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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Sep 01. 2021

더 이상 껍데기에 연연하지 않는다.

책, 그리고 나의 이야기


몇 년 전 도서관 독서모임에 나갔었다.

9시 아이들 등교시키고 후다닥 집안일을 끝낸 후 10시에 독서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이 있는 날이면 끝나자마자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지만, 빠지지 않고 꾸역꾸역 나갔다. 아이를 키우며 그림책만 읽다 보니 책 편식이 너무 심해져 내린 결정이었다. 어린 시절 책 읽기를 좋아했고, 성인이 되어서도 나름 책을 가까이하며 살았는데. 세상에나, 독서모임에 가서는 입도 뻥끗 못 하고 오는 날이 많았다. 듣도 보도 못한 작가와 작품들, 거침없이 오고 가는 다양한 배경지식들. 독서모임 날이 다가올 때면 마음이 수도 없이 왔다갔다 했다.

'여기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인가?'

'급한 일이 생겼다 하고 빠질까?'

'이번 달까지만 나온다 말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던가.

어느 날, 모임 중 '책 고르는 기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는 주로 책 표지를 보고 골라요."

내가 말한 책 선정 기준이었다.


"아.. 네.. 책 표지도 중요하죠."

대충 이런 반응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푹 하고 웃음이 난다. 그 시기에 주로 내가 읽던 책은 그림책이었다. 그래서 책 표지 그림이 더욱 중요했을 게다. 장르 불문하고 출판사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페이지도 당연히 앞표지이다. 어찌 보면 책 선정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표지로 책을 고르지 않는다.

표지는 껍데기이다. 껍데기가 없었다면 달걀이, 조개가, 호두가 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먹어야 것은 조개의 알맹이지 껍데기가 아니다. 혼자였으면 절대 안 읽었을 책들을 읽게 되자, 읽은 후 메모를 하고 필사를 하고 느낌을 쓰게 되자, 자연스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고 싶은 책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생겨났다. 그 책들 찾아 읽기도 빠듯한데, 생판 모르는 책의 껍데기 표지 그림만 보고 내 시간을 투자한다고? 어찌 보면 그조차 큰 모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다니던 독서모임은 코로나로 중단되었지만, 다양한 비대면 책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서평 잘 쓰는 법', '에세이로 마음 나누기'를 거쳐 최근 '그림책 만들기' 모임까지. 곳간에 차곡차곡 나만의 양식을 채우는 기분이다. 그림책에서 에세이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책 편식이 심하지만 <생각의 탄생>, <월든> 등 500쪽을 넘나드는 책들도 끝까지 읽는 힘이 생겼다. 예전 같았으면 1/3쯤 겨우 읽다 포기했을 책들이다.   


읽기 힘든 책은 강제로 날짜를 설정해 둔다.  




책 표지를 보고 책을 고르던 나는 이제

표지에 연연하지 않는다.


한 작가 당 한 작품만 읽었던 나는 이제

작가의 다른 글들이 궁금하다.


베스트셀러는 괜히 읽기 싫었던 나는 이제

작품상 받은 책들을 찾아 읽는다.


그렇게 최근 좋아하는 동화책 한 권이 추가되었다.

케빈 행크스의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 2005년 칼 데콧  수상작으로 내용도 그림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책이다. 한 번 받기도 힘든 상을 몇 번이나, 그것도 칼 데콧부터 뉴베리까지 종횡무진하는 작가이다.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는 능력자 케빈 행크스를 처음 접한 건 <빌리 밀러>에서였다. 요즘 뉴베리 수상작들을 빌려 보고 있는데, 그중 눈에 띄었던 책이다. 뉴베리 상은 청소년 도서 대상이다 보니 번역서도, 영어 원서도 읽기에 크게 부담이 없다.


'그림책 만들기' 모임 일정에 따라 11월까지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한 권을 완성해야 하는데. 참으로 막막하다. 그러나 이 역시 혼자였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을 것이다. 이번 주에는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를  보며 나만의 곳간에 예쁜 그림을 한 장 붙여봐야겠다.




작가: 케빈 행크스

1960년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났으며 수많은 어린이 책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 내 사랑 뿌뿌 (1994년 칼데콧 명예상)
- 달을 먹은 아기 고양이 (2005년 칼데콧 상)
- 병 속의 바다 (2004년 뉴베리 명예상)
- 빌리 밀러 (2014년 뉴베리 명예상)
- 조금만 기다려 봐 (2016년 칼데콧 명예상)



상단 이미지: Photo by Robert Anasch on Unsp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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