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5권.
* 용심 :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심술궂은 마음
- 용이의 용심-
용정으로 이주한 용이는 여섯 개의 장을 돌면서 곡식을 받아 파는 뜨내기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농사꾼으로 잔뼈가 굵은 용이에게는 장사를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구변이 없었습니다. 기껏 해보았으나 본전 치기가 일쑤였지요. 결국 용이네 세 식구들의 생계는 월선이가 다시 시작한 국밥집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했고, 용이는 차츰 비뚤어져 용심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월선이와 임이네. 두 여인을 거느리고 있는 이 상황의 부당함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자신의 무능력까지 더해지자 견딜 수 없는 수치심에 스스로를 마구 할큅니다. 수줍음 많고 섬세하며 어진 마음의 남도 사니이였던 그는, 옹졸하고 소심하게 남의 눈치를 살피는 졸장부로 바뀌었고, 만만한 식구들을 향해서는 거칠다 못해 포악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홍이는 그런 아비를 두려워합니다. 임이네는 그런 용이에게 자주 손찌검을 당하고 발길질까지도 당하지만, 이미 용이가 감당할 수 없는 여자가 되어있습니다.
- 임이네의 용심 -
임이네는 평사리에서 칠성이와 연을 맺어 살고 있었을 때부터 인물 좋고 성품 좋은 용이를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칠성이가 최치수 살인사건에 휘말려 죽고 나서 마을에 발 붙일 데가 없어진 그녀는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야반도주합니다. 친정으로 향해봤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남편의 그늘이 사라진 상황에서 아이들은 그녀만을 바라봅니다. 어린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문전걸식하며, 자식들과 먹을 보리밥 한 덩이를 위해 상대가 누구이든 치마를 걷어 올려야 했던 그 무서운 과거는 임이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상황에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좋은 마음으로 감자를 한 보따리 들고 왔던 용이. 그녀에게 용이는 구원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강청댁이 역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임이네는 용이의 아들 홍이를 출산합니다. ‘이제는 내 자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아마도 그녀는 안도했을 것이고, 용이의 집 울타리 안에 머물기 위해 용이에겐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한 채 늘 그의 기색을 살피며, 금쪽같은 아들 홍이에게 최선을 다하며 지냅니다. 그러나 윤보가 일으킨 봉기에 용이가 참여하며 훌쩍 마을을 떠나버리고, 또다시 아이 둘과 남겨진 그녀는 생각다 못해 월선이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납니다.
그것은 바로 돈. 세상의 마지막이 온다고 해도, 믿었던 사내가 나를 떠나가더라도, 수중에 돈만 있다면, 예전처럼 그렇게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가진 모든 재주를 동원해서 매일매일 월선이가 벌어들이는 돈을 훔쳐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차곡차곡 베갯속에 모아둡니다. 매일 밤 조금씩 높아져가는 그 베개를 베고 잘 때마다 그녀는 얼마나 든든함을 느꼈을까요. 그렇게 공들여 모은 돈들을 한 순간의 화재로, 그토록 허망하게 잃게 될 거라곤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요. 나의 안전과 나의 안위. 그것을 위협하는 모든 이들은 그녀의 용심의 대상이 됩니다. 월선이도, 용이도, 기름집 아낙네도, 자기가 낳은 귀한 아들 홍이조차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