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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Nov 05. 2021

작은 지구의 소리를 기록합니다

미처 귓가에 닿지 못했던 제주의 소리를 모아 전하는 슬리핑라이언의 이야기


슬리핑라이언

제주도에 위치한 스타트업 청년기업으로, 제주도 자연의 소리를 사업의 근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제주도의 소리 자원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는 다양한 생명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전달하고자 한다. 최근 제주를 만나는 새로운 방식, '사운드스케이프' 펀딩을 마무리했다.


슬리핑라이언 인스타그램

슬리핑라이언 유튜브



사운드스케이프는 한 장소의 모든 매개물과 주변 환경의 소리들이 담겨져 있는 것을 뜻한다.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사람들은 특정 공간을 시각적으로만 느끼는 것을 벗어나 청각적으로도 그 공간을 경험하고 공감함에 따라 감수성이 더욱 풍부해질 수 있다.


사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소리풍경은 꽤나 끔찍하다. 공사장 소음, 자동차나 지하철의 소음, 직장 상사의 고함, 전화벨 울리는 소리 등 하루 종일 자신을 따라다니는 소음에 지치게 되고, 나중에는 점차 청각적인 자극에 무관심해진다. 반대로 사람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소리풍경이 있다. 새소리, 빗소리, 파도 소리, 모닥불 소리, 동굴 소리 등 자연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선물과도 같은 소리들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미션을 가진 제주도 로컬크리에이터 기업이다.


제주도는 자연 분야의 사운드스케이프를 모으기 위한 최적의 장소이다. 서울 면적의 약 3배나 되는 국내에서 가장 큰 섬이면서도 다채로운 지형과 고도별로 각기 다른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작은 화산섬, ‘제주도’가 작은 지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제주도의 ‘물’이 아니라 ‘소리’를 판다고?


우리의 펀딩은 말 그대로 ‘소리’를 파는 것이었다. 기존의 펀딩처럼 제품을 만들고 배송하는 것이 아니라, 이메일을 통해 사운드레터를 받아보는 펀딩에 과연 얼마나 참여할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대동강의 물을 팔았던 봉이 김선달도 우리의 펀딩을 무모하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동안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사운드스케이프의 0% 가능성을 높이기 우리만의 전략이 필요했다.


먼저 세계 7대 자연경관의 심사요소였던 ‘숲, 섬, 국립공원, 화산, 폭포, 해변, 동굴’을 이번 펀딩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각 테마별로 제주에서 소리가 가장 좋은 곳들을 선정했다. 고심 끝에 ‘표선면 녹차동굴’, ‘수월봉 해안절벽’, ‘1100고지’, ‘중문색달해수욕장’, ‘문도지오름’, ‘해그므니소’, ‘차귀도’가 이번 프로젝트의 녹음 대상지가 되었다. 환경 보전기관에서 7년간의 경험과 제주올레 탐사팀으로 두 발로 제주를 누볐던 경험이 큰 역할을 했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의 모습, 제주 서귀포시 색달동 (촬영=슬리핑라이언)


소리풍경을 통해 제주의 ‘생명’을 말하다


자연의 소리를 담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미국의 ‘고든햄튼’이 35년간 마이크를 손에 쥐고 전 세계를 떠돌며 소리를 수집하며 다녔음에도 인공적인 소음이 차단된 곳은 딱 50곳밖에 없었다. 물론 제주도는 그 리스트 안에 없었으며, 지금의 제주는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이 인공적인 소음이 가득하다. 단 해가 지고 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짜 섬의 주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밤이나 새벽에 주로 다니며, 낮에도 인적이 뜸한 곳에서 녹음을 진행한다.


단순히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소리만을 녹음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제주도 자연이 건네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프로젝트에 포함된 ‘수월봉 해안절벽’에 흐르는 지하수의 소리는 한라산으로부터 내려온 빗방울이 화산섬의 모든 생명을 품고 마지막에 흘러내리는 소리다. 이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의 지하수가 고갈될 위기라는 적신호가 될 것이다. 또한 이승악 오름 옆의 해그므니소에서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팔색조’의 소리를 담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들이 쉽지 않다. 자연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는 항상 다르게 흘러가고, 또한 예상치 못한 선물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1100고지를 녹음할 때에는 갑자기 찾아온 한파로 같은 도로상의 고도가 400m 낮은 서귀포자연휴양림의 소리로 대체하여 사운드레터를 발송하기도 했다.


해그므니소의 모습,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촬영=슬리핑라이언)


제주의 ‘소리풍경’으로 맞는 새로운 기회


사실 사운드스케이프를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는지 텀블벅 이전에는 잘 몰랐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이 명상이나 집중, 숙면 외에도 대학병원에 납품할 디지털 치료제, 인디밴드 가수의 오디오 콘서트, 자연 체험관에 사운드스케이프 전시 등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소기의 성과를 이어나가고 있다. 추가로 소리풍경을 사업화하는 기업으로서 제주관광공사의 J스타트업에도 선정되기도 하였다. 모두 텀블벅에서의 첫걸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 제주의 ‘소리풍경’이 전 세계인에게 닿을때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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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  슬리핑라이언

편집 estelle

디자인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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