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에 입대한 내 청춘. 나는 2010년대 운동권이었다.
신병 휴가 나오고 6개월 만에 간신히 두 번째 휴가를 나왔다. 부서 업무로 바빠 사실상 반 자포자기 상태였고 애당초 코로나 때문에 7,8개월 휴가 못 가는 건 예삿일이었으니 해가 바뀌고 나이를 한 살 더 먹고서야 사회 공기 좀 마셔보겠거려니 하고 맘을 비운 지 오래였다. 뜻밖에 우리 부서장인 상사님이 먼저 휴가를 제안했고 (지금이 아니면 이제 전역 때까지는 휴가를 못 가겠구나 싶어) 두 번 사양하지 않고 바로 기회를 덥석 물었다.
반년만의 서울. 신촌에서 후배 셋을 만났다. 전역한 지 두 달, 세 달... 이제 겨우 군인 티를 지워가는 4학번 아래 후배들. 대학에서 4년이면 결코 짧은 터울이 아닌데. 21년 겨울에 휴가를 나와, 전역한 18학번들과 소주를 나누는 내가 14학번이라는 사실이 퍽 처량하게 느껴졌다. 날더라 '짬찌'라며 경례 각이나 제대로 잡아보라고 건방을 떠는 후배놈들과의 술자리가 싫지만은 않았지만.
나는 스물일곱 살 되던 해 1월에 입대를 했다. 재수도 안 하고 단번에 대학 입학증을 손에 넣었지만, 입대까지는 8년 가까운 결심이 필요했다. 남들은 학사 학위를 두 번이나 취득했을 시간. 꼬박 여덟 학기를 다 다녔지만 졸업학점은 턱없이 모자랐다. 누굴 탓할 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내가 '설계'한 대로 된 일이었으니.
입학 5년 차가 되던 해부터 나의 신분은 쭉 휴학생이었지만, 나는 거의 매일같이 학교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나중에 가서는 친한 친구들에겐 스스로 '유사 대학생'이라고 자조 섞인 농담을 뱉었던 것 같다. 항상 학교에 있으니 내가 휴학생인지 모르는 후배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침에 학교 가는 길을 오르면 그건 학생회실 문을 열러 가는 것이었고, 오후에 교문을 나서는 건 아르바이트로 푼돈을 벌러 가는 길이었을 뿐이다.
나는 운동권이었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나는 84학번이 아니라 14학번이다. "요새도 운동권이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글쎄, 도대체 뭘 운동권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있긴 있다. 해마다 학생회 감투를 바꿔달고, A2 전지에 글 써서 학교 복도에 붙이기를 즐기는 변태 같은 취향에, 후배들 손 잡고 데모하러 가자고 하는 어딘가 불편한 선배. 그런 걸 운동권이라고 부르는 거라면, 뭐 나도 운동권 그 비스무리한 뭐였던 것 같기는 하다.
어쩌다 그런 걸 하게 됐냐고 물으면 글쎄, 나름 운명이었던 것 같다. 왜 내가 그런 걸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시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다음 기회를 빌려보겠다. 하여간 그런 걸 더 하려고 졸업도 미루고 복학도 미루고 학점도 줄여가며 대학생 신분으로 남았다. 그러는 사이 동기들은 졸업을 했고 하나 둘 취업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애당초 했던 '설계'와는 달리 나는 학생운동에서 중도하차하게 되었고(이왕 그만 둘 꺼면 애매하게 질질 끌지 말고 진작 그만뒀어야 했다.) 나는 마치 준공 80%에서 공사를 멈추고 유치권 행사에 들어간 부도난 건물 같은 신세가 되어버렸다. 만약 그 길을 계속 갔다면, 몇 년을 더 학교에서 애쓰다가 사회운동으로 '진출'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말이다. 그만두는 결심을 하는 데에만 무려 1년 가까운 시간을 썼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야속하게 자꾸만 자꾸만 흘렀다. 이제는 후배들이 졸업을 할 차례. 선배 무서운 줄 모르는 버릇없는 후배놈들은 몇 년 전부터 자신들의 졸업 축하 플랭카드를 내가 달아줄 것이라며 나를 놀려대던 터였는데, 그 그림이 현실이 되게 되어버렸다. 차마 후배들 졸업식 전날 학교에서 플랭카드 끈을 묶을 수는 없었던 나는 미뤄왔던 입대를 결심하게 된 것이었다. 사실 더 이상 병역을 미뤘다가는 헌병대에 끌려가게 될 터이기도 했다. 그렇게 스물일곱 살이 되고 열흘 뒤, 나는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대했다.
사실 상황이 이리되고 나니 좀 창피하더라. 같이 동지네 뭐네 하며 인생을 약속했던 옛 운동권 동료들에게 미안했고, 후배들 앞에서 다 큰 어른인 척 폼 잡으며 학생사회가 어쩌네 저쩌네 하며 떠들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운동을 그만두게 된 내막을 이해한 주변이 들은 내색치도 않았지만, 제 발 저린 나의 부끄러움은 컸다. 뱉어놓은 말의 무서움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그때 그렇게 멋있는 척 건배사 하지 말 걸...'. 자려고 누우면 작은 기억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을 짓눌렀다.
그러던 차에 휴가를 나와 후배들을 만난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인연들에 옛 생각도 많이 났지만,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는 후배들을 보며 오히려 좀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게 뭐라고, 후배들 만나러 가는 길이 무섭고 두려웠던 것 같지만, 당장 후배들 만나는 동안에는 부끄러움보다는 좋은 기분이 훨씬 컸다. 기분도 들뜨고 술도 좀 들어갔겠다, 휴가 나오려고 모은 돈도 몇 푼 안 되는데 그만 술을 사버리고 말았다. 카드 긁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술이 좀 깨는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후배들이 고마웠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들이 자꾸 묻는다. "선배는 졸업 그래서 언제 해요?", "형은 졸업한 거예요?". 휴가 나가서 잠깐 마주친 후배들까지 다 합하면 한 스무 명은 되는 것 같은데, 만나는 이들마다 같은 질문을 약속이라도 한 듯 물어대는 차에 차라리 비활성화 한 인스타에 공지라도 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전역하면 복학한다고요. 하여간에 졸업은 멀었습니다.
2021.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