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할지라도 자신을 통해서만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제2권 제11장 알을열다
꿈에서 융은 알에서 깨어난 완전하게 치유된 신 이즈두바르를 만납니다. 태양과 같은 완벽한 신의 존재는 인간을 무능력하게 하고 무력하게 만들고, 인간에게는 오히려 병악한 신이 필요하다고 하는데요. 신의 대한 융의 독특한 철학이 금번 장에도 이어집니다.
"신이 성숙하여 모든 권력을 다 잡을 때, 인간의 본성에 무엇이 남는가? 무능한 모든 것, 무력한 모든 것, 영원이 통속적인 모든 것, 악의적이고 불길한 모든 것, 거부당하다 점점 작아져 절멸될 모든 것, 부조리한 모든 것밖에 남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어둠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신이 고통을 겪는다. 다라서 인간들은 악으로 고통을 겪는 한 고통받는 신을 가져야 한다. 악으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곧 당신이 여전히 악을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당신은 여전히 뭔가를 얻길 바라고 있지만, 당신은 자신이 여전히 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 면밀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199쪽)
신과 악은 모두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 충만과 공백의 감정처럼 이 둘은 균형을 이루고 받아들여야 한다. 칼융은 모호하고도 왔다 갔다 하는 언어로 시종일관 강조합니다. 알쏭달쏭하네요. 중도를 지키고 균형을 유지한다는 일이 신중함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나는 균형을 유지하며 평온한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가 말이지요. 때로는 완벽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마치 악으로 대변되는 것 같네요.
"당신이 악으로 고통을 겪는 이유는 악이 당신에게 은밀한 쾌락을 즐기게 하고, 또 악이 미지의 쾌락을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한, 당신은 당신은 신과 당신 자신에게 동정심을 품는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의 지옥을 용서하게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신의 고통을 연장시킨다."(199쪽)
"당신의 영혼은 영적 세계 안에 있는 당신 자신의 자기이다. 그러나 정신들의 거주지로서 영적 세계는 또한 하나의 외적 세계 안에 있는 당신 자신의 자기이다. 그러나 정신들의 거주지로서 영적 세계는 또한 하나의 외적 세계이다. 당신이 눈에 보이는 세계 안에서 홀로 있지 않고 당신에게 속하면서 당신에게만 복종하는 대상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똑같이, 당신은 당신에게 속하면서 당신에게만 복종하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당신이 눈에 보이는 세계 안에서 당신의 것도 아니고 당신에게 복종하지도 않는 사물들과 존재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 똑같이, 당신은 영적인 세계에서도 당신의 것도 아니고 당신에게 복종하지도 않는 생각들과 생각의 존재들에게 둘러싸여 있다."(203쪽)
제2권 제12장 지옥
융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환상을 경험합니다.
지옥에서 마주하는 악은 완결무결한 신을 갈망할수록 인간의 내면 깊은 곳으로 차지하고 맙니다.
악도 신과 같이 우리에 영혼에 필요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2권 제13장 제물 살해
융은 환상 속에서 한 소녀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머리가 없는 피투성이 인 채의 끔찍한 형상인데요. 융은 소녀의 영혼과 대화를 나눕니다. 소녀는 융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먹어달라는 부탁을 하죠. 융이 죽은 소녀의 부탁을 들어주자 소녀는 자신이 융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제물로 바쳐진 소녀. 융은 제물로 바쳐진 소녀를 통해서 융은 모종의 구원 의식을 치렀다고 하는데요. 이 같은 일은 고대인들의 제물 의식에서도 보이는 행위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봉헌의 의미, 포도주와 빵을 먹는 행위도 살점을 먹고 재생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융은 이 같은 신성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나 자신의 자기이고, 나 자신 위에 세워진 나 자신의 삶이다. 신은 나의 삶을 원한다. 신은 나와 함께 가고, 나와 함께 테이블에 앉고, 나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다. 무엇보다도 신은 항상 현실 속에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신을 볼 낯이 없다. 나는 신성하길 원하지 않고 합리적이길 원한다. 신성은 나에게 비합리적인 광기처럼 보인다. 나는 신성을, 의미 있는 나의 인간적인 활동을 부조리하게 방해하는 것으로 여기며 혐오한다. 신성은 나의 삶의 정상적인 진로에 교묘하게 끼어든, 꼴사나운 질병처럼 보인다."(216쪽)
제2권 제14장 신성한 어리석음
꿈에서 융은 도서관 사서를 만납니다. 융은 종교서를 찾지만 사서와 종교의 붕괴에 대한 담소를 나눕니다. 니체와 파우스트 등의 이야기를 하지요. 융은 모테 신앙이었지만, 기독교 사상에 반박하는 글도 많습니다. 신을 부정하기보다는 이성이 중시되는 시대에서 신과 종교에 대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면, 나는 누구도 모방하지 않고, 누구도 흉내 내지 않는 가운데 나의 길을 걸어야 한다. 또한 나는 더 이상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239쪽)
제2권 제15장 두 번째 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읽던 융은 종교적 광기가 있는 자로 오인받아 정신병동으로 쫓겨납니다. 융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쫒는 삶은 카오스 혼란과 같다는 철학적인 말을 주절이 주절이 뱉어냅니다. 인간이 신을 숭배하지만 동물의 종처럼 본능적으로 자신의 형재를 돌보는 삶에 충실해야 한다라고도하는데요. 균형을 이루는 곳, 혼란스러운 장소에서 융은 평온을 얻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모방, 재물 희생을 통한 영생, 무의미하다고 하지요. 카오스 내면에 세계에서 진실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는 눈에 드러나는 성공만을 이루길 원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보상받기를 원한다. 우리는 인간들에게 눈에 보이는 방향으로 이바지하지 않는 숨겨진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미쳤다고 생각한다. 삶의 필요가 우리로 하여금 직접 맛볼 수 있는 과일만을 좋아하도록 만들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세상의 표면에 매몰되어 지내는 사람들보다 죽은 자들의 유혹과 그릇된 영향으로 인한 고통을 더 심하게 받는 사람이 있는가?"(2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