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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Apr 15. 2022

어르신들을 수천 번 길거리 캐스팅한 사진가

서울의 시니어패션을 아카이빙하는 김동현 인터뷰

가끔 서울 을지로의 힙한 어르신들을 보면 “아버님, 그 청바지 정보좀요!”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오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변에서 멋진 어르신들을 종종 발견하지만, 스쳐가는 순간일 뿐이어서 금방 기억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쉽습니다. 김동현 사진가는 2년 반 동안 동묘, 남대문, 탑골공원 등 서울의 곳곳에서 길 가는 멋쟁이 어르신을 붙잡고 6천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필름 카메라 한 대로 친밀하게 다가갔지요. 어떻게 낯선 어르신들에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겠다는 용기를 냈는지, 김동현 사진가가 〈서울의 시니어패션 아카이빙 MUT〉촬영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줬습니다.  


김동현

2년 반 동안 "나이 상관없이 멋있을수 있다"라는 주제로 사진 작업을 하고 있다. 2021 보그 코리아 5월호에 소개, 2022 월간사진 2월호 표지 및 인터뷰에 실렸다. 당신이 몰랐던 서울의 시니어패션 아카이빙 사진집 MUT 프로젝트 진행중.


거절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했다는 증명이다.

누군가는 내 다음 사진을 기다린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르신들을 섭외하는 건 더욱이 어려웠을 것 같다.

문화의 차이일 뿐 인스타그램에 데일리룩을 찍어 올리는 젊은 세대처럼 지금 내 모습이 멋있다면 자랑하고 싶은 욕망은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거절하는 분도 있지만 과감한 포즈로 촬영에 임하는 분들도 계시다.


현장에서 섭외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가?

먼저 장소에 도착하면 공간을 한 바퀴 슥 둘러본다. 통로가 어디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사진 찍기 좋은 벽이 있는지 파악한다. 그 다음엔 유동인구가 많은 특정 장소, 예를 들어 동묘의 커피숍 앞에서 기다린다. 멋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발견했을 때 바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요청하면 당연히 거절한다. 사람들의 눈치가 덜 보일 법한 곳에 도달하면 슬금슬금 살포시 깜빡이를 켜고 다가간다. “어머니 실례하겠습니다.” (인스타그램을 보여주며) ”저 이런 사진을 찍고 있고 나름 유명합니다.”


사진촬영 동의가 이뤄지면 2~3분 이내에 가장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가 사진 찍기 괜찮은 벽을 찾아 2장 정도 찍는다. 적당한 멘트로 분위기를 풀어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굳어 계시기 때문이다. ”이 거리에서 어머니처럼 멋있는 사람 못 봤습니다. 어머니처럼 멋있는 분 아니면 말 안 겁니다. 이왕 찍는 거 더 멋있게 찍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멋있는 사진 하나 남겨드리고 싶습니다.“ 대부분 웃으면서 촬영이 마무리된다.  


초상권은 어떻게 설명해 드리고 있나?

초상권에 대해서는 항상 조심스럽다. 양날의 검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의 삶이 담긴 사진이다 보니까, 파워가 큰 만큼 위험성도 같이 따른다. 오늘 찍은 사진을 이러이러한 책에 실을 건데 괜찮으신지, 되도록 그 자리에서 초상권 동의서로 허락을 받는다. 사진을 싣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 거절하는 분도 물론 계시다. 조금이라도 거부감을 느낀다면 사용하지 않는다. 필름사진의 경우 한 롤을 다 찍어야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연락처를 받아놓고 현상을 마치면 보내드린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길거리 캐스팅에 나섰다고.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 뭔가?

거절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한 사람의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하면 덜 두려워진다. 거절을 잘 대하기 위해서는 ‘거래'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보통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만으로 다가가다 보니까, 거절당할까 두려워 한다. 내가 원하는 것과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조율해야 한다. 스트릿 사진을 찍는 건 일종의 거래다. “사진 찍어도 되나요?”가 아니라 “사진 찍어드릴게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당신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점을 전한다. 또 내게 거절은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시도했다는 증명이다. 누군가는 내 다음 사진을 기다린다. 한 장도 안 찍고 어영부영 집에 돌아가는 것보다 ‘시도라도 해봤다’ 자기 위로하고 돌아가는 게 훨씬 마음 편하다. 진짜 안 찍어줄 것 같은 사람도 찍어주시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사진가로서 제안하길 잘했다 싶었던 일은?

2020년에 보그코리아 5월 호 가정의 달 특집으로 어머님들을 촬영했던 적이 있다. 그중 한 분이 얼마 전에 시니어 모델에 도전하셨다고 연락이 왔다. 내 작업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하다. 종종 어르신들이 그때 찍어준 사진 아직도 갖고 있다고, 너무 멋있게 찍어줘서 고맙다고 연락을 해온다. 누군가에게는 사진 한 장이 삶에서 큰 의미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내 작업에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다.


내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건 60대, 70대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왼쪽부터 인사동, 탑골공원, 동묘, 남대문에서 만난 어르신들


서울의 어느 곳에 가면 사진 속 멋진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나?

어른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동묘, 탑골공원, 인사동, 남대문이다. 특히 어르신들에게 동묘는 젊은 세대로 치자면 오픈형 더현대서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묘는 일주일마다 장터가 열려 어르신들에게 쇼핑하기 제격이다. 옷만 파는 게 아니라 막걸리도 싸게 먹을 수 있고 다양한 눈요기도 할 수 있다. 공간의 특징에 따라 옷차림 유형도 나뉜다. 남대문 같은 경우는 장사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쎄 보여야 한다. 빨간 립스틱이라던가 보라색 머리, 비비드한 컬러가 많다. 알반지, 어깨뽕 등 외국 멋쟁이 할머니들의 과감함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동묘로 넘어가면 옷을 굉장히 저렴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스타일이 존재한다. 비교적 20~30대가 봤을 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힙한 느낌이다. 인사동은 갤러리, 화방, 낙원상가가 있다 보니까 천연염색을 한 옷이라던가 조금 더 아방가르드한 느낌이고 탑골공원은 라이브공연하는 분들의 경우 무대의상이나 세미정장이 많다.


젊은 세대와 어르신 세대의 패션에서 보이는 차이점은?

큰 차이는 없다. 옷을 입는 연령대가 낮은 거지 유명 브랜드의 경우 옷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60~70대 아닌가. 예를 들어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80대가 넘었다. 우리는 이미 윗세대와 감각을 공유하고 있고 같은 것을 멋있다고 느낀다. 이런 맥락에서 패션은 결국 돌고 도는 거 아닐까.


칼하트 오버롤을 폴라티, 후드티와 레이어드해 매치한 이중희 아버님


어르신들 아이템 중에 탐났던 것도 있나?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생각한 분은 있다. 이중희 어르신이다. 패션도 멋진데 생각은 더 멋지다. 들었던 이야기 중 광장시장에서 회색 코트를 샀는데, 부인 분이 ‘이거 여자꺼 아니가’ 하고 한 소리 하셨다더라. 어르신은 꿋꿋하게 ‘패션에 남녀가 어딨냐’면서 멋있으면 입는 거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금의 젠더리스 패션을 이미 이해하고 계신 거다. 그리고 주말마다 특별한 약속이 있지 않은데도 멋있게 꾸미고 지하철을 타신다. 무엇보다도 70대가 넘었는데도 꾸준히 본인을 표현한다는 게 대단하다.


어르신들과 촬영하면서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같은 장소에 자주 촬영을 나가다 보니까 친해진 분들이 많다. “오늘 입은 옷은 별로네, 저번에 청자켓에 워커 신으니까 멋있던데...” 하고 패션 관련 조언을 주시기도 한다. 요즘엔 어머님, 아버님이 사진과 함께 덕담을 보내주신다.(웃음)


김동현 사진가가 어르신들과 주고 받는 카톡


흔히 스트릿 패션하면 힙합과 스케이트가 떠오른다. 이렇듯 젊은 사람들의 문화로 여겨지는데 어르신들의 스트릿 패션을 찍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스트릿 패션에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다. 이전까지 내가 멋있다고 느낀 패션은 힙합퍼나 무신사 웹진에서 본 펑키하거나 힙한 형들처럼 2~30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스트릿 포토그래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진작가 스콧슈만의 ‘사토리얼리스트(The Sartorialist)'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클래식, 아방가르드 등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이 패션도, 인종도, 나이도 다양하더라. 책이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런 게 패션이야"라고. 그때부터 어르신들의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르신들을 찍은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용기가 없어서 스트릿 패션 문화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는 20대~30대에게 접근해서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다고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때까지 작업은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어르신들을 찍은 이후 불과 한두 달 만에 사람들이 내 작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SNS에서 동묘 패션을 극찬한 이후 언론에서 엄청나게 화제가 된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외국 디자이너가 찍은 사진 한 장이 계속 반복해서 바이럴 되는거다. 대중이 원하는 것에 비해 사진정보가 너무 없었다. 수요는 있고 공급은 없는데, 내가 채워 넣고 싶었다. 3개월쯤 찍었을 때는 개인전 제안이 왔다. 서서히 내 작업에 확신이 들었다.


사진은 어디서 배운 건가?

늘 보기만 하다가 어느날 불현듯 직접 찍어보고 싶어서 알음알음 현직 스트릿 포토그래퍼가 하는 워크숍을 들었다. 스트릿 사진을 어떻게 찍는지 어깨 너머로 보며 알게 됐다. 이후로는 무작정 실전으로 부딪힌 편이다. 컬러를 잡는 방법이라던가, 필름은 어떤 걸 써야 하는지는 필름현상소 사장님을 귀찮게 하면서 배웠다.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비용도 부담이었고 그 당시 DSLR 같은 고급장비를 가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사진 분야에 오래 계신 분들에게 피드백을 듣고 최대한 도움을 구했다.


2019년 결정적순간에서 열린 김동현 사진전 <멋 - 동묘 : 멋쟁이들의 기록>

사진집 제작을 기획한 건 언제였나?

개인전을 마친 뒤였다. 성취감보다는 전시를 보러 온 관객들의 반응이 엄청나게 기뻤다. “사진 되게 멋있네요.” “저 할아버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작업이 공감받는다는 게 정말 멋진 경험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 작업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손에 잡히는 결과물로 보답하고 싶었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닿고 싶었다. 사진 작업과 동시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용직으로 공사 현장이나 동대문 야간 창고에서 일하는 등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살진 않았다. 사진집 제작은 펀딩을 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돈이 든다.


이번 프로젝트의 제목인 ‘MUT’는 어떤 의미인가?

MUT를 영어 발음 그대로 읽으면 ‘뭣' 정도 된다. 단순하지만 직관적으로 한국의 멋을 외국인들에게도 온전히 전달하고 싶었다. 활동명 ‘mut_jpg’는 '멋진 사진들'을 뜻한다. 젊은 사람들한테는 한국 사람들도 나이 상관없이 멋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한국은 외국 패션에 더 관대하다. ‘멋있는 할아버지’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국 사람을 떠올리는데 그런 고정관념을 깨주고 싶었다. 자료가 없을 뿐이지 한국에도 멋있게 나이 든 사람들이 존재한다.

6천 장의 사진 중 350~400장의 사진만을 선정했다. 선정 및 배치 기준은?

세대를 떠나 공감할 수 있는 룩으로 다양하게 골랐다. 배치는 사람들이 책장을 넘길 때 어떻게 긴장을 놓치지 않고 넣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똑같은 포맷은 지루할 수 있다. 오브제와 인물을 번갈아 넣기도 하고 왼쪽에 디테일한 모습을, 오른쪽에는 전신샷을 넣는 등의 변주를 줬다. 종이는 한 장 한 장 사진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어서 유광지의 빳빳한 종이로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누구나 원한다면 사진을 찍고, 사진집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사진체’를 갖긴 어렵다. 사진가를 꿈꾸는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내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선택하고, 좁혀나가고, 도저히 더 못 좁힐 만큼 디테일하게 기획하는 것. 무조건 나가서 찍어보라는 건 놀러 나가는 것에 가깝다. 나 같은 경우는 스트릿 패션이라는 젊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포맷으로, 동묘라는 공간에서, 멋있는 어르신들을 찍는 것으로 관심사를 점점 좁혔다. 이런 식으로 나의 관심사를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일정한 프레임으로 10장에서 20장, 30장까지 찍어보는 게 프로젝트 작업의 시작이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은?

어르신분들의 다양한 머리 스타일을 모아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내게 있어 아카이빙은 내 관점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이다. 계속해서 한국의 시니어 패션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할 것 같다.


〈서울의 시니어패션 아카이빙 MUT〉 프로젝트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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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편집 홍비

사진 제공 김동현 

디자인 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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