텀블벅배 이누야샤 오타쿠 대담
"이누야샤가 대체 뭐길래 이정도로 흥하는 거예요?"
텀블벅 슬랙 채널에 올린 한 개의 질문이 100개가 넘는 쓰레드 답변으로 돌아왔다. 사내에 인간과 요괴의 사랑 이야기와 반요의 슬픈 성장 스토리에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에디터의 묘한 촉이 발동했다. 이 콘텐츠 된다…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머글인 에디터는 이렇게까지 텀블벅 사람들과 후원자들을 흥분시키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누야샤에 진심인 이들을 섭외해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SOS 요청에 JS, J, L, E 네 사람은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전하길래 놀랐다. (다들 다른 콘텐츠는 흐린 눈으로 보면서…) 특히 JS는 그림을 그려 중, 고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고, 양재 AT센터 서울코믹에서 회지를 판매한 경험도 있다고 한다.
그럼 머글과 덕후는 무엇이 다를까. 일단 덕후는 머글의 질문 하나에 백 마디로 돌려줄 준비가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주4일 재택, 목요일만 사무실로 출근하는 텀블벅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수요일 출근을 불사할 정도.
아쉽게 수요일 출근은 무산되었고, 목요일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점심시간부터 모인 네 사람들 보고 떠오른 첫 번째 궁금증. 이들의 덕력은 어디서 탄생한 걸까. 태어났을 때부터 응애응애 대신 덕후덕후 하고 울진 않았을 거 아닌가. 우선 태초의 기원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답은 가까이 있었다. '투니버스'. 그런데 그만 난 금기 문장을 꺼내고 말았다. "투니버스가 케이블TV인데 어떻게 알고 본 거예요?"
회의실을 감도는 정적. 아뿔싸, 나와버렸다. 오타쿠를 향한 일반인의 잔인한 질문 어쩌구... 내가 무지했을 수도. 내가 감히. 내가 또 잘못을. 8쌍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즉시 요괴로 변신하고 싶었다. (진짜로) "다들 투니버스 채널 번호 외우는 건 ‘국룰’ 아닌가요?"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니 JS는 란마 1/2을 보고 타카하시 루미코 작가를 좋아하게 되어 작품 도장 깨기를 하다가 이누야샤를 발견했다고 한다. 게다가 과외하기 전 늘 같은 시간 투니버스에서 이누야샤를 방영해준 덕에 이누야샤와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고.
E는 투니버스로 처음 접한 뒤 다른 내용이 궁금해져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정주행했다고 한다.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고, 이누야샤에 대해 이름이라도 들어본 나 역시 투니버스에서 했다는 건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다만, 난 아이돌 오빠들을 만나느라 2D에 관심이 없어 교집합이 생길 수 없었을 뿐.
에디터: 이누야샤 OST 앨범 재발매 프로젝트를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은데. 각자 가장 좋아하는 이누야샤 OST가 있나?
J: 보아가 불렀던 every heart. 사실 신화의 I pray for you도 나중에 이누야샤 OST에 쓰였다.
에디터: 뭐라고? 그건 전혀 몰랐다.
J: 서현진이나 수영처럼 sm 소속 여성 가수들도 이누야샤 OST에 참여하지 않았나.
E: 그런데 사실 최고는 시대를 초월하는 마음 아닌가? 이누야샤를 관통하는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L: 맞다. 시대를 초월하는 마음은 명곡이다. 그리고 왠지 애니메이션 OST는 가사가 있는 것보다 연주곡이 잘 어울린다.
JC: 당연히 시대를 초월하는 마음도 좋지만, 서현진이 부른 4기 OST ‘Grip!’도 자주 듣는다. 서현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노래기도 하고, 이 노래를 들으면 추억이 떠오른다.
들었던 기억이 없어서 그 자리에서 유튜브로 재생해보니 아는 노래였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난 진짜 들어본 적 없는데?’ 라는 마음이 들었다면 유튜브에서 한 번 재생해보시길. ‘들으면 아는 노래’ 분야 甲
이쯤에서 덕후의 특징을 또 하나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덕후는 별안간 벅차오른다. 그리고 머글 기준 별거 아닌 질문 하나에도 3시간씩 필러버스터 가능한 힘이 있다.
E: 근데(이제 필리버스터 시작하겠다는 뜻) 솔직히(마찬가지다) 이누야샤는 나쁜놈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말이람?
E: 솔직히 현 여친(가영) 보는 앞에서 죽어가는 전 여친(금강)과 키스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누야샤가 사람이면 주변에서 ‘연애의 참견’ 프로그램 사연 100통 보냈다. 이야기 들은 주우재 고개 저으며 뒤돌아있는 모습 벌써 보인다.
L: 그것도 그런데 솔직히 금강을 끝까지 사랑한 건 나락 아닌가요?
E: 역시 배운 사람.
L: 이누야샤보다 셋쇼마루를 더 좋아했고, 링도 아니고 카라와 이어지길 바랐는데 제가 미는 커플은 항상 안 이어지더라고요.
역시 각자 파는 러브 라인은 또 제각각이다. 공식으로 먹으라고 작가가 떠먹여 줘도 얼마 없는 떡밥으로 굶주린 배를 채우는 마이너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등장한 또 하나의 덕후 특징. 메인 캐릭터가 아닌 서브 캐릭터에게 끌린다.
J: 제가 작가라도 셋쇼마루는 주인공 안 시켜줬을 듯해요. 잘생긴 데다가 실력도 최고고, 너무 완벽해서 서사를 구축하기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
JS: 맞아요. 셋쇼마루는 완성형 캐릭터고, 이누야샤는 성장 캐릭터죠.
J: 근데 이제 이누야샤는 ‘금쪽이’인…
E: 솔직히 오은영 선생님 데려와야 한다고요.
그렇게 에디터는 이누야샤의 1~7기 설정부터 금쪽이스러운 일화까지 모두 듣게 됐다. 머글인 내가 들어도 이누야샤는 오은영 선생님 한 번 만나야 할 것 같더라.
에디터: 그러면 이누야샤 말고 또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있나요? 텀블벅에서 했으면 좋겠다,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J: 너무 많은데, 투니버스의 ‘WE’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한국에서는 서브 컬처를 활용해 OST 앨범도 만들고 콘서트도 진행한 첫 사례거든요. 특히 신동식 PD님이 당시 일본에서 인기 있었던 애니메이션이나 시스템을 한국에 들여와서 국내화 하려고 많이 노력하셨어요. 그런 걸 다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 저는 카드캡터 체리요!
JS: 최유기도 좋을 것 같고요.
L: 아따맘마나 보노보노처럼 인지도 높은 애니메이션도 재미있을 듯해요.
J: 이미 유명한 IP도 당연히 좋지만, 지금 2030 세대가 초, 중, 고등학생 때 봤던 애니메이션을 활용하는 게 훨씬 더 추억을 자극하고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점심 먹으면서 한 시간의 수다로도 모자라 우리는 자리를 옮겨 한 시간 더 이야기 나눴다. 사실 업무만 아니었으면 10시간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거다. 아쉽게 영상을 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다.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간 사람들. 실은 비밀이지만 에디터는 여운이 가시질 않아 자리에서 조금 더 찾아봤다.
‘머글’이 ‘덕후’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누군가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초라고 하니 그정도면 충분히 덕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흔히 입덕을 신내림에 비유하곤 한다. 옆에서 아무리 덕후들의 열띤 영업에도 반응하지 않던 심장이 느닷없이 사소한 것에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의미인데, 장발의 사연남 셋쇼마루를 자꾸만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신내림을 받았을지도?
인터뷰 텀블벅 사람들
편집 estelle
디자인 pran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