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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Dec 24. 2021

10년 전 나에게 띄운 편지

꿈을 살아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싱어송라이터에 도전한 그래픽 디자이너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생이었던 10여 년 전 음악을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심한 부모님의 반대와 과감히 해 버릴 용기가 없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20대를 보내고 대학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친 스물 아홉 살이 되어서야 겨우 한 걸음을 뗐습니다. 음악연습실도 빌리면서 거창하게 시작했는데 막상 하게 되니 너무 힘들었고, 두렵고 피하고 싶었습니다. 음악을 너무 하고 싶어 했음에도 생각했던 대로 나와주지 않는 음악이 어렵고 버거워 한없는 열등감에 빠졌지요. 급격하게 줄어버린 수입에 생계로 허덕이고 몸과 마음이 지쳐갔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순 없는 건가 봐. 그냥 다 접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


그때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뒤늦게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하고 그걸 '진짜로 시작해 계속하고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 말이죠.


친구들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내 20대를 돌아보며 음악을 마주할 용기도 얻었습니다. 그렇게 책 한 권과 음악 세 곡을 작업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서른 살의 내가 스무 살의 나에게〉라는 책과 음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겪으며 느꼈던 점을 10년 전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1 서른 살의 내가 스무살의 나에게.



10년 전의 나에게 편지를 쓴다면 무슨 편지를 쓸까 참 많이 고민했다. 사실 스무살은 가능성만 있는 나이이지 않은가. 그 알량한 가능성으로 우습게라도 무언가에 대한 한 발을 떼어야 하는데, 자기모순과 두려움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었던 것이 나의 스무살이었다. 나는 나를 잘 못 믿었던 것 같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현실이 싫어 차라리 피해버리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꿈을 잠시 묻어두었다. 10년 동안 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마음속 저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묻혀있던 그 꿈은 혹 썩었는지 혹 못쓰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이따금씩 인생의 의미가 희박해지고 숨이 막힐 때에만 그 주위를 서성거릴 뿐이었다. 최근에 용기를 내어 덮었던 흙을 걷어내 꿈을 들추어보았는데, 흉측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있거나 아예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꿈은 방부제를 친 듯 그냥 그 상태 그대로였다. 꿈은 그대로였는데, 나만 바뀌었을 따름이었다. 스무살의 나에게 이걸 꼭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펜을 든다.


형진아, 라고 운을 띄운 다음에,


“생각보다 잘 하고 있어.” 라고 쓸까. 하지만 이 말은 거짓말이다. 생각보다 못할 때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넌 너 자체로 소중해.” 이 말은 10년전 나 자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이다.

“너는 너 자신을 그 자체로 더 사랑해도 괜찮아.” 역시나 소용이 없다. 10년 전의 나는 고집이 매우 세다.


내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스무살의 나는 덜 되었다는 이유로 나를 모질게 대했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는 데 필요한 ‘기능’에 한참이나 미숙한 나를 도대체 어떻게 믿어주고 사랑할 것인가? 다시 들추어냈던 꿈을 마주하며 고민했던 지점이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수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했고,

영광은 ‘더 이상 잃을 게 없어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고,

구원이는 ‘빨리 성장하기 위해 나 자신과 일에게 치밀하게 굴었다’고 했다.


각자의 처한 상황과 사용한 방법은 달랐지만 결국 이 친구들의 공통점은, 새로운 것을 시작함에 있어 부딪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결정에 얼마나 정직하게 마주하고 씨름했느냐였다. 스무살의 나는 오히려 위로가 아니라 꾸중을 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하간 형진아, 라고 운을 띄운 다음에, 한숨 크게 들이쉰 다음, 나는 스무살의 나에게 이렇게 쓰기 시작한다.


#2 스무살의 형진아 안녕. 서른 살의 나야.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지금쯤이면 기말고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소소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겠네. 요즘도 노래 연습을 계속하고 있니? 항상 노래를 부르고 곡을 쓰고 싶어 했잖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캐럴을 연습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네가 항상 했던 고민은 요즘 어때? 싱어송라이터를 하고 싶어 했는데 악기를 배울 돈도 없고 부모님께 손 벌릴 상황도 아니고, 곡을 쓰기 시작하다가도 학업에 휩쓸려 번번이 실패한다고 마음 어려워했던 게 기억나. 재수 끝에 음대에 합격한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쟤는 되는데 나는 안돼”라며 한없는 자괴감에 빠졌던 순간도 있었잖아. 하던 거나 제대로 하자며 쉽게 포기하다가도 불꽃이 한번 붙고, 활활 타오르는 의지가 어떤 계기로 식어 다시금 포기하고. 무기력이 일상처럼 함께 있어 난 항상 안 될 거라고 말하곤 했지.


너의 서른 살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니? 서른 살에는 무언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며, 나이를 먹으면 저절로 그러한 것들이 극복되고 사라질 거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던 스무 살의 내가 기억이 나. 한데 부끄럽게도 서른 살이 되었어도 같은 것으로 넘어지고 고민하고 있어. 오히려 너의 때보다 지금이 꿈을 붙들기가 더 힘들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냥 꿈은 꿈대로 놔두고 그만두려 했었지.


내가 너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함께 썼어. 해야 하는 것을 호기롭게 포기하고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는 서른 살 김형진의 친구들 이야기를 너에게 전할게. 그 친구들이 어떤 삶의 태도로 삶을 꾸려나가는지 봐.


피하지 말고 똑바로 봐.

할 수 있어. 정신 차려.


사랑한다. 스무 살의 형진아.

서른 살의 형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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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진

편집 estelle

디자인 pran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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