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6권.
말이 돌아오는 동네. 귀마동.
곱디 고운 젊은 남녀가 짝을 이루어, 둘이 함께 건너면 이별이 없어진다는 강을 건너려, 두 필의 말에 올라 부푼 희망을 안고 기운차게 출발한다. 그러나 끝도 없는 벌판을 가다 보면 지치고, 정신이 멀어지고, 심한 졸음이 쏟아진다. 말고삐는 잡았으나 정신을 놓아버린 그들은 결국 자신의 뜻이 아니라, 말이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동과 서로 나뉘어 서로 갈라지면서 차츰차츰 멀어지고 종국에는 서로를 기억조차 못하는 호호백발 할멈과 할아범이 되어 헤어지고 만다. 여정을 시작할 때 장다리 순같이 연한 발목을 가졌던 여인과 삼나무같이 단단한 몸집이었던 사내는 세월이 가는 것도 아니요, 아니 가는 것도 아닌 곳에서, 볼품없이 늙고, 병들고, 모든 것을 잊어버린 채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다.
<꿈속의 귀마동>은 오롯이 작가님이 상상해서 만들어내신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나라의 옛이야기의 어느 한 자락에라도 귀마동이라는 곳이 있었던 걸까?
청나라 복색으로 어딘지 모르게 우관선사를 닮은, 고독지옥 속에서 700년의 시간을 버텨낸 귀마동의 마굿간지기 할아버지는 마지막엔 우관선사로 변해 길상이 더러 “천하의 못난 놈!”이라고 호통을 치신다. 그 꿈에서 번쩍 깨어 병상에 누워있던 서희를 바라본 길상은 너무나 잠잠한 그녀의 모습에, ‘혹시 서희가 죽은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돌연 엄습하여 서둘러 다가가 서희의 숨소리를 확인한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함께 도망갈 생각까지 했다는 서희의 마음을 확인하고도, 어찌할 바를 몰라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던 길상은, 마차가 뒤집힌 사건으로 인해 망가진 인형처럼 기절한 서희를 안고 어떻게든 그녀를 살려보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길상은 서희를 영원히 잃을 뻔하고 나서야 그녀가 자기 심장의 주인임을 확인하고 서희에게로 완전히 돌아온다.
“늘상 처음”보듯 사모하던 여인의 마음에도 내가 있었고, 우리는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라는 확신이 든 순간, 길상의 마음에는 마약같이 괴로운 환희가 들어찬다. 급기야 그 감정은 격류가 되고, 물보라가 튀어 오르며 길상은 비로소 모든 속박에서 풀려난 것을 느낀다.
혼절해 있는 서희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녀의 곁을 지키는 잘 생긴 길상을 은근히 경계하면서, 자꾸만 서희와의 관계를 묻던 병원의 조수에게, 길상은 이제 간결하고 명확하게 답을 해준다.
“내 처 될 사람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