제품을 10년은 팔아보고 싶다는 이광택 대표를 만났다.
실리콘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내에서 생산했을 때 더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제작하고 싶었다. 먼저 키즈, 주방용품 쪽으로 제품군을 정했고 아이들에게 안전한 소재로 실리콘을 선택했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제품에는 부모님들이 국산을 선호하고 중국, 대만, 동남아, 일본 등의 해외 시장도 한국 제품을 점점 선호하는 게 보였다. 또 실리콘 제품은 열에 강해 세척, 소독 등에 유리하고 전자레인지, 오븐, 냉장고 등에서 다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 됐던 것 같다.
실리콘 제품을 디자인할 때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나?
물때가 끼는 것을 방지하고 세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제품의 마감이나 굴곡에 신경 써야 한다. 물때는 주방에서 사용하는 유리그릇에도 많이 끼지만 표면장력이 높은 실리콘 표면에 특히 많이 생긴다. 작은 모서리에 물때가 끼지 않게 최대한 설계에 반영하려고 하고 있다.
실리콘으로만 제품 라인을 뚝심있게 확장해 왔는데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
처음에는 실리콘이라는 소재를 알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 지금은 환경오염 관련해서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소재로 실리콘을 많이 알고 있지만 2015~2016년도에 처음 제작했을 때만 해도 실리콘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낮았다. 특히 스토리몰드의 경우 소재 자체도 낯선데 일반적인 모양이 아니라서 페어(전시회)에 나가면 이게 뭐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너무 많았다. 얼음도 얼릴 수 있고 전자레인지, 냉장고, 오븐도 다 사용 가능하다고 얘기하면 이게 어떻게 오븐에도 들어갈 수 있냐고 의아해했다. 그때마다 프라이팬에 쓰는 실리콘 주걱처럼 주변에 있는 소품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텀블벅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이 있나.
CS 방법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리콘을 사용하면서 생길 수 있는 현상들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더라. 그래서 그런 것들을 초반에 잘 고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지하더라도 못 볼 수 있으니까 자주 묻는 질문들을 위주로 응대 매뉴얼을 만들었다.
또 텀블벅 프로젝트 커뮤니티에서도 그렇고 자사몰에서도 리뷰를 자주 보는데 제품을 보완하거나 같은 군의 제품에서 라인업을 만들 때 이용자의 니즈를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투약병의 경우 제품 제작 이후 더 큰 용량을 만들어 달라는 의견이 많았어서 대용량 버전을 출시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스트로우. 이 프로젝트 이후에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지고 '실리콘으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로 제대로 각인된 것 같다. 그 뒤에 다른 제품들도 많이 나갔다. eeeek는 스트로우 시작하고 성장기로 가지 않았나 싶다.
eeeek가 실리콘 제품 브랜드로서는 독보적 위치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데.
브랜드 시작 전에 기획을 철저히 했다. 컨셉, 방향, 아이템에 대해 1년 정도 기획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의 컨셉과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제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어떤 제품을 만들어도 eeeek만의 색깔이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eeeek의 첫 제품은 '스토리몰드'였다.
스토리몰드는 쉽게 말해 컨셉을 가진 얼음 틀이다. 예를 들어 100번 시리즈는 '킹스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사바나, 바다, 극지방 등 각 지역에 사는 동물의 왕들을 묶었다. 200번 시리즈는 '삼시 세끼'라는 컨셉인데, 밥 먹을 때마다 옆에 있고 항상 함께 하는 동물들이라는 뜻으로 친근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이렇게 각 넘버마다 컨셉을 정해서 4구의 틀 안에 각각의 동물들을 넣었다. 초기 도안들은 현재 출시되어 있는 상품 도안들의 2.5배 정도 많았다. 고르고 골라 지금의 캐릭터들이 나왔다.
스토리몰드를 기획한 이유는?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식탁 앞에서 이야기하지 말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우리 제품으로 온 가족이 식탁에서 재미있게 놀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획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아이들에게 뭔가를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만들면서 놀았으면 했다. 같이 만들고, 같이 먹고, 같이 이야기하고.
우리는 형태나 모양에 대해서 많이 정형화된 인식이 있는데 아이들이 활용하는 걸 보면 뭘 만들든 보는 재미가 있더라. 특히 석고 위에 색연필이나 물감으로 색칠한 걸 보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랄 때가 많다.
제품 아이템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나?
우리는 이미 컨셉 도안이 있고 적용만 시키면 되니까 제품을 새롭게 개발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여러 아이템이 머릿속에 많지만 이게 세상에 필요한 제품인지 먼저 확인하고 제작한다. 예를 들어 스트로우 같은 경우에는 원래 아이템이 있기는 했는데 당장 해야겠다 싶은 아이템은 아니었다. 그런데 당시 플라스틱 빨대의 환경오염 문제가 2주 정도 뉴스에서 계속 나오더라. 그래서 제작하게 됐다.
리유저블 투약병의 경우 1년에 버려지는 수백만 개의 플라스틱 투약병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외에 빨대, 텀블러도 같은 의미에서 인상 깊은데 환경보호 같은 사회적 이슈를 크게 강조하진 않더라.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제품이 이슈를 따라가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이슈도 트렌드와 맞닿아 있기 때문에 너무 이슈를 쫓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사라지는 제품이 될 수 있다. 한 제품을 오래 만들기 위해선 제품을 더 강조하고 브랜드를 강조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실리콘으로 꾸준히 한 우물을 파다 보니 배운 점이 있을까?
디자인이나 공장 다니는 건 원래부터 업이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인데, 생산까지 포함해 사업을 하다보니 다양한 분야에서 더 많은 걸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세무도 공부해야 하고, 수출도 하니까 포워딩도 공부해야 하고. 비즈니스 영어도, 물류도... 이런 식으로 얇고 넓게 많은 분야를 알아가는 느낌이다. 아, 거래처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실리콘이라는 한 우물을 팔 것인가?
우선은 실리콘으로 계속 작업을 할 것 같다. 현재는 키즈브랜드에서 확장해 성인용 라인업을 계획하고 있다. 아마도 꾸준히 텀블벅 펀딩을 할 것 같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패밀리 브랜드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에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이를 많이 먹어도, 어느 정도의 위치도 올라가도 100% 확신은 없을 것 같다. 그냥 하는 거지. 항상 하면서도 이게 될까 싶다. 지금은 덜하긴 한데 좀 더 어렸을 때는 되든 안 되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서너 가지 다 했었다. 한 개만 걸려라, 약간 이런 느낌으로.(웃음) 이것 저것 많이 해보는 게 그래도 좋지 않을까? 선택과 집중을 하려면.
<한 우물이 추천하는 다른 우물>
콤틸마이. 먼저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텀블벅을 소개해줬던 친구인데, 수제 니트 작업을 정말 꾸준하게 잘 한다. 본인 스스로 니트 짜는 게 너무 좋다더라. 그 친구도 브랜드 캐릭터가 있어서 니트라는 하나의 소재로 인형, 가방, 목도리 등을 다양하게 만든다. 작업도 꽤 오래 해와서 내가 보기에 정말 한우물인 것 같다.
인터뷰 홍비
편집 홍비, lotso
디자인 최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