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아라리 - 김훈장

-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7권.

by 청록펜

https://www.youtube.com/watch?v=Ext1tnRFEmE

심규선 <아라리>



김훈장은 옹졸하고 편협하다. 자신이 따르는 유교적 가치(도리와 신분)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쳐왔고, 대쪽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다. 대쪽인 만큼 두루 살피는 능력은 없고, 사람으로서의 그릇도 얕아서 무엇이든 마음에 담아둘 줄 모르고 투명하게 드러낸다. 길상과 서희의 혼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신발은 발에 맞아야 하고”라며 길상의 면전에서 반대를 하고, 그들의 결혼을 “야합”이라고 치부했는데,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희와 혼인한 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듯, 길상을 대하는 태도가 쌀쌀맞기 그지없다. 그런 옹고집 김훈장과는 달리 마음 씀씀이가 깊은 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를 찾아가고 매달 하숙비까지 챙겨주며 돌본다.


옹졸하고 편협한 김훈장. 이미 지나가버린 구시대의 가치들만 붙들고 사는 김훈장. 뼈와 살가죽만 남은 손에 기력이 쇠하여 스스로의 일도 제대로 처리할 수 없으면서도 맘에 차지 않는 사람의 도움은 쌀쌀맞게 거절하는, 그렇게 꼬장꼬장 말라죽어가는 김훈장. 체면을 차리느라 궁금했던 가족들의 안부도 바로 물어보지 못하고, 혜관에게 “그래 평사리 마을 사람들은 다 편히들 있는지 모르겠소오?(소오..라고 굳이, ‘오’를 더 넣으신 박경리 작가님의 섬세함이라니…^^)”라고 운을 떼 본다. 혜관은 김훈장의 마음을 짐작하여 이곳으로 오기 전에 한경이네에 가보려고 했다고 말해준다. 김훈장은 그 말만 듣고도 ‘죽지는 않았구나…’ 싶어 벌써 눈시울이 벌게진다. 수년 동안 가족들의 생사도 알지 못한 채, 그 좁은 방에서 얼마나 마음을 졸이면서 살았던 걸까. 한경이네는 그 사이 가솔이 늘어나 아들 형제가 생겼고, 며느리가 살림도 야무지게 잘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훈장의 얼굴엔 오랜만에 온기가 돈다. 비구에서 대사로… 혜관을 부르는 호칭마저도, 자기가 상대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김훈장의 얕은 속마음이, 늘 걱정하고 마음을 쓰고 있던 고향의 소식으로 따뜻하게 채워져서, 그는 오랜만에 용정촌으로 나가보려고 한다. 길을 나선 후 혜관과의 대화에서 그동안 그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던 깊은 절망을 드러낸다.


“불가에서는 자결이 죄가 되오? 그러면 고려장은 어떠하오?”


이미 내 목숨은 구차해졌다. 이곳에서 늙은이들이야 신다 버린 신발신세. 선비의 귀감인 이동진조차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퇴물로 치부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늙은이들을 비방하면서도 막상 젊은 사람들의 하는 양을 보면, 역시 해괴망측한 탁상공론들 아닌가. 우리 오백 년 역사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정사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도리를 잊어버렸다. 이동진, 그 사람마저도 아들 상현에게 일본에 가서 공부하라고 당부했다고 하니, 이제 조선의 독립은 멀어지기만 하는 건가. 어이없이 나라를 잃었고, 그 나라를 되찾는 일은 일각이 여삼추, 여간 바쁜 일이 아닌데, 이러다가 조선 사람들은 각기 제 살길을 찾아 타국으로들 뿔뿔이 흩어지고, 조선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김훈장의 한탄을 읽으며 그의 마음에 빠져 들어가던 그때, 마침 내가 있던 공간에는 심규선의 <아라리>가 흐르고 있었다. 사무치게 사랑하는 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끝내 떨치고 떠나가는 것을 보고 그리움에 목이 메어 노래를 부르는 고운 여인의 목소리가, 나라를 잃고 자신이 평생을 바쳐 숭배하던 가치를 품은 시대가 떠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김훈장의 지금과 겹쳐지니…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

언약과 증표 가련한 맹세여

다시없을

사람

마침표 없는 문장을 가득히 눌러 안고

안으로 외치는 말


가지 마소 가지 마소

나를 버리고 가지 마소

이내 이런 기다림은

멀리멀리 저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두고 가신 임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소

아라리요 아라리야

....

- 심규선의 <아라리> 中


그는 지금 저물어가고 있다. 생을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떤 죽음일지는 모르지만, 그의 죽음은 다른 젊은이들에 앞서서 시시각각 분명한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 그가 느끼는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진심은 어떤 것일까.



평사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연을 맺고 든든한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두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궂은 농사일을 직접 해야 했지만, 그래도 글을 배웠고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도 받으며 살다가. 귀한 아들 셋을 차례로 잃고,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마저도 자신의 손으로 묻어야 했던 사람. 그저 대를 잇겠다는 일념에 전국을 누비고 다녔고, 결국 어진 한경이를 찾아내서, “절손”을 막아 내 할 일을 다 했다. 진심으로 흡족해했던 사람. 나라를 잃기 전까지 그가 꿈꿨을 미래는, 그가 자신의 부모님을 기꺼이 봉양하였던 것처럼, 양자로 들인 아들 내외와 함께 농사지으며, 새로 태어나는 손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때마다 철마다 굳건히 지켜오던 전통과 인간의 도리 속에서 평화로이 살다가 고향 산천의 품에 안겨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나라는 사라졌고, 그 나라를 되찾아 보려고 목숨을 걸고 몸부림치다가 고향마저 떠나야 했고, 시베리아의 칼바람이 몰아치는 낯선 땅 용정에서, 마음에도 차지 않는 서희와 길상의 호의에 기대에 구차한 목숨을 이어가고 있으니. 눈만 감으면 선명하게 펼쳐질 고향의 산천이 얼마나 그립고 또 사무치겠는가. 내 고향, 내 나라를 향한 나의 문장에 이렇게 마침표를 찍을 수는 없는데...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큰 역사의 물줄기는 바꿀 수가 없으니 이를 어찌할까,

까마득히 멀어져만 가는 “내 나라와 내 나라가 품고 있던 도리의 시대”를 바라보며 애타하는 김훈장의 마음, 그 절박한 진심이 <아라리>를 타고 나에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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