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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야 Sep 13. 2021

엄마의 얄미운 기술

웃는 얼굴, 그리고 나의 이야기


엄마, 뭐 먹어요?


체중이 조금씩 빠지고 있다. 하루에 만 보씩 몇 달을 걸어도 안 빠지던 몸무게였다. 체중계 숫자보다 체지방, 근육량이 중요하다 하지만 운동도 쉽지 않은 요즘. 일단 음식이라도 좀 가려먹자 하고 단 커피와 야식을 끊었다. 두 달이 지나니 2kg이 빠졌다.


시험 준비 중인 친한 동생을 위해 디저트를 사러 갔다. 1년에 한 번뿐인 시험이 코 앞인데 애 키우는 엄마라 공부하기가 더욱 만만치 않은가 보다. 힘내라고 디저트를 사다 주면서 내 것도 샀다. 간장 종지만 한 그릇에 담긴 디저트가 하나에 6천 원. 그렇지만 좋은 재료를 사용해 아주 진하고 맛있다. 예전 같으면 한 번에 홀랑 먹어치웠겠지만, 조금씩 몸무게가 빠지고 있는 시기 아닌가! 냉장고 서랍 깊숙이 숨겨두고 4등분해 아이들 몰래 아껴 먹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눈치 빠른 둘째에게 걸리고 말았다. 둘째는 거실에서 온라인으로 국어 줌 수업 중이었다. 냉장고에서 조용히 디저트를 꺼내 혹여 들킬라 등을 보이며 살짝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 뭐 먹어요?" 수상한 냄새를 맡긴 했으나 수업 중인 아이는 길게 캐묻지 못했다. 수업이 끝난 아이는 "엄마한테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불렀다. 


간장 종지만한 디저트




엄마의 얄미운 기술


아이의 손에는 종이가 들려있었다.  오늘 마침 국어 시간 과제가 부모님께 편지 쓰기였단다. 아이는 내게 1,2,3으로 나누어 총 세 통의 편지를 썼다.

그중 첫 번째 편지.


엄마에게
엄마, 나 oo이에요. 이예담 아님. (뭔 소리인가 했더니 '이예요'의 '이예' 자를 보고 라우드의 '이예담'이 생각났나 보다.) 엄마가 오늘 푸딩을 혼자 먹는 걸 본받고 싶어요. 그런 얄미운 기술은 어디서 배워가지고! 엄마 그리고 몸무게 빠진 거 축하해요.



빵 터졌다.

어디서 배워가지고 이 말투는 필히 내게서 배웠을 게다. 아이들은 요즘 '미르스틴'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미친' 대신 쓰는, 나름 유화된 요즘 아이들의 속어이다. 듣기 거북한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그런 건 어디서 본거야?", "에효, 어디서 배워가지고" 라 말하곤 했다. 그러니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이다.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편지를 받아서, 내 얄미운 기술을 본받고 싶다 해서, 몸무게 빠진 걸 축하해 주어서 행복하다. 아이들의 편지는 내게 행복이다.




나에게 성공이란?


곧 추석이라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납골당에 다녀왔다. 


"넌 성공이 뭐라고 생각하니?"

친정엄마가 불쑥 내게 묻는다.


"행복이요."

내가 답했다.


"성공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이래."

그녀가 생각하는 성공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금전적 자유. 그리고 함께 여행 갈 수 있는 편한 벗.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성공이다. 그녀는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을 꿈꾼다. 반면 내가 생각하는 성공은 '행복'이다. 엄마는 하고 싶은 걸 해 내야 행복한 사람이고 , 나는 행복해야 하고 싶은 걸 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세대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머니는 먹고 살기 급급했던 세대이다. 돈이 없어 책 한 권 마음대로 살 수가 없었다. 남동생 하나 제대로 가르치려 자매들은 줄줄이 대학 진학의 꿈을 접었다. 너무도 간절했지만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 참고 인내하고 포기해야만 했던 그것들을 이뤄내는 게 그들의 성공이었다. 아니, 자식만이라도 그렇게 키워내는 것이 곧 그들의 성공이었다.


"난 할머니에게 책 한 권 사달라 하려면 얼마나 눈치가 보였는지 알아? 너는 대체 왜 이모양이야?"며 혼나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그래도 좋았던 적이 있지 않을까? 하고 아무리 애써 보아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엄마가 나를 보고 웃어준 기억.. 없다. 는 그렇게 늘 사랑에 목말랐나 보다. 그렇게 나의 성공은 사랑받는 행복한 기분 그 자체가 되었다.


'진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아메리칸드림'이라는 주제로 165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성공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2위 행복한 결혼
3위 행복한 인간관계
4위 자신을 존경하는 친구를 갖는 것
5위 자기 분야의 정상에 서는 것
6위 권력 또는 영향력을 갖는 것
7위 부자가 되는 것

그렇다면 1위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존경받는 부모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자녀들을 앉혀놓고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너는 나를 존경하니?" 많은 아이들이 엄마가 좋아요, 아빠 사랑해요 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존경한다는 말은 쉽게 하지 않습니다. p 57

어리석은 부모는 자녀를 자랑거리로 키우려고 하지만,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의 자랑거리가 되고자 노력한다.

<엄마 반성문> 중




엄마를 존경하니?


최근 읽은 책 <엄마 반성문>. 이 책의 저자는 소위 잘 나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각종 수업대회와 연구대회에서 거의 매번 1등을 했고, 수업은 동영상으로 제작되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의 아이들은 전교 1등, 임원을 휩쓸며 부모의 자랑거리로 자라주었다. 그러다 10년 전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건이 일어났으니... 고3인 첫째가 자퇴를 선언하더니 한 달 뒤 둘째마저 학교를 그만둔 것이다. 학교를 안 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은 1년 반을 오로지 게임과 티브이에 빠져있었다 한다. 이 책은 두 아이의 가슴 아픈 자퇴 10주년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부모가 아니라 감시자였다고. 아이를 살린 건 인정, 존중, 지지, 칭찬이었다고.


책을 읽으며 내 어릴 적이 떠올랐다.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몸에 익히며 배운 대로 내 아이들에게 족쇄를 채워 키우고 있진 않나. 나는 늘 불안하다. 책을 덮고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를 존경하니?"


"네. "

라고 쿨하게 답하는 둘째.


"정말? 어떤 면이?"

라고 물으니


"엄마의 얄미운 기술을 본받고 싶어서요."

라 답한다. 또 한 번 박장대소했다.



"엄마를 존경하니?"

첫째에게도 물었다.


"존경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랑하죠."

첫째가 말한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웃는 얼굴을 기억해 주길


부족한 엄마지만 내가 잘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말하기보다 듣기가 특기인 나는 아이들 말에 열심히 기울인다. 덕분에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엄마~", "엄마?", "엄마!" 나를 찾는다. 멋진 게임 캐릭터를 얻어서, 저스틴 비버 구독자 수가 다시 늘어서, 새로운 배경 패턴 그리기에 성공해서 등등 이유도 수십가지.

"저번엔 구독자가 얼마였지?", "이 패턴은 어떻게 그리게 된 거야?" 나는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아빠가 코 앞에 있어도 멀찍이 있는 나를 불러대 "바로 앞에 아빠 있잖아. 아빠한테도 좀 얘기해줘."라 일깨워주기도 한다. 아이들은 늘 하고픈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내가 수다쟁이였다면 함께 나눌 말들이 더욱 많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이들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고 깔깔 웃어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나의 웃는 얼굴을 기억해 주길.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나의 모습을 기억해 주길.




Photo by Hybrid on Unspl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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