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직막, 광기 의학자 칼융의 이야기
제2권 제16장 세번째 밤
"새로운 고통과 새로운 구원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가 자신이 곧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알았듯이, 나는 카오스가 인간들을 덮쳐야 한다는 것을, 또 우리를 바다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얇은 벽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부수는 인간들의 손이 바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유는 이것이 우리의 길이고 우리의 진리이고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260쪽)
"우리는 자신의 가장 낮은 것을 두려워한다. 이유는 사람이 소유하지 않고 이쓴 그것이 영원히 카오스와 결합하고 있으면서 카오승의 그 신비한 성쇠에 가담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안에 있는 가장 낮은 것을, 정확히 말해 깊은 곳에서 붉게 타고 있는 태양을 받아들이고, 따라서 카오스의 혼동에 희생이 될 때, 위쪽에서 빛을 발하는 태양도 떠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높은 것을 추구하는 자는 가장 깊은 곳을 발견한다."(263쪽)
"방향에 관한 구별을 제외한 모든 구별을 지워버리는 것이 당신의 구원에 꼭 필요하다. 그러면 당신은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의 오랜 저주로부터 풀려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평가에따라 선과 악을 구분한 다음에 선만을 고무하고 악을 거부했기 때문에, 당신의 뿌리는 깊은 곳의 시커먼 영양분을 더 이상 빨아들이지 못하게 되었고 당신의 나무는 병들고 시들게 되었다."(264쪽)
“나의 말은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이유는 그것이 성장하고 있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다.”(266쪽)
제2권 제17장 네번째 밤
“당신은 당신의 내면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을 현명하다고 하지도 못하고 어리석다고 하지도 못하며, 선하다거나 사악하다고 하지 뭇한다. 왜냐하면 그것의 본질이 철저히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남자임과 동시에 여자이며, 성별도 아직 성숙하지 않았으며, 해석과 오해를 많이 낳는 반면에 의미는 빈약하면서도 풍성하다.“
(275쪽)
제2권 제18장 세명의 예언자들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광대한 것 중에서 큰 부분을 정복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걸 나는 알아. 그보다는 작은 것을 정복하는 게 더 낫지. 잘 보살핀 작은 정원이 제대로 보살피지 않은 큰 정원보다 나아. 두 정원 모두 그 무한한 것에 비하면 똑같이 작지만, 보살핌의 손길은 달라”(283쪽)
영혼은 융에게 세개의 선물을 선사합니다. 전쟁의 비참함, 마법의 어둠, 종교의 선물 입니다. 모두 카오스, 혼란을 상징한다고 하는데요. 세가지 선물은 모두 혼란, 카오스를 의미 한다고 합니다. 자산의 영혼의 준 선물을 가슴에 묻어둔 채 융은 내면의 정원을 작은 가위로 정리하기 시작하는 데요.
"나는 끝없는 성장 속에 완전히 묻혀 있다. 깊은 곳은 결코 마르지 않는다. 그곳은 모든 것을 준다.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만큼 좋다. 작은 것을 간직하라. 그러면 당신은 무엇인가를 가진 존재가 될 것이다. 당신의 야망과 탐욕을 인식하고 알거나, 당신이 열망을 키우고 배양하거나, 당신의 열망을 해석하고 이용하거나, 당신의 열망을 지배하거나, 당신의 열망에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다,"(286쪽)
나 자신을 부정하는 일은 스스로를 구속적인 삶, 노예같은 삶으로 전락하는 길이라도 합니다. 작은 정원을 열심히 가꾸어야 겠어요. 내가 나로 성장하기위해 작은 것을 소중하는 일을 게을리 하면 안되겠지요.
제2권 제19장 마법의 선물
영혼과 마법의 지팡이를 쥐고 있으면 인간의 본성, 위안을 희생을 댓가로 치뤄야 한다고 합니다. 신비로운 마법은 불운과 권력을 가져다 준다고 하죠. 지팡이를 쥐고 있으면 자신의 본질을 잃게되는 것이죠. 지팡이는 미래를 암시하기도 하며 내면의 어두움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손은 빛을 발하는 무엇인가를 꼭 쥐고 있으며, 그의 그림자가 점점 커져 하늘에 닿았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당신 자신을 버리고 온갖 가능성 쪽으로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끝없이 변화하는 것의 신비를 당신 스스로 훔칠 수 있다면, 어떤 죄라도 무릅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길은 끝이 없다."(302쪽)
제2권 제20장 십자가의 길
자기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크나큰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라고 융은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타인을 사랑하는 쪽을 택하고, 자신과 싸움에서 어리석을 짓을 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내면의 가장 낯은 무능으로 십자가에 못받은 것으로 영혼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융은 자신의 심연을 중시하면서도 이를 마주하는 것은 쉽지도 고통스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높은 곳을 이루고자 하는 성공은 아래의 자신을 재물로 바치는 댓가를 치루고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깊이 공감이 되는 말입니다. 권력욕의 포기 등 인간성을 깨우는 자각은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눈을 뜨고, 자신의 길을 보고, 자기 자신을 적으로 여기고, 자신의 진정한 성공을 알 수 있기까지, 아주 많은 피가 흘려져야 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당신의 이웃에 피해를 입히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305쪽)
탐욕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동인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은 내적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마법을 갈구한다고 합니다.
제2권 제21장 마법사
융은 마법사 필레몬을 만나러 갑니다. 인간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마법에 대해서 묻는데요. 마법은 비이성적이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이성적인 것에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혼란을 주는 마법의 희생량은 오로지 나일 수 밖에 없는 거죠. 이성이 존재하는 하는 세상에서 마법은 필요 없는 것이지만 내면의 카오스를 연 사람에게는 내면의 마법의 세상이 열리고 맙니다. 세상은 비이성적인 것이 많고 이것은 내면의 마법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말합니다. 마법적인 관행이 필요한 순간이죠.
나 자신의 행복과 나의 다른 반쪽의 행복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고독과 고립은 삶의 불가피한 조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은 충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 정지나 다름없는 삶의 느림도 불가피하다.(3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