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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Aug 17. 2021

플래시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그리고 선물

[페이스메이커] 온라인 추모관을 준비한 R.I.P 플래시 프로젝트 진행기

Pacemaker

마라톤을 함께하는 페이스메이커처럼, 프로젝트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펀딩 준비와 진행 과정을 솔직하게 전달합니다. 프로젝트 스토리에 미처 담기지 못한 창작자의 고충, 도전, 성취를 페이스메이커 연재를 통해 만나보세요.





코옵은 게임문화연구자와 미술비평가 2인으로 이루어진 문화예술 기획팀입니다. 우리 일상의 가장 사소한 것들이 가진 예술적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프로젝트를 기획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는 순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플래시야, 고마웠어! R.I.P. FLASH 프로젝트 〉




이름 플래시. 1996년 출생. 2021년 사망.

1부  |  박이선 (코옵)



플래시는 미국에서 태어난 소프트웨어다. 플래시가 태어나기 전까지 인터넷은 딱딱한 텍스트나 반복적 움직임의 GIF 이미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플래시 덕분에 초기 인터넷 환경에서도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인터랙티브 웹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졸라맨, 마시마로, 뿌까, 아바타스타 슈, 숫자송, 당근송, 우유송, 쥬니어 네이버, 야후 꾸러기, 주전자닷컴, 점심먹고노라라 등은 플래시와 관련된 2000년대의 키워드들이다. 그러다가 플래시는 죽음을 맞게 된다. 소유자인 어도비는 이 기술은 수명을 다했으며, 앞으로 3년간의 정리 기간을 거쳐 2020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서비스 지원을 종료할 것이라는 내용을 2017년에 발표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기술이 각자의 이유로 태어나고 죽는다. 우리는 이미 카세트 테이프, 플로피 디스크, 영사기 등을 떠나보냈다. 하지만 나는 플래시의 죽음에 유독 슬픔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 플래시는 친구와도 같았다. 방과 후 혼자 남은 집에서, 친구네 집에서, 학교 컴퓨터실에서 플래시는 항상 곁에 있어 주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는 성인이 되었다. 그 기억들이 잊혔을 무렵, 오랜만에 들은 친구의 소식이 시한부 선고였다면 얼마나 슬플까. 말년의 소식을 보니 바이러스의 전파사건으로 인해 “당장 PC에서 지워야 하는 프로그램”으로 낙인이 찍혔더랬다.


나는 죽음을 앞둔 나의 기술 친구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2019년 5월, 플래시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프로젝트 〈R.I.P. FLASH〉를 동료와 함께 시작했다. 플래시가 했던 일들을 정리하는 연구 프로젝트의 일종이었다. 플래시를 기억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20년 전 플래시 개발자를 수소문하여 인터뷰하기도 했고, 연구자들을 불러 플래시의 삶을 분석하는 글을 부탁하기도 했다. 나의 전공인 문화연구를 살려 플래시와 관련된 유산들을 발굴하고 가치를 기록해 나갔다.


코옵 팀이 구축한 〈R.I.P FLASH〉 웹사이트.


그렇게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까. 일평생 수고했던 기술의 죽음을 의미 있게 기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나와 같은 세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공동으로 플래시를 추모한다면 플래시가 쓸쓸하지 않게 저승에서 기뻐할 것만 같았다. 이는 비단 나 자신뿐만이 아니라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다양한 기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널리 알릴 수 있을까? 좁은 지인 네트워크를 넘어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을 플래시의 장례식에 초대하고 싶었다. 하나의 문화적 가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예전에 번역이 필요한 책을 제작하는 텀블벅 프로젝트에 후원한 경험이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러 차례 의미 있다고 판단한 프로젝트에 기꺼이 후원으로 공감을 전했다. 그 결과로 내게 전달된 리워드는 누구 한쪽의 이득이라기보다, 후원자와 창작자 서로가 모두 만족할만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다. 그 기억이 좋았다. 이번엔 내가 창작자가 될 차례였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긍정적 경험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텀블벅을 통해 책을 만들어 나누기로 했다. 플래시의 죽음을 기리자는 취지에서 비석 모양으로 책을 디자인하고, 이 비석에 우리가 그동안 정리해온 내용을 담기로 했다. 독창성을 더하기 위해 팀원들과 장기간에 걸쳐 준비 회의를 하며 여러 아이디어들을 도출시켰다. 책은 단순히 지면을 넘어서 온라인과 연동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프로젝트와 연계되는 미니게임을 만들기도 했으며, 유쾌한 장례식이 될 수 있도록 추모용품 굿즈를 함께 제작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는 점차 풍성해져 갔다.


〈R.I.P. FLASH〉의 스토리를 텀블벅 페이지에 차곡차곡 눌러 담아냈다. 다 쓰고 나니 ‘故 플래시 추모식 초대장’처럼 보였다. 미리 사람들이 알려질 수 있도록 프로젝트 공개 예정 버튼을 눌렀고 디데이는 점점 다가왔다. 우리는 곧 있을 프로젝트의 론칭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인생 첫 텀블벅 프로젝트 창작. 과연 우리는 플래시의 장례식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을 것인가?





감동 받으려고 창작자가 된 건 아니었는데

2부  |  박이선 (코옵)


개 예정 기간이 지나고, 드디어 프로젝트가 공개되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프로젝트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앞으로 한 달 동안 홍보에 총공세를 가하기로 했다. 그런데 무엇부터 시작하지? 팀원과 나는 둘 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조금은 막막했다. 고맙게도 텀블벅 팀은 초보 창작자들이 허우적대지 않도록 프로젝트 설계부터 런칭 이후까지 벌어질 일들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주고 계셨다. 우리는 텀블벅의 창작자 가이드를 읽으며 1번부터 따라하기로 했다.


우선 가장 가까운 지인들에게 프로젝트 오픈 소식을 알렸다. 창작자 가이드에 제시된 통계를 보니, 성공한 프로젝트들은 초반 일주일 내에 절반 이상의 목표 금액을 달성하고 있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초반의 후원 독려였다. 우리는 가까운 가족부터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글쎄 제가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프로젝트 소식을 빌미로 지인들과 오랜만에 안부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은 소셜 미디어 활용이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했고, 플래시를 기억한다는 프로젝트 주제에 맞게 소셜 미디어에 ‘추억의 플래시 모음집’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마침 숨듣명(숨어서 듣는 명곡) 시리즈가 소셜 미디어상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당근송, 숫자송, 허무송, 콩떼기송, 팥죽송 등 2000년대 유행했던 플래시 송들을 엄선했다. “이거 기억남? 추억이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서 리트윗되고 댓글이 달리면서 많은 분들에게 간접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오픈 이틀 뒤, 프로젝트 소식을 접하신 한 매체의 기자님께서 인터뷰를 요청해주셨다. 광화문의 카페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성심성의껏 기사를 작성해주시는 멋진 기자님을 만났고, <플래시야, 고마웠어!> 프로젝트의 취지를 제3자의 시선으로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홍보를 체계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소중한 보도 자료가 탄생했다. 이렇게 다른 분들이 대외적으로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시면서 감사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목표 달성까지는 갈 길이 멀어보였다. 절반 남짓한 후원 액수. 프로젝트의 예산이 작은 편이 아니라서 예상보다 많은 힘이 필요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닌, 한국 그 어디선가에 살면서 같은 가치를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럴 때면 창작자 가이드를 꺼내먹었다. 추가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것과 소셜 미디어 광고 활용하기, 그리고 홍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우선 게임, 프로그래밍, 플래시와 관련한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소프트웨어의 죽음이라는 맥락에서였다. 놀랍게도, 내가 글을 올리기 전에 이미 <플래시야, 고마웠어!>를 소개하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익명의 유저 분들이 먼저 프로젝트의 소식을 전달해주고 계셨던 것이다. 텀블벅의 영향력이 이렇게나 컸다니. 감동스러워서 캡쳐를 몇 장 찍어 보관해두었다. 나는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그 외의 커뮤니티에 글을 남겨두었다. 그리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플랫폼 광고를 실행했다. 그래픽 디자인, 프로그래밍, 인터넷 문화 등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프로젝트의 소식을 알 수 있게 하는 타겟 광고였다. 이렇게 커뮤니티와 플랫폼 광고를 통해 소식을 알리니, 더 많은 후원자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가이드 라인은 정말로 도움이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 미래의 창작을 준비하는 분이 계시다면 텀블벅 팀이 준비하신 자료들을 꼼꼼히 활용하시길 바란다.


프로젝트 론칭 후 35일 간의 여정을 매일 홍보와 함께 보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후원 금액 초과 달성! 창작자 페이지에 제공되는 대시보드 기능을 보니, 학창시절 배운 y=x 그래프처럼 매일 완만하게 후원자 수가 누적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꾸준히 힘을 냈던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후원자분들에게 좋은 리워드로 보답하겠다는 감사의 인사를 보내며 팀원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정산이 완료될 때까지 며칠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진짜 시작인 리워드 제작에 필요할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




공명하다: 함께 울리다

3부  |  박이선 (코옵)


나는 친구와 함께 2년간 소프트웨어 ‘플래시’(Flash)의 죽음을 추모하는 <R.I.P. FLASH>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프로젝트의 내용은 오래 전 한 온라인 기술이 발생시킨 국내 기술문화의 기록과 사람들의 기억을 남겨놓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사용자, 연구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글을 얻었다. 올해 초 플래시가 최종적으로 죽고 난 뒤,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 짓는 작업의 성격으로 그동안 수집해온 이야기들을 책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책으로 남겨놓는다면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다른 곳에 전달되기도 쉽고 플래시를 기억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방법으로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를 선택했고, 책 제작을 비롯한 추모 과업들을 정리하여 텀블벅에 소개했다. 35일간의 기간 동안 235명의 후원자들 참여와 함께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텀블벅은 프로젝트의 취지를 홍보하고 창작자가 약속한 목표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매개자였다.



텀블벅에서 얻은 것은 후원금뿐 아니라 감동과 응원의 메시지였다. 프로젝트를 게재하고 온라인상에서 많은 응원과 의견들을 받을 수 있었는데, 텀블벅 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웹사이트 방명록 등지에서 전해진 반응들은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공유하는 것과 함께 “어린 시절 소중했던 기억을 되새겨주어서 고맙다”, “이렇게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해주어서 감사하다” 등 말로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전해진 공명은 그동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고생했던 기억들을 잊게 해줄 정도로 큰 힘이 되었다. 


프로젝트 마감 후 며칠 뒤 창작자는 후원자의 정보를 텀블벅으로부터 전달받게 된다. 리워드 제작 및 배송을 위해서 후원에 참여한 분들의 성함과 주소가 포함된 간단한 정보인데, 나는 이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배송 주소를 보면 내가 생활하고 있는 서울, 경기권 외에도 부산, 경남, 충북 등 전국 팔도 각지의 주소들이 적혀있다. 나의 프로젝트가 플래시를 추모하는 작업인 점을 감안했을 때 물리적 위치를 관통하는 인터넷 문화의 특성을 느꼈다. 우리는 먼 거리에 떨어져 살고 있지만 동시대에 살면서 플래시라는 하나의 문화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방과 후 집에서 플래시 게임을 하거나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학교 컴퓨터실에서 선생님 몰래 게임하기, 혹은 자신이 플래시 프로그램을 만지며 무언가를 제작한 경험일지라도. 플래시라는 하나의 소프트웨어로 문화적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한국의 2000년대 기억으로 매개된 인터넷 공동체와 같다.


누구든 마음속 품고 있던 일들을 사이드 프로젝트로 발전시키고 싶은 생각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전공인 문화연구를 쓰임새 있게 발휘하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에서 착안한 문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돌이켜보면 나와 팀원은 텀블벅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많이 성장했다. 제품을 제작하거나, 글을 쓰거나, 게임을 만들거나, 문화 행사를 개최하는 등 모두가 멋진 프로젝트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텀블벅의 경험은 사람들의 힘을 얻고 목적을 일궈나간다는 점에서 창작자 자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다. 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값지다. 살면서 한 번쯤 창작자가 되어보는 경험은 여러모로 괜찮아 보인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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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옵 

편집 Lot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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