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6권.
봉기 목구멍에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나고 다른 사람들도 입맛을 다시는데 분위기가 부뿟해진다.
- 2부 제3편 2장 나룻배 中
나룻배에 탄 사람들이 왜놈들이 부리는 횡포에 당하는 사연을 나누다가, 두만네가 본 며느리들로 이야기가 옮겨 온다. 쪼깐이 집의 천하일미 비빔밥을 이야기하며 봉기는 꿀꺽 침을 삼키고, 사람들 또한 입맛을 다시면서 분위기가 “부뿟”해진다. 본문의 부뿟함은 무슨 뜻일까? 사전을 찾아봐도 나오지 않고…. 이 장면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뭔가 식욕이 자극되고 아주 맛있는 걸 생각할 때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상상 속 음식에 몰입하게 되듯이, "팍팍하지 않고 아주 잠시나마 여유롭고 뿌듯한 느낌"을 말하는 게 아닐까라고 짐작해 본다.
2장 <나룻배>에 탄 사람들 중 주의해서 보게 되는 인물이 있다. 봉기. 두리 아빠 봉기. “곰같이 미련하고 뱀같이 간교하고 돼지같이 욕심꾸러기였던” 사내.
흉년 중에 조준구가 자기편을 만들려고 최참판댁의 재물을 갈라 붙일 때, 삼수에게 착 달라붙어 제 식구들만을 위해 따뜻한 쌀밥을 지어먹던 남자. 사위 삼을 생각은 조금도 없으면서 삼수를 이용해 먹으려고, 딸 두리를 미끼로 내세워 그를 조종하려고 했던 영악한 사람. 결국 딸 두리가 삼수의 난행에 큰 해를 당했을 때에도, “당자밖에 모르는 일”이라고 아내의 입단속부터 시키고, 쉬쉬하며 나이가 한참 어린 신랑감을 골라 두리를 시집보냈던 현실주의자.
지독한 구두쇠였고, 삼수와 어느 정도 결이 맞는 심술꾸러기이기도 했던 봉기는 이제 묘하게 쓸쓸한 눈빛을 가진, 주머니 품이 안 드는 말씨에서만은 싹싹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슬피 울며 시집을 갔던 두리도 어느새 아이를 낳아 봉기에게 외손자를 안겨주었고, 할아버지가 된 봉기는 사람들의 소식에는 얼마나 밝은지, 나룻배 타고 있는 이들에게 두만네 가족 소식을 속속들이 전달하는 사람이 바로 봉기였다. 온전히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동네의 소식통으로 변할 만큼 다른 사람들도 돌아보며 살고 있는 것이다.
봉기가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아픔이 아닐까? 삼수를 조종하려고 자랑스레 내놓았던 딸이 결국은 그 때문에 삼수의 표적이 되어 무참한 일을 당했고, 그토록 속 터지는 일을 당하고도 되갚을 능력이 없어, 그저 참고 견뎌야 했던 상황. 자신과 딸을 생지옥에 몰아넣었던 삼수가, 제 꾀에 당해 그토록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걸 지켜보았던 일은 봉기의 뾰족함을 깎아내고 좀 더 둥글게, 타인을 돌아보며 살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나를 괴롭히는 아픔, 고통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어렸을 때는 도통 이해되지 않던 말,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그 말을 세월이 지날수록 더 깊이 알아간다. 아픔은 내 삶에 옹이를 만들고, 그 위에서 새로운 가지가 뻗어져 나와 나를 자라게 한다. 봉기가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다고 생각했던 삼수가, 제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고통을 안겨주었고, 또 그 웬수 같았던 놈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휩쓸려 비명횡사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봉기도 자랐다. 여전히 자기 것 안 내놓으려고 하는 구두쇠지만, 주머니 무게와는 상관없는 말씨에서만은 싹싹한 사람으로, 타인에게 조금은 더 친절하게, 다른 사람의 마음과 형편을 조금은 더 걱정해 주면서,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조금은 더 배려를 하려고 애쓰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삶 속에서 크고 작은 고통들을 겪는다. 그 고통을 겪어내며 버티고, 다시 일어선다. 고통을 견뎌낸 사람들에게는 부뿟함이 생긴다. 타인을 돌아보고 품어줄 수 있는 약간의 여유. 그런 작은 애씀들이 모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씩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