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던-서울댁

-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5권.

by 청록펜

서울댁의 나이는 서른넷, 제법 예쁘게 생겼으나 면독이 올라 푸릇푸릇한 얼굴, 피부결이 엉망이라 제 나이 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기에, 여우가 둔갑술을 하듯 정성을 들여야 겨우 제 또래의 여인으로 보이는 여자. 그녀는 원래 수원사람으로, 어느 돈 많은 중인 집의 통지기였습니다. 통지기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서방질을 하는 계집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더군요,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주인의 성욕을 채워주어야 했던 종의 신분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녀는 찬거리를 사러 장에 다니다가 투전판의 한 백수건달과 눈이 맞았고, 열여덟 살에 그자와 함께 수원에서 서울로 “사랑의 도피”를 했습니다. 그녀가 도망치면서 지니고 나온 금품이 떨어지자 그 사내는 그녀를 객줏집에 남겨놓고 혼자 달아났는데, 그녀는 그가 돈을 마련하러 간 줄만 알았고, 설마 자신을 버리고 갔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한 달이 넘도록 객줏집 주인과 싸우며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열여덟 살… 그 어린 나이에 고향을 등지고 떠나기 위해서 그녀는 얼마나 큰 결심을 했을까요? 그럼에도 겪어야 했던 정인의 배신,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겪어야 했던 통지기로서의 삶. “통지기”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면 주인의 성적 노리개로 살아야 했던 여종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일 텐데. 셀 수 없이 많았을 이 땅의 삼월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함안댁은 중인 출신이라 치혼사를 했다고 무늬만 양반이었던 김평산에게 그토록 학대를 당했는데… 비록 부자이긴 하나 중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이 여인의 삶은 얼마나 더 고달프고 힘들었을까. 통지기로서의 삶도 기가 막힌데, 열여덟 살부터 서른넷에 이르기까지 16년간 지속된 노류장화의 삶. 그 고달픔은 말해서 무얼 하겠습니까. 지금은 유서방이라는 사람을 만나 살고 있지만, 결혼으로 미래를 약속한 관계가 아니니 그와 얼마나 더 함께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고, 그리고 그를 만나기 전까지 수많은 남자들을 거치며 상처받아온 그녀의 삶은 얼굴에 면독으로 뚜렷이 그 흔적을 남겨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녀의 옛이야기를 들으며 “몸값은 왜 안 받고 밥값만 지워놓고 달아났냐?”고 그녀를 버리고 간 남자의 어리석음을 탓하던 두수에게, 서울댁은 정색을 하고 달려듭니다. 그동안 두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의심스러운 점을 나열하며 가열차게 따지고 드는 그녀를, 두수는 당장 때려죽이고 싶은 성미를 누르고 거짓말로 살살 달래 봅니다. “회령에 정혼한 처녀가 있고, 내 마음은 일편단심”이라는 두수의 변명은 정확하게 서울댁의 응어리진 마음을 조준했고 서울댁은 금세 풀이 죽고 수긍합니다. 너무 손쉽게 증오에서 슬픔으로 변하는 그녀의 태세 변화에 두수는 재미마저 느낍니다.


그녀의 슬픔을 자극하는 버튼.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나만을 바라봐주는 삶, 그것은 서울댁이 살아온 과정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팔자 좋은 년”이나 누리는 선망과 시샘의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저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살았지? 내 삶은 왜 이렇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서울댁은 또다시 울기 시작합니다. 이미 뒤틀려 버린 나의 삶. 지나온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데… 과거가 자꾸 발목을 잡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알 수가 없고… 그래 잊자. 술을 마시고 잊어버리자. 귀신도 모르게 나를 죽여줄 놈이 어디 없을까? 그녀는 다시 면경 앞에 앉아 값싼 박하분을 바르고, 기름때가 묻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정리하며 이렇게 술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ps:

<주구와 갈보>를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생겼어요. “천대와 구박… 천대와 구박, 내가 받은 건 그것밖에 없었다. 나라가 망했다고 울어? 우는 눈구멍에 오줌을 갈기지. 나라가 뭐야? 망해라! 망해!…” 서울댁의 집에서 되뇌인 두수의 속마음이죠. 그녀가 받았던 천대와 구박은 두수의 삶보다 훨씬 더 처절한 것이었을 텐데… 그녀에겐 나라에 대한 응어리는 없습니다. 오히려 “일부종사 못한 년이 갈보요, 두 나라 섬기는 놈이 역적이니”라고 지혜가 담긴 말을 하지요.

내가 이 나라에서 받은 게 없으니, 나라 따위 다 팔아먹어 버리겠다는 두수와 나라가 나에게 해준 건 없지만, 나라는 일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남편만큼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서울댁의 생각차이는, 생각의 방향, 원망을 누구에게로 돌리느냐의 차이에서 오는 걸까요?

작가의 이전글[토지] 용심-용이와 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