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물] 본도공방 도연재 대표 인터뷰
한우물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이 곳 저 곳 파지 않고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결국 물을 얻는다는 것을 뜻하는 속담입니다. <한우물> 시리즈는 하나의 주제 혹은 분야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나아가는 창작자를 조명합니다.
인센스 스틱이라고 불리는 향 끝에 불을 붙이면 은은한 향기와 함께 연기가 가만가만 피어오른다. 이전까지 향을 피우는 행위는 제사 혹은 종교적인 의식으로 인한 것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지만 언제부턴가 개인의 취향을 넘어 하나의 휴식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향을 피우기 위해서는 향의 재를 받쳐줄 도구가 필요하다. 우리말로는 '향로'라고 하는데 인센스 홀더로 더 익숙하게 알려져 있다.
텀블벅에서 향을 사르기 위한 향로만 꾸준히 선보여 온 공방이 있다. 2017년 중반에 탄생한 본도공방은 전통 문양이나 조선 시대 모자 '갓', 요가 수련법 중 하나인 하타요가 등 다양한 컨셉을 가진 6개의 향로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이전까지 주로 나무를 다루던 공방이 어쩌다가 유리, 황동 등 소재를 가리지 않고 누구보다 열심히 향로를 만들게 되었을까. 본도공방의 도연재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도공방
"익숙한 것들에게 작은 흥미를 보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익숙한 것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익숙함을 다른 시선으로 보며 재구성한다는 것. 대단하고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에서 숨어 있는 순간을 찾아 본도공방의 언어를 더하여 재구성합니다."
공방 이름이 독특하다. '본도공방' 이름의 뜻은?
올바른 방향이라는 뜻이다. 이름 짓는 데에 고민을 많이 했다. 3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한 번에 뜻을 알 수 있는 쉬운 이름보다 조금 이질적이더라도 의미를 담아서 기억에 오래 남는 이름을 짓고 싶었다. 평범한 이름이라면 인터넷 검색 시 다른 브랜드에 밀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검색창에 뜰 수 있는 이름을 생각했다. 그때 당시 네이버에 본도를 검색했을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텀블벅 첫 프로젝트인 다반향초[茶半香初] 향로가 사실상 '한우물'의 시작인데 원래 향에 관심이 있었나?
없었다. 주변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그렇고 내 또래는 '향'이라고 하면 제사 지낼 때 피우는 게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다음 세대는 그런 인식이 없는 것 같았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까 중국, 일본, 인도 등은 이미 대중적으로 쓰이고 있고 향 종류도 엄청 다양하더라. 블루오션이구나 싶었다.
향을 사를 때 필요한 향로를 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인센스 스틱 30가지를 직접 피워 보며 연구했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인센스 스틱이라도 굵기가 제각각 달랐다. 그리고 생각보다 재가 많이 날렸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구상했다.
그래서인지 본도공방의 향로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병 안에서 거꾸로 사르는 방식이다.
똑바로 태우는 건 이미 시중에 많았다. 내가 또 하나 끼어드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재 날리는 게 싫어서 어떻게 디자인을 해야 할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해외에서는 콜라병을 잘라 향을 거꾸로 넣어서 위에 걸치더라. 그렇게 하면 재가 안 날리겠구나 싶었다. 병 안에서 걸치는 것 대신 안정적으로 꽂을 수 있는 방식으로 디자인하기로 했다. 병 소재는 유리를 생각하고 내열 유리를 찾아보니 원하는 크기가 없었다. 그래서 국내 유리 공장을 찾아봤는데 유리 협회에 문의해도 국내에 없다더라. 그쪽에서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해외에 알아보니까 원하는 크기는 있는데 길이가 안 맞았다. 제작이 가능한지 문의했더니 다행히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유리는 수입하게 됐다.
중간에 포기했을 법도 한데 유리를 고집한 이유는?
인센스는 향 그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향을 사를 때 피어오르는 연기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름다워서인 것 같다. 그런 따뜻한 감성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줄 수 있는 소재를 고민하다 보니 유리가 생각났다. 다반향초 향로를 보면 연기가 투명한 유리 안에서 한 바퀴 돌면서 올라가기도 하는데, 나무나 황동같이 불투명한 소재로 만들면 연기가 마치 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조선의 모자, 갓(GAT) 향로의 경우 수많은 구멍이 인상적인데 그것도 퍼포먼스를 위한 디자인인가
맞다. 참 고민이 많았던 디자인이다. 왜냐하면 그 구멍을 하나하나 뚫는 데에 비용이 나간다. 구멍을 하나만 일자로 길게 뚫으면 가공 시간이 약 2초~3초 정도로 짧고 쉽다. 그런데 여러 개 뚫을 경우 시간이 배로 걸린다. 쉽게 설명하면 기계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뚫어야 하는 거다. 뚫고 난 뒤에는 구멍 하나하나 후가공을 해야 한다. 업체에서 하나만 뚫는 게 어떻냐고 계속 나를 말리더라. 그런데 나는 각자 구멍에서 연기가 나오면서 위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퍼포먼스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비용이 조금 들더라도 제작하겠다고 밀어붙였다.
디자인에 담긴 이야기가 다양하다. 전통 문양, 조선시대 모자 '갓' 등 주로 전통에 집중했는데.
일단 기본적으로 어떤 디자인이든 분야에 상관없이 물건이 나오면 그 물건이 나온 이유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스토리까지 담기면 금상첨화고.
예전에는 사실 전통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전통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촌스럽고 보수적인 면이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어느 순간 외래어가 너무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말로 할 수 있는 것도 외래어로 말하더라. 전통도 충분히 세련되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갓의 경우 드라마 킹덤에 관한 해외 유저들의 반응을 보고 기획하게 됐다. 킹덤 기사에 해외 유저들이 조선 시대 '갓'을 보고 저 모자가 뭐냐고,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너무 멋지다고 극찬을 하더라. 나에게는 익숙한 것이라도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새롭고 멋질 수 있구나 싶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C10H12N2O. 분자에서 분자로 이어지는 '분자향로' 는 전통에서 약간 빗겨났다. 게다가 새로 시작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는데, 앞서 소개한 전통을 본뜬 프로젝트들을 1막이라고 본다면 이제 2막을 열었다고 봐도 되나?
2막보다는 향로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있다. 사실 분자 향로는 원래 제작 계획이 없던 프로젝트다. 그런데 다반향초 향로 유리병보다 더 긴 유리병을 만들어달라는 후원자의 요청이 있어서 준비하게 됐다. 어차피 제작할 거면 기존의 것에서 길이만 늘이는 것보다 향꽂이의 패턴을 바꿔서 새롭게 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전통을 녹여내려고 했는데 잘 안 풀렸다. 맨 처음에 생각한 건 도깨비였다. 옛날부터 도깨비는 귀신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했다. 그래서 한옥을 보면 문고리에 다양한 도깨비 얼굴이 붙어있다. 향로에 도깨비를 올려놨을 때 연기가 입,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샤머니즘적인 느낌도 나서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는데 평판에 2D로 선으로만 만들다 보니까 결과가 마음에 안 들었다. 2~3개월 디자인만 한 것 같다. 전통은 포기하기로 하고 멍하니 향을 태우고 있다가 향의 입자가 유리병에 묻는 걸 보고 프로젝트 스토리에 적은 것처럼 '향도 분자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떠오르면서 최종적으로 분자향로 디자인이 나왔다.
텀블벅에는 향로만 선보였지만 이전까지는 미끄럼틀, 소반 등 목공예 제품 위주로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가구 제작으로 시작했지만 공예품뿐만 아니라 공산품도 제작하면서 틀에 갇히지 않고 여러 다양한 소재로 다양한 디자인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텀블벅도 그 이유로 시작했다. 나의 디자인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른 소재들을 능숙하게 다루는 장인들과의 협업하고 싶었다. 본도공방은 뭘 만들던 퀄리티가 보장된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곤란할 때도 있다. 전시회 같은 곳에 나가면 다른 분들은 무슨 공방이냐고 물으면 '목공방이다', '유리공방이다' 하는데 나는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다 보니까 대답하기 힘들다.
여러 업체와 의견을 조율하는 데에 있어서 힘든 부분이 있진 않은지?
공예품이면 혼자서 하면 되는데 공산품 제작은 여러 업체랑 같이 만들어 가는 거기 때문에 힘든 점이 분명 있다. 예를 들어 생산 단가를 맞추기 위해서 여러 군데에 견적을 낼 때 어떤 업체에서는 견적을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안 하냐고 화내는 업체도 있고, 어떤 업체는 견적이 좋아서 하기로 했는데 막상 샘플을 만들어 보니 품질이 엉망이면 이전에 안 한다고 했던 다른 업체에 연락하게 되는 민망한 상황도 생긴다. 조율이 힘들긴 한데, 내 입장에서는 작업하시는 분들이 없으면 안 되고 디자인 결과물이 좋게 나와서 별로 그렇게 화가 안 난다. 대신 정해진 수량을 언제까지 제작하겠다는 약속을 두, 세, 네, 다섯 번을 받고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렇게 안 하면 소량제작이기 때문에 일정에서 밀리는 경우가 생긴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공방을 차렸다고. 그전까지는 어떤 일을 했나?
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운송 및 자동차, 제품 디자인 등을 공부했다. 졸업 당시 자동차 디자인 분야로 취직하고 싶었지만 취업문이 워낙 좁아 못 갔다. 대신 폴더폰, 슬라이드폰 등 휴대폰 산업이 세계적으로 막 떠오르는 시기였기 때문에 휴대폰 디자인 전문 업체에 취직을 선택해 7년 정도 일했다. 7년 동안 250개 정도 프로젝트를 맡았다.
아무래도 회사 다니면서 사람들과 의견 조율하는 것에 지쳤던 것 같다. 전자제품 분야 디자이너라면 공감할 것 같은데 디자인 팀이랑 설계팀이랑은 어쩔 수 없이 앙숙관계가 된다. 설계팀 입장에서는 디자이너가 부품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상태에서 디자인해서 가져오면 그 안에 부품들을 넣어야 하는데 넣을 공간이 없는 거다. 그러면 설계팀에서는 "생각도 없이 예술을 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차가 쌓이면서 설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어느 정도 그런 부분이 해소되긴 했는데 디자이너로서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이 여전히 있더라. 공방은 내가 하고 싶은 방향대로 실패하든 성공하든 꾸준히 끝까지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본도공방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초창기 디자이너로 생활할 때는 튀고 싶고 달라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많았다. 근데 어느 순간 그런 게 크게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옆집에서 이사를 하는데 고풍스러운 책상을 들고 가길래 어디서 파는 거냐고 물었더니 수제작 업체에서 직접 만들어서 20년 됐다고 하는 거다. 오래된 책상 하나로 줄곧 자기와 함께 생활한다는 게 멋있어 보였다. 그때 '아,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비슷하고 같은 걸 여러 개 놔두는 것보다 똑똑한 거 하나 놔두고 오랜 세월 함께 갈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싶다.
텀블벅에 이미 인센스 관련 프로젝트가 많다. 그런데도 여러 차례 프로젝트를 달성했는데 본도공방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무엇일까?
디자인은 다른 프로젝트들도 다 각각의 특별함이 있을 것 같고 텀블벅에서 프로젝트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후원자에 대한 배려가 깔려야 되지 않나 싶다. 프로젝트를 작성할 때 내가 전문가라는 것을 드러내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보다는 후원자들이 신뢰하고 후원할 수 있게끔 장단점도 솔직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후원자들은 후원할 때 직접 보고 만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후원자 입장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해본다. 분명히 나이가 조금 있는 분들은 인센스 스틱을 꽂을 때 잘 못 꽂을 테니 방법을 자세히 안내한다던가 여러 상황에서 어떤 게 불편할 수 있는지 상상해보면서 생각날 때마다 메모해 놓는다.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보완할 건 보완하고 다음 프로젝트 준비할 때 조금 더 신경 써서 작성한다.
글 같은 경우도 단락마다 연결감을 주기 위해 프로젝트 작성 전에 메모장으로 스토리보드를 한번 만들어 보고 난 뒤 이 정도 설명이면 후원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프로젝트를 작성한다.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본도공방은 후원자를 배려하기 위해 기본 정도는 노력하니까 100%는 넘는구나 싶다.
앞으로도 향과 관련된 제품을 만들 생각인가
앞으로 향로를 두 가지만 더 만들고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하나는 지금 샘플을 만들고 있다. 10월 19일 날 DDP에서 디자인 페어를 하는데, 참여할지 확실하진 않지만 염두에 두고 제작 일정을 맞추고 있다. 향을 거꾸로도 사르고 똑바로도 사르고 양초까지 사를 수 있는 거다. 마지막 하나는 평범한 향로를 대중적인 비용으로 제작하고 그렇게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 향방과의 협업으로 '선향 3종'을 개발할 계획도 갖고 있다.
향로로 한 우물을 판 이유
다른 것도 많이 제작하고 싶은데 성격상 하나 만들어놓으면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만들고 싶은 집요함 같은 게 있다. 끝장을 보고 완결 짓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의도치 않게 한우물이 된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개선할 수 있는 요소들이 보인다. 만들고 나면 또 다른 아이디어가 나오니까 이걸 만들고 싶다는 욕망을 뿌리치기가 힘들다. 시작했으니까 마무리가 잘 되든 안 되든 간에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 그렇게 안 하면 이상하게 찝찝하더라.
하나의 제품군을 하나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예를 들어 만약에 컵을 디자인한다고 하면 먼지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뚜껑이 있으면 좋지 않나. 우선 뚜껑이 있는 컵 하나. 뜨거운 음료를 담으려면 손잡이가 필요할 테니까 손잡이 있는 컵 하나. 뜨거운 음료가 싫은 분들, '얼어 죽어도 아이스아메리카노' 하시는 분들은 손잡이가 굳이 필요 없으니까 손잡이 뗀 컵 하나.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선택지가 세 가지니까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다.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본도만의 제품을 공유하고 싶다.
위인프로젝트(WE-IN). 위인을 테마로 지속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의 유산을 지켜가고자 하는 취지가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는다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인터뷰 홍비
편집 홍비
디자인 최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