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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텀블벅 영퍼센트 Jan 02. 2020

개인을 넘어 여성의 연대를 이끌어 낸 박효선

"일관되게 응원하는 태도로 지지해준 후원자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어요."

궁금했습니다. 단순히 개인의 서사로 치부될 수 있었던 텀블벅 펀딩 프로젝트가 무려 1,619명의 후원자를 연대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후원자 모두가 한마음으로 마케터 역할을 자처하며 일당백 홍보를 하게 만드는 이유와 그 힘이. 그래서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텀블벅에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진행한 박효선 감독과 진행된 인터뷰는 무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박효선 감독은 쉼없이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도 단 한 순간도 주저하거나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해당 프로젝트와 영화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많은 이야기 속에서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상업적인 논리로 성공할 수 없더라도, 세상을 180도 바꿀 순 없더라도 적어도 우리 시대 여성들이 나아갈 방향은 제시해 주리라는 것을요. 제가 궁금했던 개인적인 질문이 여러분 공동의 질문이 되었길 바라며, 박효선 감독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 드립니다.



Q. 안녕하세요. 우선 텀블벅 펀딩 성공을 축하드려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낯선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자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프로젝트> 촬영 3년 만에 텀블벅 펀딩을 진행해 성공한 박효선입니다. 


Q. 텀블벅 펀딩은 끝났지만, 이제부터가 훨씬 더 바쁘실 것 같아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미국 출국을 위한 준비와 추가 촬영 등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특히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중반부에는 미리 공개했던 임예진 배우님과 인터뷰를 비롯해 예상도 못 했던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바빴습니다. 사실 프로젝트 오픈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여건상 어려웠어요. 아무래도 두 명*이 영화와 텀블벅 펀딩을 동시에 준비하다 보니 손이 부족하더라고요. 그래서 프로젝트가 마감될 때는 카운트다운을 찍었답니다. 영화 속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텀블벅 펀딩을 앞두고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했던 PD님이 합류했습니다.)



Q. 먼저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실은 3년간 거의 혼자 준비하면서 힘들었어요. 혼자서 벽 보고 소리를 지르는 듯한 시간들이 꽤 오래됐거든요. 그러던 차에 올해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키치 진진 우수상에 선정되면서 많은 일들이 풀리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이거 해도 될까?’ 하면서 물음표를 던졌다면 수상 이후 많은 분들의 응원과 피드백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붙었어요. 제 프로젝트를 몰랐던 사람들도 객관적인 시선에서 재미있다는 평가를 내려 주니까 탄력을 받아서 텀블벅까지 진행하게 되었고요. 

당연히 텀블벅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티저 영상에도 등장하는 메릴 스트립의 인터뷰를 담당하는 제나를 비롯해 미국에 보여주기 위해서 시작한 것도 있어요. 단순히 팬 걸 한 명이 시작한 게 아니라 한국 여성 전체가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에 가지는 뜨거운 열망을 증명하고 싶었죠. 


Q. 혹시 목표 금액으로 4천만 원을 잡은 이유가 있다면요.

지금까지 3년 동안은 사비로 운영했어요. 영화를 하나 만드는 데 상상 이상으로 상당히 많은 돈이 들거든요. 그런데 목표 금액이 너무 낮으면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 때 그 금액만 든다고 생각할까 봐 우려도 됐고, 또 기왕 할 거라면 화끈하게 하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이것과는 별개로 그동안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제게 맨땅의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러다 보니까 건강도 상당히 나빠졌어요. 아무리 제가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고, 상상 이상의 모험이었죠. 그렇다고 해서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완벽하게 준비가 되었다는 걸 공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보니 텀블벅 민규님과 처음 만났던 2018년 연말에서 1년이나 더 지난 2019년에 시작하게 되었어요.


Q.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힘든 일도 많았겠어요.

가장 힘든 건 내 자신이 드러난다는 것이에요. 지금까지 픽션을 만들었는데, 나를 드러내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사실 제 첫 장편 영화가 다큐멘터리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거든요. 그래서 작업 중반부인 2019년까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라는 개인이 드러나는 건 원치 않지만, 다큐멘터리고 제 서사가 투영되어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드러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렇다면 얼마나 오픈해야 할 지 선을 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페미니즘이나 여성인권을 이야기 한다는 것 자체로 어차피 욕을 할 사람들에게 욕먹는 건 전혀 두렵지 않지만요 (웃음). 

촬영 초기에 미국 항공사에서 초과 예약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베트남계 미국인 의사가 폭행을 당하고 강제 퇴거된 사건을 보면서 며칠 잠을 못 잤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맞는 장면까지 담겨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해당 승객은 미국 국적에, 의사임에도 끌려나갔다'는 게 떠오르더라고요. 그즈음 ‘KKK가 불을 질렀다’, ‘흑인 혹은 아시안 여성이 린치를 당했다’ 등 차별에 대한 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요. 이런 주제를 다루고 미국으로 갈 한국 여성인에게도 그런 일이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영화보다 내 안위가 우선이지 않나 싶은 마음도 들더라고요.


조회수가 무려 33만 회가 넘었을 정도로 큰 화제가 되었던 임예진 배우님 인터뷰


Q. 가장 화제가 되었던 임예진 배우님과의 인터뷰는 어떻게 성사되었나요.

사실 임예진 배우 따님이 큰 도움을 주셨어요. 우리 또래인 따님이 SNS에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보자마자 ‘이건 꼭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어머니인 임예진 배우에게 강력하게 주장을 한 거죠. 그렇게 한 달 정도 뒤에 인터뷰가 성사됐고, 텀블벅 펀딩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작년 12월 7일에 업로드할 수 있었어요.

당연히 뜨거운 반응은 예상했지만, 이만큼 활활 타오를 줄 몰랐어요.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지요. 굉장히 극적인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해요. 저와 일면식도, 인연도 없었지만, 너무나도 정확하게 현 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 방안 및 우리 시대의 고민까지 짚어주셔서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게다가 먼저 연락을 주셨다는 것도 멋지지 않나요!


Q. 임예진 배우님 외에도 먼저 연락을 주신 분들이 계실까요?

예전에 시도를 했지만, 무산됐던 분들과 성사가 되기도 하고, 또 이번 계기로 친분이 쌓이거나 중간에 아는 지인들이 다리를 놔준 경우도 있고, 또 주변에서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독려해서 연이 닿은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이건 영화로 확인해 주세요. 아쉽게 무산된 경우도 있는데요. 배우분이 직접 저희 쪽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소속사 방침에 따라 참여하지 못한 분도 계시고요. 어딘가 소속이 되어 있다면 그에 따라야 하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Q. 제일 기억에 남는 후원자 혹은 사람들의 반응이 있다면요.

사실 좋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주신 덕분에 하나만 꼽기 어렵지만,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감상을 꼽자면... 아마 트위터에 남겨 주셨던 것 같은데, ‘자신이 그동안 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라면서 여자들이 되든 안 되든 하는 걸 보고 싶었다’, ‘개인이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 우리가 응답해야 한다’는 글들이 가장 오래 남았어요.


Q. 아마 많은 분들이 가장 궁금해하실 텐데 혹시.. 메릴 스트립과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을까요? 물론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텀블벅 펀딩을 하기 전보다는 좀 더 가까워졌고, 더 좋은 소식을 곧 전달 드릴 수 있을 듯해요. 자세한 내용은 영화에 담길 테니 영화를 기대해 주세요.


Q. 메릴 스트립과 만나서 던지고 싶은 첫 질문이 궁금해요. 또 상상하고 있는 첫 만남은 어떤 모습일까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들었을 때의 소감과, 반대로 그의 입장에서 제게 무엇이 궁금한지를 묻고 싶어요. 물론 메릴 스트립과 두 번째, 세 번째 만남도 있길 바라지만요. 걱정되는 부분은 제가 기절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을지 여부예요. 마음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인터뷰 시간이 짧을 수 있으니 정신 차려야죠.


출처 : 빅이슈, 사진 : 김화경


Q. 영화에 인터뷰이로 참여해주신 분들이 굉장히 다양한 것 같은데 살짝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또 앞으로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은요?

미국으로 건너가면 영화계에 종사하는 한국 여성을 포함해 아시아계 여성들의 인터뷰를 기획 중이에요. 스케줄이 상당히 빡빡할 듯하네요.

임예진 배우님 인터뷰가 업로드된 직후 뉴욕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며, 오면 촬영을 돕고 싶다는 연락들도 받았어요. 아무래도 여성 영화인을 꿈꿨던 분들의 응원이 정말 큰 것 같아요. 사실 여성들도 영화 제작을 꿈꾸지만, ‘여자는 영화 못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듣고 살거든요. 심지어 아예 전공을 삼을 생각도 못 한 채 포기한 사람들이 부지기수고요. 그분들의 염원을 제가 대신 이루려면 건강해야겠죠. 실은 2018년부터 번아웃으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았거든요. 힘든 길이라는 걸 알아서인지 임예진 배우님을 비롯해 제게 연락주는 분들 모두 ‘건강 잘 챙겨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한국적인 감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뭉클했죠.

티저 영상을 통해 많은 분들을 이해시키고 싶었어요. 그간 여성들은 뭉쳐서 무언가를 하는 것에 익숙지 않고,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존재다 보니 응어리를 표현할 분출구가 없었다고 봐요. 다시 영화를 찍게 된 근본적인 고민으로 돌아가면 ‘과연 내가 한국에서 여성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에서 시작됐거든요. 그런데 비슷한 고민을 저만 하는 건 아닐 텐데 이를 의연하게 풀어가는 사람들을 조명하면 어떨까 싶었죠. 크지 않아도 사회가 해주지 못하는 걸 개인의 단위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여성들에게 우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충분히 담길 만한 스토리를 내가 만들자는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전 세상이 180도 달라지게 하진 못하더라도 세상에 없었던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건 맞을 거란 확신이 있어요.


Q. 해외에도 골수 메릴 스트립 팬들도 굉장히 많잖아요. 

해외는 이미 메릴 스트립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사이트나 SNS 계정을 운영하는 이들도 있고, 단위 자체가 국내와 달라요. 그래서 텀블벅 펀딩을 할 때 글로벌 홍보도 고려를 했지만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든 흘러서 연락이 닿더라고요.

영화를 기획할 때 글로벌하게 판을 키워 이들까지 담고 싶었지만, 막상 찍다 보니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아시아 팬 위주로 가려고 했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중국 팬들에게 시도를 했지만 답이 없었고 일본 팬들은 SNS 계정을 닫아 버렸죠(웃음). 메릴 스트립이 활동하는 미국에 가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니 촬영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하려고요.


Q. 메릴 스트립 영화를 함께 보는 상영회도 여러 번 개최하셨는데, 만약 자금이 무제한으로 주어진다면 메릴 스트립의 어떤 영화를, 어떻게 함께 보고 싶으세요?

정말 제한이 없다면 클럽에서 다 같이 싱어롱으로 ‘맘마미아’를 즐기고 싶네요. 맘마미아 싱어롱을 몇 번 주최했는데, 현장에 오는 분들 모두 속된 말로 작정을 하고 오거든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를 다 꿰고 있는 분들부터 ‘목소리가 큰 편인데 괜찮나요?’ 하면서 문의를 하는 분들까지. 심지어 이런 행사인 줄 모르고 왔던 친구도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면서 감탄했고요.

사실 ‘맘마미아’가 사람들과 같이 보기 좋은 영화거든요. 물론 혼자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여럿이서 보면 감동이 배가 돼요. 아무래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끼리 공감하고 관통하는 감정이 비슷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현장에서도 보면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지만, 또 누군가는 춤추고 있어요. 모녀가 함께 오는 경우도 많고요.

그리고 ‘더 포스트'도 반드시 봐야 하고, 영화가 아니어도 된다면 HBO 드라마인 엔젤스 인 아메리카와 빅 리틀 라이즈도 보고 싶어요. 메릴 스트립이 TV 드라마는 거의 하지 않지만, 이 두 작품에는 출연했거든요. 엔젤스 인 아메리카는 6시간 정도라서 함께 보기에 제격일 듯해요.



Q. 어떻게 보면 개인적인 이벤트로 볼 수 있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가 텀블벅을 통해서 여성들이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의 구심점이 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영화의 갈 길이 당연히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세상에 등장했을 때 생길 반응도 8~90% 정도는 예상했고요. 한 치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물론 인권에 대한 이야기, 여성 운동을 다루고 있지만, 모두가 예측하는 뻔한 길로는 가고 싶지 않아요. 그건 제 서사가 들어가면서 유니크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이 추가될 것이라 예상해요. 그런데 제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뜨겁네요(웃음).

아마 메릴 스트립이라는 존재 자체가 다양한 문화권과 나이대에 어필할 수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언어와 문화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이야기의 장이 되잖아요. 영화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외에도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유저들이나 여성 단체 등 정말 다채로운 인물들이 담기거든요. 그걸 떠올려 봤을 때 전 이들과 메릴 스트립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잖아요. 그런 포인트도 떠올린다면 더욱 재미있게 영화를 관람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국에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공개할 라운드 테이블도 준비 중이에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의견도 공유하는 중요한 인터뷰가 될 거예요. 아마 굉장히 길고 긴 논의가 이어지겠죠. 대부분 저에게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 같은 프로젝트를 원했는데, 시작해줘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주었어요. 참 감사하고 신기해요. 박효선이라는 개인이 몇 년간 맨땅에 헤딩하면서 이어온 일에 당연히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응원과 응답을 보내주었으니까요.


Q. 2016년부터 운영한 트위터 메릴 스트립 정보봇 한국본부는 정말 신선하다고 생각했어요. 개설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단순히 호기심과 약간의 호감이 있던 상황에서 누군가 옆에서 잘 정리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깊게 빠지잖아요. 그래서 많이들 좋아해주신 것 같아요. ‘세상이 좆같을 땐 그래 메릴을 보자'는 것도 진심이에요. 제게 메릴 스트립은 도피처였거든요. 그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사실 계정을 개설하고 열흘이 채 되지 않아 메릴 스트립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유명한 스피치를 했어요. 트럼프의 시대에 대항하는 유명인의 첫 공개적 발언이었거든요. 이를 통해 계정이 폭발적으로 커졌어요. 이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은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죠.


Q. 그래서인지 트위터에서는 초반부터 ‘이 프로젝트 살려야 해' 혹은 ‘이거 무조건 성공 시켜야 돼’ 등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주신 유저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어요. 이분들이 일당백을 한 마케터라고 봐도 무방할 듯한 데, 이러한 기조를 봤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감사함은 말로 다 표현 못 할 정도예요. 얼떨떨하기도 해서 아직 감정을 소화하는 단계입니다. 솔직히 모두 일당백을 해주셨거든요. 주변에 홍보하고, 링크를 공유하고, 텀블벅 펀딩이 성공해야만 편하게 눈을 감는다, 매일매일 새로고침만 하고 있다는 응원 등등.. 감사하죠. 그런 와중에 작년 11월 30일 <우먼 인 할리우드>도 개봉했어요.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 ‘보란 듯이 성공하는 걸 보고 싶다’면서 지지와 후원을 해주셨어요. 타이밍이 절묘했죠.

정말 자신 있게 시작했지만, 촬영 기간이 길어지며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어요. 특히 텀블벅을 올리기 직전에는 정말 불안했어요. 그런데 텀블벅 펀딩이 성공하면서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건가 싶어요. 영화는 작업 기간도 오래 걸리지만, 보상받지 못하고 아예 완성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도 정말 많거든요. 박효선의 영화가 개인의 영역을 넘을 수 있었던 건 이 분들의 지지와 연대, 후원이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도전이 필수인 큰일에만 흥미를 느껴요. 팔자인가 싶네요(웃음). 승산이 없는 게임에는 덤비지 않지만, 일단 어떤 걸 해야겠다, 하고싶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하고 있어요.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제 성향이 맞아떨어진 도전인 거죠.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요?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전 항상 한국을 떠날 생각을 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감독으로 주류에 편입될 수 없을 거라 단정 지었어요. 그런데 텀블벅 펀딩이 성공하면서 ‘나 같은 사람도 한국에서 한국어로 영화를 찍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보았어요. 후원자분들께서도 ‘감독님의 상업 영화를 보고 싶으니 기다리겠다'고 응원도 해주셨고요.

그리고 이 영화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해주는 분들이 이렇게 만다는 것이 놀라워요. 아마 저 같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인 거겠죠. 최근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못한 갈증이 있어요. 제 영화에 대한 관심도 아마 그런 흐름들 안에 있는 것이겠죠. 제가 포기 안 하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올 수 있게 응답해준 후원자분들께도 참 감사해요. 기대 이상의 열렬한 반응과 차마 어디서도 설명하지 못했던 자신들의 어려움까지 먼저 털어놓으면서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셨어요. 


미국에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 후 전 스탭이 메릴 스트립 티셔츠를 들고 사진을 촬영할 예정


Q.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무엇이 효선님을 움직이게 하는 건가요. 

우선 결과물에 자신이 있어요. 단순히 메릴 스트립과 반드시 만나서 인터뷰를 성사시켜야만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터뷰와 촬영이 더해지면서 메릴 스트립과 만나든 안 만나든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될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내 인생에서 뭔가 많은 게 날 묶고 있는데 이 모든 걸 풀고 다음 연결점을 찾지 않으면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아마 다른 영화를 제작했어도 결국 돌고 돌아 이걸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데 다행히 이 ‘시대’에, 이 ‘나이대’, ‘한국’ ‘여성’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등 모든 조건이 맞았죠. 100% 운으로 여기까지 온 건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타이밍이 절묘했죠.


Q. 마지막으로 1,619명이나 되는 후원자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우선 제게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셨어요. 여러분의 지지 덕분에 저는 '나같은 캐릭터도 한국에서 여성 감독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처음하게 되었어요. 영화를 제작한다는 건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3년간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겪었던 벽,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했거든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반응해 주신 덕분에 그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예요. 오랜 작업 기간동안 저는 조건 없이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도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드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관되게 응원하는 태도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해준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되었죠. 당연히 이에 보답하는 방법은 영화를 열심히 만들어 보란 듯이 완성 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후원자분들과는 상영회 혹은 라운드 테이블 행사를 진행해 만날 예정이에요. 그때 반갑게 인사도 나누고, 영화를 보면서 못 다 한 이야기도 나누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응원해 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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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선

여성과 세상 간의 관계에 관심이 많은 필름메이커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메릴 스트립에 대해서 책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지난 2019년 10월 27일 텀블벅에서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단순히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낙관적인 면만을 말하진 않습니다. 대신 이 움직임에 부딪히면서 기대하고, 상처받고, 그렇지만 어떻게든 앞으로 가보려고 하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인터뷰_ 프로젝트 에디터 권수현 | 이미지 제공_ 박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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