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의 3대 천왕 칼 융 내면의 자서전
제1권 제10장 가르침
다시 칼융은 꿈속에서 예언자 엘리야와 그의 딸 살로메를 만납니다. 그리고 기이한 환상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종전 꿈에서는 살로메가 사랑 고백을 하더니 이번에는 자신은 칼융의 여동생이며 우리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말합니다. 족보를 잘 따져봐야 하겠지만 연인이었다, 동생이었다, 아버지 었다 왔다 갔다 하는 통에 개족보 아닌가 싶습니다. (꿈이니까요.) 하지만 기이한 환상을 통해 칼 융 자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분석하는데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살로메라는 여인은 해롯왕을 춤으로 매혹하고 그 대가로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다고 하는데요. 댕강 잘린 요한의 머리와 살로메를 그린 그림이 찾아보니 많습니다. 오페라도 있고요. 칼융이 꿈에서 살로메가 사랑고백을 하고 자신의 여동생이라고 하자 기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그럼 엘리야는 살로메의 아버지인가?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예언자이며, 기적을 행하는 성스러운 인물로 살로메와는 결이 다른 사람이지요. 아래 그림은 좋은 일을 많이 한 엘리야가 승천하는 그림입니다.
칼 융은 얼토당토하게도 살로메를 만나고 그의 아버지가 엘리야라 하고, 갑자기 살로메는 여동생으로 둔갑하고, 마리아가 어머니가 되는 이상한 조합의 꿈을 꿉니다. 급기야 살로메가 신의 아들을 낳기까지 하는데요. 도대체 이 꿈은 칼융의 어떤 갈망을 시사하는 걸까요? 살로메는 쾌락과 욕망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칼융은 자신을 사랑하는 살로메가 자신을 악으로 느껴서인지, 선한 자로 느껴서인지 갈등하게 되는데요. 스스로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죠.
"자신의 갈망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정직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갈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것을 알기가 불가능하거나 아는 것이 매우 괴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갈망은 삶의 길이다. 만약에 당신이 자신의 갈망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의 길을 따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낯선 길을 걷게 된다. 그러면 당신은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엉뚱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만약에 당신이 자신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당신 자신의 삶과 엉뚱한 삶을 맞바꾸는 것은 어리석은 짓에서 그치지 않으며, 위선적인 게임을 벌이는 꼴이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당신 자신을 속이면서 단지 그렇게 사는 척할 뿐이다. 이는 당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당신 자신 뿐이기 때문이다."(73쪽)
"만약에 당신이 당신의 자기를 포기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자기를 살게 되고, 그럼으로써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기적인 존재가 되고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그런 삶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원순이 같은 모방일 뿐이다. 당신은 원숭이 같은 모방 욕구에 굴복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유는 원숭이가 원숭이 비슷한 것을 자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원숭이로 바꿔 놓게 된다. 상호 모방을 통해서, 당신은 평균적인 기대에 부응하면서 산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 모방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두를 위한 영웅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 영웅은 살해되었다. 이유는 우리 모두가 그를 흉내 냈기 때문이다. 당신이 흉내 내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당신은 알고 있는가? 외로움과 패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73쪽)
앞서 칼융이 영웅을 살해하는 장면에 대한 해석이기도 합니다. 자기로 살기 위해 나의 것이 아닌 영웅을 거세해야 하는 것이죠. 확 와닿는 말인데요. 신의 어머니로서의 살로메의 꿈은 신의 이미지의 변형을 의미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성한 신에 대한 반기를 드는 모습이네요. 아니면 또 다른 내적 자유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는 신성한 예언자, 살로메는 쾌락과 사랑을 상징 이 둘이 부녀지간이 되는 꿈 그 살로메는 칼융을 사랑한다. 이는 예견과 사랑의 결합을 의미하고 새로운 창조적인 신의 모습, 자유 의지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융이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 얼마나 공감하고 있나요?
제1권 제11장 결심
엘리야와 살로메와 조우하는 환상 같은 꿈은 계속 이어집니다. 엘리야는 신성한 예견을 살로메는 쾌락과 사랑의 의미하죠. 여기에 검은 뱀과 흰 뱀도 같이 어우러져 예견과 쾌락을 같이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조건은 두 마리의 뱀 사이의 싸움을 통해 상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왼쪽은 낮이고, 오른쪽은 밤이다. 사랑의 영역은 밝고, 예견의 영역은 어둡다. 두 가지 원리는 서로를 엄격히 구분하며 심지어 서로에게 적대적이고 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두 원리의 악마적인 본질을 나타낸다. 나는 이 싸움에서 태양과 검은색 뱀이 싸우던 그 환상이 반복되는 것을 확인한다."(80쪽)
"그때 사랑의 빛은 완전히 꺼지고, 피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대 전쟁이었다. 그러나 깊은 곳의 정신은 이 투쟁이 모든 인간의 본성에 있는 어떤 갈등으로 이해되길 바라고 있다. 그 영웅이 죽은 뒤로 우리의 삶의 충동이 더 이상 아무것도 모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삶의 충동은 모든 사람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깊은 곳의 힘들 사이에 무시무시한 갈등을 조장했다. 예견은 단일성이고, 사랑은 연대다. 예견과 사랑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도 둘은 서로를 죽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그런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81쪽)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고 다투는 이유가 타인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닌 바로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갈등은 나에게 비롯된 일이라는 것이죠. 당시에 발발한 세계대전도 인류 내면의 양극화된 선과 악의 갈등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나는 모든 것에서 나 자신을 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나 자신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의 밖에서 나 자신을 추구하길 원하지 않고 나의 내면에서만 나 자신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나 자신을 파악하길 원했으며, 이어서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다시 길을 계속 걷다가 그 신비로 떨어졌다."
하지만 갈등하는 융의 모습은 그때 당시 사상가로 살았던 고뇌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융은 금번 챕터에서 스스로를 예수그리스도라 칭하기도 합니다. 신의 경지에서 전쟁을 예언하기도 하지요. 점점 갈수록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