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비열함 - 조준구

- 박경리 작가님의 <토지> 속 인물들. 토지 3권.

by 청록펜

역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조준구는 살아남습니다.

그는 역병(콜레라)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지 않았고, 평사리에서 버티며 역병이 지나가기만을... 더 나아가 역병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윤씨부인을 데려가기를 기다리며 제 아내 홍씨와 함께 뒷채에서 두문불출하였습니다.

마침내 윤씨부인까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일개 식객인 주제에 마치 최참판댁의 당주라도 된 양 기세를 올립니다. 진정한 주인인 서희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연소하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최참판댁의 재산과 사람들을 제 마음대로 처리합니다.


조준구는 삼수를 오른팔로 삼습니다. 역병에 이어 기근이 온 마을을 휩쓸고 있는 엄중한 시기에 마을 사정을 훤히 아는 삼수는 이리저리 편을 나눠서 조준구의 편에 설 만한 사람들에게만 구휼미를 나눠줍니다. 최참판댁에 의리를 지킬만한 사람들은 구휼미를 받지 못했고, 그 와중에 누구도 챙겨주지 않았던 서서방댁은 그만… 굶어 죽고 맙니다.


직접 농작물을 경작하는 이들은 식량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땅의 주인일 뿐 농사일에 손 하나 대지 않는 최참판댁 고방에는 양식이 그득합니다.

윤씨부인과 김서방이 살아있었다면, 당연히 평사리의 농민들을 살리는 데 사용되었을 그 귀한 양식들은, 조준구와 삼수의 손을 통해 차곡차곡 빼돌려져 평사리에서 조준구를 위한 무리를 짓고, 서울 교동에 오십여 칸이 넘는 큰 집을 마련하고, 온갖 호화스러운 것들로 그 집을 채우고, 조준구의 앞날을 위해 높은 사람들을 접대하는 데 흥청망청 사용됩니다.


최참판댁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김평산을 충동질하여 최치수를 없애는 간악함, 역병에 대처 할 지식을 갖고 있었으나 제 한 몸만 지키며 다른 이들에게 닥쳐온 재난을 기회로 여기는 영악함, 기근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최참판댁 재물로 제 당을 만드는 파렴치함, 제 아내 홍씨 앞에서는 쩔쩔매는 한심함, 마을 사람들이 고방 문을 부수러 왔을 때 삼수를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어 몸을 사리는 비열함은 조준구가 어떤 자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지금은 조준구의 꾀대로 일들이 술술 풀려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합니다.

그러나 더딘듯해 보여도 시간의 흐름은 옳은 쪽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과연 조준구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요?

작가의 이전글[토지] 완충재 - 김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