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4권.
꽃이 피는 봄 삼월에 태어난 아이였을까요?
삼월이는 그 이름으로 인해 봄을 떠오르게 하던 소녀입니다. 옥골선풍 구천이를 바라보며 설레어했던, 마음이 모질지 못해 늘상 귀녀에게 당하곤 하던, 명랑한 10대 소녀다웠던 그녀. 어미 잃은 서희를 가엾게 여기고, 윤씨부인에게 성심을 다하던 최참판댁의 구성원. 돌이와 복이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던 예쁜 얼굴과 가늘한 몸매의 여인. 그런 그녀에게 어둠의 손길이 뻗쳐옵니다. 1년이 다 되도록 최참판댁에 식객으로 눌러앉아있던 조준구. 그를 경계하며 민첩하게 피해 다니던 그녀를, 조준구가 삼수의 도움을 받아 겁탈한 것입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지만 모두들 비밀로 하며 누구 하나 나서서 그녀를 보호해 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조준구가 동할 때마다 몸을 허락해야 했던 삼월이의 눈에는 그 자(者)만이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베갯머리에서 조준구에게 매달려도 보았지만. 역시나 그는 책임감이라곤 없는 비겁한 자(者)였습니다. 애초에 삼월이를 노렸던 것도 그녀가 노비였기에 크게 말썽이 없을 거라는 계산이었고, 삼월이라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 하나 없이, 그저 늘씬한 그녀의 몸만을 탐했기에 훗날 홍씨의 잔혹한 보복이 삼월이를 향했을 때도 결코 나서서 막아주지 않았습니다.
조준구와 삼수 사이의 심상찮은 거래를 눈치채고, 순이는 삼월이에게 도망가라고 귀띔해줍니다. 그러나 그녀는 도망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안전하다 믿었던 세상이 이토록 무참하게 무너지는데, 최참판댁 담장 너머에는 어떤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그녀는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웠을까요. 제정신으로는 삶을 이어갈 수 없는, 이미 산송장이었던 그녀는, 도망가서 자신의 몸을 지키는 대신 정신을 놓아버립니다.
결국 조준구의 개 삼수의 손에 떨어져, 마치 물건처럼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유린당하고, 학대당하다가 아비를 알 수 없는 아이를 낳습니다. 미모가 사라지고 나서야 겨우 조준구에게서 벗어나지만, 삼수는 그녀를 끊임없이 학대하고 괴롭히며 변태적인 그의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따뜻하고 밝고 예쁜 소녀였던 삼월이의 꿈은 아마도, 구천이 같이 인물 좋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든든한 서방을 만나 그 울타리 안에서 예쁜 아이들을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의 곱디고운 꿈은 산산이 깨어졌고, 삼월이는 자신이 낳은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반응하지 않는 어딘가 이상한 어미가 되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짓밟혀버린 그녀의 청춘은, 깨어져버린 그녀의 삶과 꿈은 어떻게 이어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