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종양 4기
뾰족하기 위해 빚기 시작한 도자기는 어느덧
그 원래의 용도조차도 알 수 없을 만큼 뭉툭해져 있었다.
칭찬양파와 비난양파가 가진 의미를 반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무생물조차도 타고남이 있는 건지, 지독히 꼬인 실은
기침 한 번에도 부서지지만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랬으면 감기 걸린 보노보가 되었겠지.
행복의 상대성에 대해 생각해 보면,
꿀늪에 빠져 익사한 벌. 혹은 아사한 벌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다.
꿀을 탐하는 건 무너지지 않는 한 요소이다.
탐하지 않기 위해 보이는 수행은
결국 방향을 알기에 반대로 향하는 것이다.
굶어 죽은 두 구의 시체를 똑같이 해석해선 안 되는 이유이다.
그러니 치명적인 줄 알고 찌른 칼이
자상이 아닌 멍만 남겼다.
감기 탓을 안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