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의 거장 칼 융 본인 자신의 내면의 심층분석
다소 원색적인 표지색인 칼융저작의 한국판 '레드북'은 실제 칼융이 빨간색 가죽양장을 책 덮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유작이자만 칼융이 작고하고서도 한참 후에나 발간했다고 하는데요. 융의 심리학을 '분석 심리학'이라고 하죠.
'레드북'은 칼융 자신의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여 펼친 자신의 분석 심리학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이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서사하는 통상의 자서전과는 다른 특이한 접근 방식의 책인데요. 자신의 내면세계를 꿈과 그림 글로써 표현한 것이지요. 현실세계의 자서전이 아닌 내면세계의 자서전인 셈이지요.
융 자신의 꿈과 심리학 이론을 명료하게 연결해서 분석했으면 이해가 빠르겠지만, 꿈의 조각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대부분이라 칼융이 추구하는 기본 이론을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을 읽는다면 무슨 내용인지 맥락을 잡기 힘들게 모호하고 중구난방으로 쓰여 있습니다. 칼융 자체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인지 자신의 내면세계를 문학적으로 기술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이는 책입니다.
책에 함께 소개되어 있는 칼융이 직접 그린 그림도 본인의 무의식의 세계를 형상화한 기이한 그림이 대부분인데요. 칼융은 심리학의 대가이다 의사이다라는 사전 정보를 걷어내고 책을 읽는다면 그냥 정신분열환자의 글이라고 느껴질 만큼 혼란스러운 글들이 많습니다. 작년과 금년에 걸쳐 칼융의 기본 전집을 읽고 다시 읽기 시작한 레드북이었는데요. 처음에 읽었을 때보다는 칼융의 정신세계를 좀 더 밀접하게 들여다보는 느낌이긴 합니다.
책은 총 2권, 1권은 11장, 2권은 21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추가로 '정밀검증'이란 챕터가 있네요. 총 453 페이지 분량입니다. 이해하려고 읽지 않으면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이해하려고 읽으려면 끝을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칼융은 1875년에 태어나서 1961년에 생을 마감했는데요. 눈치 빠르신 분은 아실 겁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 대공황, 냉전 등 격변의 시기를 온몸으로 버틴 삶이라는 사실을요. 그 시절 정신과의사와 사상가로 살아갔다니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삶이었구나를 추측해 봅니다.
제1권 제1장 영혼의 재발견
1913년 10월 칼융은 꿈에서 홍수 환상을 경험합니다. 당시 40대인 칼융은 당시 명예, 부, 지식 등 모든 것을 갖게 되는 행복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오히려 더 이상 추구하려는 행복의 조건이 없어지자 공포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때 홍수 환상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이런 경험은 자신의 내면인 영혼과 정면으로 마주 하는 계기가 됩니다. 40대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느낌이라니 저는 이 부분이 부러웠지만, 칼융은 돈, 명예 등 욕망의 추구가 종결되었기 때문에 진정한 자기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20쪽
그는 욕망 자체에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욕망의 대상들 안에서는 자신의 영혼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욕망을 알고 있고 그의 욕망이 그를 사로잡고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는 자신의 영혼이 있는 곳을 찾아낼 것이다. 이유는 그의 욕망이 곧 그의 영혼의 이미지고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들이여,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현명한 일이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가슴에 용들과 악마들을 기르게 되리라.
제1권 제2장 영혼과 신
칼융의 내면 깊은 곳 영혼을 '아이', '처녀'로 표현하고 있으며, 칼융은 내면의 나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형태로 쓰여 있죠. 영혼을 만나는 과정이 정신분열증 증상처럼 보이긴 해요. 칼융은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의 그림자 반대되는 성향, 무너진 균형 등으로 분석하곤 했는데요. 칼융이 성인 남자인 시절 꾸던 꿈을 형상화한 글로 당시 자신의 처지와 반대되는 상황인 '아이', 여성인 '처녀'로 무의식의 세계가 형성되었다고 전제하는 것 같습니다. 연결선상에서 인간의 영혼은 선-악이 공존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악은 무조건 유해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를 형성하는 한 부분이라는 것이지요.
24쪽
당신의 이해력을 완벽하게 다듬으려면, 당신의 가슴이 선하고 동시에 악하다는 점을 늘 생각하라...
깊은 곳의 정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가르쳤다. "나는 어떤 아이의 하인이야.".. 나의 영혼 안에 있는 나의 신도 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당신들이 소년들이라면, 당산들의 신은 여자야.
당신들이 여자들이라면, 당신들의 신은 소년이야.
당신들이 남자들이라면, 당신들의 신은 처녀야.
신은 당신들이 아닌 곳에 있어.
그래도 누구나 신을 하나 갖는 것이 현명해.
제1권 제3장 영혼의 쓸모에 대하여
칼융의 무의식의 영혼을 만나는 과정이 계속됩니다.
28쪽
무질서와 무의미는 질서와 의미의 어머니이다... 만일 당신이 질서와 카오스를 서로 결혼시킨다면, 당신은 신성한 아이를, 의미와 무의미를 뛰어넘는 궁극의 의미를 낳을 것이다.
29쪽
만약에 당신이 자신의 영혼의 주인이라고 믿고 있다면, 영혼의 하인이 되도록 하라, 만약에 당신이 자신의 영혼의 하인이라면, 당신 자신이 영혼의 주인이 되도록 하라, 이유는 당신의 영혼이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당신의 첫 번째 걸음이 되어야 한다.
제1권 제4장 사막
칼융은 사막의 꿈을 꿉니다. 자기는 사막과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막의 본질은 고독과 고통에 있다고 합니다. 칼융뿐만 아니라 나의 영혼과 마주하는 일은 나 혼자 만이 가능한 일이니 인류는 자신의 영혼을 마주하는 일은 고독하며 고통스러운 사막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고독한 사막과 같은 영혼을 마주하는 장소 칼융의 영혼은 이런 말을 건넵니다. 그리고 영혼을 마주한 칼융은 긴 대화 끝에 "나의 영혼이 그림자 같은 존재에서 깨어나 자신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리하여 나는 경멸을 극복했다." "경멸을 극복하고 나자, 나는 나의 영혼 가까이에 있었고 나의 영혼은 나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나는 곧 사막이 초록색으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의 영혼은 이렇게 구원받습니다.
35쪽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이 인간 존재라는 점을, 허약하고 때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그런 인간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를 좋아해. 그러나 나의 영혼이 말했다. "인간적이라는 표현을 그런 뜻으로 받아들이는 거니?" 나의 영혼이여, 그대가 엄격하긴 하지만 그대의 말이 옳아. 우리는 여전히 삶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지 않고 있어. 우리는 삶의 법칙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성장해야 해. 우리는 의도로 스스로를 묶고 있어. 의도가 곧 한계라는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말이다. 맞아, 의도야말로 생명의 배제나 마찬가지야. 우리는 의도로 어둠을 맑힐 수 있다고, 또 그런 식으로 빛 그 너머를 목표로 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어. 그 빛이 어디서 우리에게로 오는지, 우리가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지?
.. 너는 너의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책을 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가?.. 그대의 진리는 엄격해. 난 그대 앞에 나의 허영을 내려놓고 싶어. 허영이 나의 눈을 멀게 만들기 때문이야.
36쪽
이 시대의 정신은 모든 시대 정신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대단히 영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지혜란 것은 그냥 단순한 것이 아니라 때 묻지 않아서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영리한 사람은 지혜를 조롱한다. 조롱이 영리한 사람의 무기이니까. 영리한 사람은 독이 묻은 예리한 무기를 사용한다. 이유는 그가 순박한 지혜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영리한 사람이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사막에서만 자신의 때 묻지 않은 끔찍한 면을 자각하게 되지만, 그것을 인정하길 두려워한다. 그것이 우리가 냉소적인 존재가 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조롱은 때 묻지 않은 순박함까지 닿지는 못한다. 조롱은 조롱하는 사람 위로 떨어진다. 듣고 대답할 사람이 전혀 없는 사막에서, 조롱하는 사람은 자신의 조롱에 질식할 수 있다. 영리한 사람일수록,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은 그만큼 더 멍청해진다. 더없이 영리한 사람은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이라는 측면을 보면 바보나 다름없다. 우리는 영리힘을 키우는 것으로는 이 시대의 정신의 영리함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영리함이 가장 혐오하는 것, 즉 때 문지 않은 순박함을 받아들이는 경우에 이 시대의 정신의 영리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 묻지 않은 순박함 속으로 떨어져서 부자연스러운 바보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차라리 영리한 바보가 될 것이다. 그것은 궁극의 의미로 이어진다. 영리함은 의도와 짝을 이룬다. 때 묻지 않은 순박함은 의도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른다. 영리함은 세상을 정복하지만 때 문지 않은 순박함은 영혼을 정복한다. 그러므로 영혼과 함께하기 위해서 정신의 빈곤을 맹세하라.
제1권 제5장 미래의 지옥으로 하강
지옥으로 가는 꿈을 꾸는 융. 내면은 아파 보입니다. 일관되게 꿈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분석하는 융인데요.
41쪽
삶은 사건들에서 오지 않고 우리들에게서 온다. 우리의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사건 바깥쪽에서 보는 사람은 언제나 이미 일어난 사건만을 보게 되며, 사건이 언제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쪽에서부터 보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것이 새롭다는 것을 안다. 일어나는 사건들은 언제나 똑같다. 그러나 인간의 창의적 깊이는 언제나 똑같지 않다. 사건들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사건들은 오직 우리의 안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사건들의 의미를 창조한다. 그 의미는 언제나 인위적이며 옛날에도 언제나 인위적이었다. 우리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내면에서 사건들의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다가올 것의 길이 분명해지고, 우리의 삶은 다시 흐를 수 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당신 자신으로부터, 말하자면 사건의 의미로부터 나온다. 사건들의 의미는 그것들의 특별한 의미가 아니다. 이 의미는 학술 서적들 안에 존재한다. 사건들은 전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사건들의 의미는 당신이 창조하는 구원의 길이다. 사건들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 창조하는 삶의 가능성에서 온다. 사건들의 의미는 이 세상에 대한 지배력이며, 이 세상에서 당신의 영혼이 내세우는 단언이다. 사건들의 이 의미가 궁극의 의미이다. 궁극의 의미는 사건들에 있지도 않고 영혼에 있지도 않다. 그것은 사건들과 영혼 사이에 서 있는 신이며, 삶의 매개자이며, 길이며, 다리이며, 건너감이다.
제1권 제6장 정신의분리
융이 자신의 영혼과 다투는 장면이 이뤄지는데요. 사막과 같은 악마와 같은 영혼과 다투면서 괴로워 하죠. 이러한 감정은 개인의 무의식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인류의 보편적인 모습인 것처럼 시사합니다. 세계대전이 발발한 원인이라고 봅니다.
49쪽
어느 한 인간의 살해는 곧 독 묻은 화살이 되었으며, 이 화살은 인간들의 심장으로 날아가 무시무시한 전쟁에 불을 붙였다. 이 살해는 무능이 의지를 향해 터뜨린 분노였으며, 유다의 배신 같은 것이었다. 사람이 자기가 나서서 하지는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가 저질러주었으면하고 바라는 그런 배신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져 줄 존재를 찾고 있다.
지나치게 오래된 것은 모두 사악해진다.
제1권 제7장 영웅살해
융은 독일의 영웅 지크프리트를 살해하는 기이한 꿈을 꿉니다.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50쪽
최고의 진리는 부조리와 똑같다.
.. 신이 늙으면, 그림자가 되고 난센스가 되어 아래로 내려간다. 가장 위대한 진리가 가장 큰 거짓말이 되고, 가장 밝은 낮이 가장 어두운 밤이 된다. 낮이 밤을 필요로 하고 밤이 낮을 필요로 하듯이, 의미도 부조리를 필요로 하고 부조리도 의미를 필요로 한다.낮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밤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실체는 낮과 밤이다. 그렇듯 현실은 의미와 부조리이다… 그래서 의미는 하나의 순간이며 부조리에서 부조리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도기이다. 부조리도 하나의 순간이며 의미에서 의미로 넘어가는 하나의 과도기이다.
제1권 제8장 신의잉태
신이란? 무엇인가? 융이 말하는 신은 선하고 절대절명함과는 거리가 있어요. 지옥에 대해서도 특이한 견해를 피력합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천국과 같다가도 지옥같이 느껴지기도 하죠. 언제나 그 경계에 있는 모호성은 완벽할 것 같은 신과 악마, 천국과 지옥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죠.
융은 신은 나의 바깥에서도 내면에서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은 누구에나 존재하는 것이죠. 바깥에 신이 있을 때 인간은 박탈감을 느끼겠죠. 영웅을 찾고 완벽한 존재를 모방하려 합니다.
내 속에 신과 동일화 될 때 더이상 영웅은 필요 없습니다. 알쏭달쏭한 부분입니다.
신이 자신 안으로 들어올 때가 더 좋은 느낌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당신의 자기와 포옹한다면, 그때 당신에게 세상이 차갑고 텅 빈 것처럼 보알 것이다. 다가오는 신은 이 공백 속으로 들어온다.’
54쪽
신성한 아이가 끔찍한 모호함으로부터, 말하자면 혐오스러움과 아름다움, 악과 선, 우스꽝스러움과 진지함, 병과 건강, 비인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신성한 것과 신성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나에게 다가왔다…새로운 신은 상대적인 것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나는 이해했다. 만약에 신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이고 선이라면, 그런 존재가 어떻게 아름답고 혐오스러우며, 선하고 사악하며, 우스꽝스럽고 진지하며, 인간적이고 비인간적인 삶의 풍성함을 두루 아우를 수 있겠는가?
57쪽
지옥은 당신이 원하지 않는 온갖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으로 해야 하는 때이다. 지옥은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임과 동시에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때이다. 지옥은 당신 스스로 계획한 진지한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친절한 모든 것이 잔인하기도 하다는 것을, 유쾌한 모든 것이 고약하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때이다.
그러나 가장 깊은 지옥은 당신이 지옥이 전혀 지옥이 아니고 유쾌한 천국이기도 하다는 것을, 그 자체로는 천국은 아니지만 이런 점에서는 지옥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 때이다. 그것은 신의 모호성이다.
제1권 제9장 신비스런 조우
융은 꿈에서 성경의 인물인 예언자 엘리야와 그이 딸 살로메와 조우합니다. 살로메는 뜬금없이 융에게 사랑고백을 하는데요. 살로메는 성경에서 피에 굶주린 공포의 악마같은 형상인가 봅니다. 융이 무척 당황하고 무서워해요. 융은 요상한 꿈으로 혼란 카오스를 경험합니다. 이성과 쾌락의 대극을 경험한 듯이 말이죠.
“쾌락은 자신이 붙잡는 형태를 사랑하고 자신이 붙잡지 못하는 형태는 파괴한다. 미리 보는 사람은 예언자이지만, 쾌락은 맹목적이다. 쾌락은 예언을 못하지만 자신이 건드리는 것을 욕망한다. 미리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하며, 따라서 감동을 줄 수 있다. .. 예견도 쾌락보다 나이가 더 많지 않다. 둘 다 똑같이 늙었으며, 자연 속애서 하나이다.“
쾌락과 예언은 동시에 존재하며,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하네요. 대극적인 요소가 아니라 공존하고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지요.
“당신이 자신이 반대하고 있는 원리를 끌어안을 때, 바로 그때 당신은 완전함을 말하주는 어떤 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68쪽
생각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쾌락을 받아들이고 느끼길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길. 그것이 곧 사람을 제 길로 안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