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특별한 인연-강포수와 귀녀 그리고 아기

-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3권.

by 청록펜

탐욕스러운 작당모의가 만천하에 드러난 평산, 칠성, 귀녀는 감옥에 갇힙니다. 평산과 칠성은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했고, 귀녀는 태중의 아이를 해산할 때까지 형 집행이 연기되었습니다. 그런 귀녀에게 강포수가 찾아옵니다.

최치수와 귀녀의 관계를 오해하여 마음이 산산조각 난 채 강원도로 올라가, 평소 지키던 절도를 잃고 거친 사냥질을 하던 강포수는, 새끼 밴 암사슴까지 쓰러뜨리고 나서야 이성을 되찾고 지리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비로소 최참판댁에서 벌어진 끔찍한 소식과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그는 황급히 수중에 가진 것을 모두 털어 귀녀의 옥바라지를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던 자연인 강포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단 한 사람. 산천을 마음껏 쏘다니는 자유를 기꺼이 버리고, “매이 살고” 싶게 만들었던 특별한 여인. 단 한번 품에 안아보았던 귀하디 귀한 나의 여자, 귀녀.

재물이 뭐라고… 어찌 그리 몹쓸 짓을 했느냐고… 귀녀를 탓해 보기도 했지만, 끝끝내 이해할 수 없을 그녀를, 강포수는 소처럼 우직하게 아껴주고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애씁니다. 감옥에 갇힌 귀녀는 그런 그의 진심을 단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향해 나날이 행패만 늘어갔건만, 강포수는 귀녀를 지키기 위해 그가 가진 재물도, 체면도, 염치도 망설임 없이 포기합니다.



강포수의 조건 없는 사랑을 끝없이 받고서야 귀녀는 스스로에게 질문해 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그에게 나는 왜 자꾸 행패를 부리나?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지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무엇일까?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미리 젖어미를 정해두느라 며칠 만에 찾아온 강포수의 쇠가죽 겉이 단단한 손을, 창살 너머로 거머잡으며, 귀녀는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눈물 어린 말들을 꺼냅니다.

잘못했다고, 후회스럽다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진심으로 원한 건… (나를 이토록 귀하게 여겨주는) 당신이었고, 포전을 쪼고 살더라도, 당신의 아낙이 되어, 남은 생을 당신과 함께 자식 낳으며 살아가는 것이,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라고.


처음으로 그의 진심을 받아주는 귀녀를, 따뜻하게 한번 안아주지도 못한 채, 감옥 밖으로 나와야 했던 강포수는 담벼락에 머리를 처박고 짐승처럼 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귀녀는 옥에서 아들을 낳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귀녀가 낳은, 귀녀를 꼭 닮았을 그 아들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내 편한 대로 사는 게 제일 좋았던 사람, “매이 사는” 걸 그렇게도 싫어했던 강포수가 안고 사라집니다.


강포수로 인해 아기는 가냘픈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아기로 인해 그는 아마도 영원히 귀녀에게 매여 있게 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토지] '쓸다'로 펼쳐지는 다섯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