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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Sep 03. 2021

그곳에 갈 수 있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 없는

사진, 그리고 나의 이야기


흑백사진


아버지의 일흔 번째 생신날이었다.

가족들과 근교로 나가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북한산 국립공원 앞 카페 <휘바>. 사방이 산과 나무로 둘러싸여 있고, 넓은 정원에는 파릇한 잔디가 깔려있던 카페. 복잡한 1층을 피해 2층 야외 테라스 가장 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보리색 방수천이 씌워진 낮고 깊은 라탄 소파. 느지막한 오후임에도 여전히 내리쬐는 시월의 볕, 그 아래 눕듯이 앉아있자니 시간이 멈춘 듯 여유로운 기분이었다.


산, 나무, 잔디까지 온통 초록 초록하던 곳. 정원에 있던 강아지 이름마저 초록색인 브로콜리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초록색의  피사체로 가득한데, 렌즈를 돌려 줌아웃하니 흑백의 사진이다. 그 가느다란  몸을 태워 회백색으로 흩어지고 고꾸라지는 초록의 향처럼. 흑백의 사진 안에는 여전히 내리쬐는 시월의 볕이, 초록의 푸르름이, 왁자지껄 가족들의 담소와 일흔 노인의 너그러운 미소가 담겨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육 개월,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그곳에 갈 수 있지만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그곳은 내게 아득한 회색이다.

 

2013.10. 카페 휘바





북한산, 아니 도봉산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곳. 집에서 차로 30분, 기분 전환하러 부담 없이 다녀오기 좋은 거리. 그래서 이후로도 종종 들르는 곳이다.

"오늘도 만보 찍어야지. 북한산 갔다 올까?"

그런데 몇 시간 전에도 다녀온 북한산이, 북한산이 아니란다. 오늘 오른 등산로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찬찬히 살펴보니 무언가 이상하다. 그동안 다닌 산이 도봉산이었던 것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은 도봉산, 북한산을 아울러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우이령을 중심으로 북쪽을 도봉산, 남쪽을 북한산으로 구분한다. 우리가 도착지로 늘 입력하는 카페는 양주, 북한산 국립공원 북서쪽에 위치해있다. 주차할 때도, 산에 오를 때도 <북한산 국립공원>이라 안내되어있어 북한산인가 보다 하고 다녔는데, 그동안 산 이름도 제대로 모르고 다녔던 게다. 사실 뭐 이 산이면 어떻고 저 산이면 어떠랴. 어쨌든 올라갈 테고 어차피 내려와야 하는 걸. 이제라도 제대로 알았음 됐다.

      

    

북한산 지역은 대표적인 서울 화강암 산지지역에 소재하고 있으며, 인근의 불암산, 관악산, 도봉산, 수락산 등도 모두 서울 화강암 산지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대표적인 산지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형성된 화강암체는 북한산 국립공원 내의 거대한 돔(dome) 모양의 암봉들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암봉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풍화와 침식의 결과물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에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과 그 사이로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다. 그 속에는 식물 700여 종, 동물 1,400여 종 등 총 2,500여 종이 넘는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멸종 위기 야생종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다양한 어류자원도 살고 있다. 또한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문화유적과 100여 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북한산 - 서울 화강암 산지의 진수
(위성에서 본 한국의 산지 지형, 2009. 12., 지광훈, 장동호, 박지훈, 이성순)  


출발 전 평소처럼 도착지로 <카페 휘바>를 입력한다.

음료, 식사값이 만만한 곳은 아니라 늘 카페를 이용하지는 못한다. 대신 근처 음식점 골목에 주차하곤 했는데 이제 등산객에게 주차비 오천 원을 받는단다. 음식점을 이용하면 주차 할인을 해주는 것 같은데 이 시국에 바깥 밥 먹기는 그렇고 처음으로 주택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다행히 골목 사이사이 주차가 가능하다. 차에서 내리니 정겨운 마을회관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바위산이라 그런지 잊을만하면 보이는 돌탑들. 하나하나 누군가의 소망이 담긴 돌멩이들, 혹여 건드릴까 조심스럽다.


2020.11. 북한산 국립공원

"엄마, 오늘도 미션 놀이해요"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약속한 체력장. 코스를 정해주고 누가 빨리 돌아오나 겨루는 시합이다. 시간을 재는 엄마, 초딩 아들들보다 더 열심인 남편. 

2013년 그리고 2020년, 사진 속 훌쩍 큰 아이들을 보니 그간의 시간이 새삼 실감난다.




시간여행


"저 마른 몸으로 널 업어주곤 하셨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만 여섯 해.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종종 해 준다. 순대를 시킬 때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간 부위도 꼭 주문한다. 기일이면 제사를 지내고, 명절이면 추모공원을 찾는다. 하지만 오늘만큼 진지하게, 온전히 아버지와의 추억을  곱씹어 본 적이 있던가 되뇌어 본다.


낮에는 2020년 11월 29일의 북한산으로,

밤에는 2013년 10월 9일의 북한산으로.


오늘은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2020년 11월 29일에 쓴 글입니다.

Photo by Hannah Busi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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